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교회 방명란 집사

내가 아니라 성신의 힘으로 전도하기를 기도
발행일 발행호수 2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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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주일예배를 마치고 교회 마당에서 방명란 집사(맨 오른쪽)의 전도로 온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올케, 조카, 언니, 고모, 친구, 신앙촌상회 고객 등 다양한 관계의 사람들이다.

1985년 간호대 2학년인 방명란은, 중학교 2학년이던 해 교통사고로 처참히 죽은 오빠가 그때까지도 계속해 꿈에 나타나 목을 조르며 죽인다고 달려들어 너무나 괴로웠다. 초등학교 6년 기성교회에 다녔던 적이 있는 방명란은 예수가 나를 불러내느라고 이런 영적인 시험을 주는가 싶어 교회란 교회는 다 쫓아다니며 기도로 구했다. 그러나 오빠의 모습은 떨쳐지지 않았고, 죽음까지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던 어느날, 이단교회인줄만 알았던 천부교회에서 주일학생들이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것이었다. 어떤 정의감과 사명감에 방명란은 천부교회 앞으로 갔고, 오늘이 수요일이니 한번 와보라는 반사의 말에 저녁예배에 찾아간다.

무엇이 있길래 예수를 저렇게 시답잖게 말하는가
성경을 신주단지 모시듯했는데 예수는 구원이 없다란 설교를 거침없이 하자 일어서서 “당신이 뭔데 예수님에 대해 그렇게 말합니까” 관장님은 끝나고 말하자고 했고, 성경 구절구절로 쪼개어 설명하는데 한마디도 할 수 없이 말문이 막혔다. 집에 와서 생각하니 ‘도대체 저 관장님 뒤에는 무엇이 있길래 예수에 대해 저렇게 시답잖게 말하는 것인가.’ 궁금했다. 그후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께서 계심을 알게 되었고, 매 주 있던 축복일에 그 주 토요일 처음으로 참석하며 ‘하나님을 만나 뵈러 가는데 내가 목욕이라도 깨끗이 하고 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아침 일찍 목욕탕에 다녀왔다. 목욕탕에 다녀와서 노곤해진 방명란은 잠이 들었고, 천부교회에서 사진으로 뵈었던 하나님께서 방명란 옆에 오셨다 가는 꿈을 꾸었다. 그날 이후 더 이상 꿈에 오빠가 나타나 괴롭히지 않았다. 살 것 같았다.
그날 이후 신앙에 불이 붙었고, 친구들을 전도하기 시작했다. “너거,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을 만나뵐래?” 친한 친구들을 교회에 데리고 와 관장님께 말씀을 들어도 친구들은 머리가 굵어놔서 말씀이 들어가지 않는 것 같았고 잘 듣지도 않는 것이었다. 친구만 떨어졌다.
교회 다니는 걸 반대하시는 엄마를 피해 집에서 교회가 아주 가까운 거리인데도 불구하고 바로 오지 못하고 동네를 빙 둘러서 교회에 오곤 했다. 그럴 때면 향취의 은혜도 체험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은혜가 온전히 담길 수 있는 마음의 그릇을
준비하고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성신이 움직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이 땅에 오신 감람나무를 증거했으면
은혜가 담길 마음의 그릇을 준비해야

졸업시즌이 되자 관장님은 꽃다발을 만들어 팔아 교회비품을 마련한다고 했다. 수업을 마치면 교회로 달려가 꽃부케 만들기에 함께 했고, 드디어 포항여중고 졸업식날 방명란은 그동안 만든 꽃부케를 들고 혼자서 나갔다. ‘의로운 일을 하는 것이니 당연히 잘 팔릴 것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꽃을 사라는 목소리는 높았고, 분위기는 한참 고무되어 있었다. 그러나 한 사람도 방명란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풀이 죽어 다른 꽃장사들 뒤로 물러나 화단에 걸터 앉았다. 그런데 조금 후 사람들이 앞의 꽃장사들을 헤치고 뒤로 물러 앉은 방명란의 꽃다발을 순식간에 다 사갔다. 이 날의 교훈은 방명란이 살아가는데 큰 가르침으로 남아있다.
“저의 마음이 비어있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당연하다고 생각한 거죠. 신앙생활을 하고 소비조합을 하면서 이 날의 가르침은 제게 큰 교훈으로 남아 있어요. 하나님의 은혜가 담길 수 있는 빈 그릇을 준비해야 하는 거죠. 그날 그거 하나님께서 다 팔아주신 거잖아요. 하나님께서 ‘도와주고 싶다’란 마음이 들게 제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 늘 생각하게 됩니다.”

움직일 수 없는 증거
대학교 2학년때 극적으로 천부교회에 나오게 된 이후 졸업과 동시에 신앙촌 의무실로 입사를 하게 된다. 그곳에서 움직일 수 없는 확실한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한다. “장례 때 시신이 생명물로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을 수없이 목격하며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확실히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경험 또한 저의 신앙생활에 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약 3년 정도 신앙촌에서 근무하다가 퇴사한 후 신앙도 멀어졌었다. 마음 한 켠 늘 다시 나와야지 하는 마음은 있으면서도 선뜻 다시 나오지 못하고 있다가 1997년 경 다시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다. 다시 신앙의 불이 붙기 시작했다.
2009년 12월에 신앙촌상회 용흥점을 오픈하며 들어오는 고객에게 무조건 하나님을 증거했다. 고객들이 차츰 줄어드는 것 같았다. 또 한풀 꺾였다가 예배 시간에 하나님의 설교 말씀이 꽂혔다. “하나님께서 ‘내가 하나님이다 하나님이다 하고 내가 나가서 전도해야 되겠나’ 하신 말씀을 듣고, 맞다 그럴 수는 없지 내가 해야지 하고 다시 전도에 마음을 쓰게 되었어요. 요즘은 사람을 봐가면서 말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니라면 아닌거지 무슨 말이 필요있나’
방 집사는 교회에 나오게 된 일은 지금 생각해도 감사한 일이라고 했다. “그때까지도 예수를 믿어왔는데 예수가 구원이 없다란 말씀을 듣고 ‘아, 하나님이 아니라면 아닌거지 뭔 말이 필요있나’란 생각이 들면서 하나님을 믿는 마음을 주신 게 지금 생각해도 감사해요. 그렇게 반대하던 엄마도 교회에 모시고 오고, 지금은 신앙촌상회에도 나와 도와주시기도 합니다.”
딸 유경이가 올해 신앙촌의 시온실고로 진학을 한 후 방 집사의 새벽예배는 더 철저해졌다. “제가 더 잘살아야 우리 딸에게도 신앙적으로 좋은 말을 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일찍 가서 기도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더 부지런해지고 새로운 고객도 더 오시는 것 같아요. 그동안 새벽예배를 놓친 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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