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한가마도 거뜬히 ‘꼬리 없는 황소’라고
함께 시온복을 입은 건설대저는 마포 을구에서 1958년 1월 1일 소사신앙촌 건설대로 신앙촌에 들어갔습니다. 주택 건설대에 속했는데 주택 건설대를 A반이라고 했고 B반은 제단 건설대라고 했습니다.
1월 1일 신앙촌에 들어간 바로 그날 시온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시온복이 그날 처음 선을 보인 거라고 하는데 멜빵바지 같은 형태로 활동하기 편하고 질기고 나름 맵시도 있었습니다. 처음엔 국방색이었는데오른쪽 호주머니엔 영어로 Zion 이라고 크게 수도 놓여있었습니다.
하루는 하나님 댁에서 성냥 공장까지 쌀을 날라야 하는데 시간이 있는 사람은 와주길 바란다고 방송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그렇게 신앙촌 전체에 들리게 방송이 나왔습니다. 저는 ‘농군’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던 담양 출신 아이 하고 같이 하나님 댁으로 쌀을 나르러 갔습니다. 하나님 댁도 약간 언덕배기였고 성냥공장도 언덕에 있었습니다. 거리는 한 2백 미터 쯤 될까, 쌀은 모두 14가마, 농군과 저는 한 가마씩 지고 일곱번을 날랐습니다. 그때는 그렇게 쌀 한 가마씩 지는 건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오죽했으면 건설대가 시멘트를 두 포씩 지고 아시바(비계) 맨 곳을 올라가면 공사할 때 왔던 외부 기술자들이 ‘꼬리 없는 황소가 올라온다’며 놀랐을까요. 시멘트 두 포면 쌀 한 가마보다 무거웠습니다. 그건 제 힘이 아니었어요.
또 건설대 각 부서마다 생명물 통이 있었습니다. 저희 부서의 생명물 통이 비었는데 마침 하나님께서 지나가고 계셨습니다. 저는 얼른 통에다 물을 받아가지고 하나님을 부르며 달렸습니다. 무겁게 통을 들고 뛰는 자그마한 저를 보신 하나님께서는 ‘거기 있으라우’ 하시며 제가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오셔서 축복을 해주셨습니다.
아래 사진은 1959년 9월 20일 소사 오만제단 기지에서 시온복을 새로 맞춰 입고 기념촬영을 한 것입니다. 아래 사진에는 지금 함께 신앙촌에 살고 있는 김복동 집사님, 인중애 권사님, 이지화 권사님의 젊은 시절 모습도 담겨 있습니다. 임시로 세워 놓은 단상 앞에서 찍은 것으로 사진에는 안 나왔지만 사진 왼 편에는 이미 어느 정도 기초 공사가 진행되고 있을 때입니다.
유효순 승사/기장신앙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