[진리를 묻다 ]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신의 뜻, 진리라 할 수 있는가
종교는 오랫동안 자신들의 가르침이 ‘신의 뜻’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에 사람들은 그들이 제시하는 것이 시대를 초월한 절대적 진리라 믿었고, 그 믿음이 오랫동안 종교의 권위를 떠받쳐왔다. 그런데 만약 신의 이름으로 내려진 판단이 잘못된 것으로 밝혀진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최근 교황 레오 14세는 과거 가톨릭교회가 노예제를 허용하고 정당화했던 사실을 인정하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노예제를 허용하는 교황 칙서가 발표된 지 574년 만이었다. 가톨릭이 노예제에 공식적인 권위를 부여한 것은 1452년 교황 니콜라스 5세 때였다. 그가 발표한 교황 칙서 「둠
디베르사스(Dum Diversas)」는 포르투갈 왕에게 “이교도의 땅과 재산을 침략하고 정복하며, 그들을 복종시킬 권리와 영구적인 노예로 만들 수 있는 권한 (Saracenos, et Paganos, aliosque infideles, et Christi inimicos quoscunque… Regna, Ducatus, Comitatus, Principatus, aliaque Dominia, Terras, Loca, Villas, Castra… invadendi, conquerendi, expugnandi, et subjugandi, illorumque personas in perpetuam servitutem redigendi… plenam, et liberam, auctoritate Apostolica, tenore praesentium concedimus facultatem)”을 부여했다. 3년 뒤 발표된 「로마누스 폰티펙스(Romanus Pontifex)」는 이 권한을 재확인하고 확장했다.
교황청의 칙서 발표로 정당성을 얻은 노예제는 더욱 빠르게 확장되었다. 아프리카에서 수천만 명이 배 밑창에 실려 짐짝처럼 수송되었고, 이동 중에 병들거나 죽은 이들은 바다에 던져졌다. 살아남은 이들은 사탕수수 농장과 목화밭, 광산으로 끌려가 채찍질을 당하며 강제노동에 시달리다 목숨을 잃었다.
문제는 이 비극이 우발적 잘못 또는 교황 한 명의 판단 착오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칙서 발표 이후에도 칼릭스투스 3세와 레오 10세를 비롯한 여러 교황들이 이 권한을 재확인하고 연장했다.
그들은 노예제에 강력한 명분을 내세웠다. 바로 ‘구원’이었다. 실제로 「로마누스 폰티펙스」에는 “그 사업 안에서 영혼들의 구원과 가톨릭 신앙의 증진을 위해(in quo cum animarum salus, Fidei augmentum et illius hostium depressio procurentur)”라고 명시되어 있다. 수천만 명을 노예로 만든 참극이 교황청 공식 문서에서 ‘영혼 구원’으로 허용되었고, 신의 대리인이라는 교황이 이를 직접 승인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끔찍한 착취와 학대가 그들이 말하던 신의 뜻이 되는 걸까?
만약 노예제가 신의 뜻이었다면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강제 노동에 시달리다 목숨을 잃은 노예들의 고통이 모두 신의 계획이었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그 신은 사랑과 자비의 신이 아닌, 인간의 고통을 담보로 세력을 확장하는 정복과 살육의 신일 뿐이다.
반대로 노예제가 신의 뜻이 아니었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교황과 가톨릭교회가 수천 년 동안 신의 이름을 팔아 자신들의 권력욕, 물욕, 정복욕을 정당화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종교적 실수로 치부할 수 없는 문제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조직적인 사기이자, 종교적 기만이다.
이 치명적인 딜레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을까. 레오 14세의 사과문에는 유독 눈에 띄는 문장이 하나 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그 결정들의 도덕성을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구절이다. 쉽게 말해, 그때는 시대가 그랬으니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이러한 변명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노예제가 제도적으로 유지되던 시기에도 그것의 비인간성과 잔혹성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분명 존재했다. 즉 도덕적 판단의 기준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교회가 자신에게 불편한 목소리를 철저히 외면한 것이다. 무엇보다 종교가 인간을 판매하고 착취하는 행위에 정당성을 붙였다는 것 자체가 이미 도덕적 실패이며, 신학적 한계를 보여주는 증거다.
결국 그들의 논리에 의하면 이 거대한 범죄에 책임질 주체가 없다. 역대 교황들은 그들 신의 명령이었다 하고, 정복하고 침략하라 명령했던 그들의 신은 소식이 없고, 현재 교황은 시대가 그랬다는 변명만으로 책임의 빈자리를 채운다. 그들 신과 교황들이 ‘공동정범’이 되어 자행한 노예제는, 사과의 순간이 되자 신도 교황도 아닌 ‘역사’의 탓이 되어버렸다. 권위를 행사할 때는 ‘절대적 진리’를 내세우다가, 책임 앞에서는 ‘시대의 흐름’을 핑계 대는 것, 이것이 바로 가톨릭의 이중성이자,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부여하는 오래된 수법일지도 모른다.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신의 이름으로 선포한 판단이 잘못된 것으로 밝혀진다면 어떻게 되는가?
불변해야 할 신의 진리가 번복된다는 것은 애초에 그것이 초월적 진리가 아니라 기득권 유지를 위해 고안된 거짓이었음을 증명한다. 교황청이 수백 년간 저질러 온 범죄를 인정한다면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법적 대가를 치러야 한다. 기독교와 무관한 사람들을 강제로 끌고 와 자행한 착취와 학살의 역사적 책임은 세속 법에 의해 판단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법적 대가를 치른다 해도 종교적 문제까지 해결되지는 않는다. 인류에 대한 악행을 정당화하고, 책임 앞에서는 종교라는 권위 뒤에 숨어온 조직이라면, 더 이상 진리를 말할 자격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교황의 이번 사과는 수천 년 동안 그들 신의 명령으로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자백이자, 진리 없는 종교가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무너뜨린 자기부정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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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묻다] 죄를 말하지 않는 종교, 무엇을 구원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