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다. 어떻게 천막 안에 안개가 생기지?’ 하고 어리둥절

황숙주 권사(1) / 덕소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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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저는 1933년 평양에서 4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평양과 가까운 강동군 승호리에 사셨던 할아버지는 강동군에서 손꼽히는 지주였습니다. 저희 형제들은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신 후로 할아버지 슬하에서 어려움을 모르고 부유하게 살았습니다. 할아버지는 몸이 약한 저희 가족을 위해 주치의를 따로 두실 정도로 세심하게 보살펴 주셨고, 저희 형제들은 방학 때마다 할아버지 댁에 가서 사촌들과 어울려 지냈습니다.

남산집회에서 찬송을 부르는 중
코끝에 스친 좋은 향기가 어느 순간
사라지더니 갑자기 지독한 냄새가
한참 진동하고 순간 사라져버려

그 후 이북에 공산 정권이 들어서고 6·25 전쟁이 일어나면서 난생처음으로 고생을 하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피난길에 올랐던 1·4 후퇴 때 저희 가족은 엄동설한의 칼바람 속에 대동강을 건넜습니다. 지주라는 이유로 공산당에게 심한 감시와 괴롭힘을 당했기 때문에 피난을 오는 동안 공산군이 쫓아올까 봐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가진 것 없이 맨손으로 월남한 저희 가족은 작은 아버지가 계시는 대구로 내려갔습니다. 작은아버지가 해방 후에 대구로 내려가 자리를 잡고 계셔서 저희는 작은아버지를 의지해 대구에서 피난 생활을 했습니다.

원래 몸이 약했던 제 여동생은 대구에 내려온 뒤로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습니다. 고향에서 동생의 주치의였던 의사가 그때 대구 육군본부에 근무하고 있어서 동생은 그 의사에게 치료를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동생이 회복하기를 바라시며 정성을 다해 간호했지만 동생은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동생은 눈을 감기 전에 어머니 손을 잡고 “엄마하고 같이 교회에 나가 봤으면 좋겠어요.”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자꾸 그 말이 생각난다고 하시며 교회에 나가셨습니다. 저도 동생을 잃고 허탈한 마음에 조금이라도 위안을 얻고 싶어서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다녔습니다.

동생을 잃은 후 또래 여학생만 봐도
눈물 지으신 어머니는 남산집회에
다녀온 후 마음이 기쁘고 편안해 보여
박 장로님 집회만 고대하고 기다리셔

제가 경북여고에 다닐 지음 어머니는 대구역 앞에서 건어물을 파는 장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예전에 한 번도 장사를 해 보신 적이 없었지만 생계를 꾸리기 위해 여러 가지 장사를 하셨습니다. 그 후 제가 이화여대 의과대학에 진학하면서 어머니와 함께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서울에서는 창신 장로교회에 다니며 매일 새벽예배에도 나갔습니다. 어머니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진실하게 믿는 것인지 알고 싶다고 하시며 장사를 하는 와중에도 부흥집회를 찾아 다니셨습니다. 저는 학과 공부를 하느라 시간이 없었지만 어머니가 집회에 참석하시면 잠깐이라도 그 집회장에 다녀오곤 했습니다.

그러던 1955년 봄이었습니다. 남산공원에서 열흘 동안 부흥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는 첫날부터 참석하셨습니다. 그 집회에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유명하신 분이 오신다고 했습니다. 저는 남산집회 마지막 날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회 장소를 찾아갔습니다.

기나긴 돌계단을 올라 남산공원 광장에 도착해 보니 엄청나게 큰 천막들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천막 안에는 사람들이 가득 앉아 있어서 도저히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부흥집회에 자주 다녀 봤지만 그렇게 사람이 많이 모인 것은 처음 봤습니다. 천막 맨 끝에 간신히 자리를 잡고 보니 단상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어떻게 예배를 볼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제 주변에 앉은 사람들이 간절히 찬송을 부르며 예배드리는 것을 보면서 저도 마음을 가다듬고 예배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자세를 바르게 하고 찬송을 따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한창 찬송을 부를 때 어디선가 과일 향기처럼 싱그럽고 좋은 향기가 날아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저는 누가 과일을 먹나 보다 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 향기가 점점 진하게 맡아졌습니다. 그런데 향기가 어느 순간 싹 사라지더니 갑자기 지독한 냄새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집회장에 깔린 가마니에서 나는 냄새인가 했지만 그 고약한 냄새는 가마니 냄새와는 달리 무엇이 타는 것 같은 냄새였습니다. 그 냄새도 한참 동안 진동하더니 순간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집회가 끝난 후 사람들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찬송을 부를 때 아주 좋은 향기를 맡았다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저도 그런 향기를 맡았다고 했더니, 한 분이 하는 이야기가 이 집회에서 향기를 맡은 사람들이 많다며 그 향기는 은혜를 받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처음 들었던 저는 ‘나도 은혜를 받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산집회 첫날부터 참석하셨던 어머니는 집회가 끝날 때까지 빠짐없이 다니셨습니다. 남산집회에서 예배드릴 때 좋은 향기를 맡았다고 하시며 그때부터 마음이 기쁘고 즐겁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동생을 잃은 후로 동생 또래의 여학생만 봐도 눈물을 지으셨는데, 남산집회에 다녀오신 후로 웃기도 하시고 편안해 보이셔서 저도 마음이 좋았습니다. 박 장로님의 집회가 또 열리기를 고대하시던 어머니는 몇 달 후 한강 모래사장에서 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첫날부터 참석하셨습니다.

한강집회에서 박 장로님 인도로 찬송을 부를 때 단상에서부터 뽀얀 안개
같은 것이 점점 퍼져 나와 넓은 천막을 가득 채우더니 그 안개 같은 것이
점점 짙어져 나중에는 바로 앞에 앉은 사람까지 보이지 않을 정도가 돼

저는 한강집회가 한창 열리던 어느 날 집회장을 찾아갔습니다. 드넓은 모래사장에 천막이 바다처럼 펼쳐져 있었고 그 속에 모래알처럼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습니다. 말로만 들었던 인산인해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저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중간쯤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박태선 장로님의 인도로 찬송을 부를 때 저는 무심코 단상을 쳐다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단상에서부터 뽀얀 안개 같은 것이 점점 퍼져 나와 그 넓은 천막을 가득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상하다. 어떻게 천막 안에 안개가 생기지?’ 하며 어리둥절했습니다. 저는 혹시 밖에서 안개가 들어오나 하는 생각이 들어 출입구 쪽으로 가서 천막을 들쳐 봤습니다. 하지만 바깥은 안개라고는 전혀 없는 맑은 날씨였습니다. 천막 안에 그 안개 같은 것이 점점 짙어지더니 나중에는 바로 앞에 앉은 사람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집회장 전체에 뽀얀 안개가 뒤덮인 가운데 사람들이 부르는 찬송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습니다.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그 많은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찬송을 부르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찬송가 가사가 마음에 와 닿아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황숙주 권사님 신앙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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