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전도관의 추억

여름성경학교에 가는 아이들의 긴 행렬
발행일 발행호수 2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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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1977년 공주전도관 여름성경학교를 마친 후 상장을 받은 아이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맨 뒷줄 가운데가 서정자 권사.(사진 아래)

공주전도관이 세워지기 전 친정아버님과 친정집 대청마루에서 전도사님과 예배를 드렸습니다. 사람들이 늘어 대청마루에서 예배를 드릴 수가 없게 되자 공주 시내에 전도관이 세워졌습니다. 당시 저는 교회 생활에 적극적인 편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설교 말씀을 듣고 아이들을 교회 옆에서 키워야겠다는 생각에 공주전도관 바로 옆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공주전도관 개관집회가 있던 날, 처음으로 저는 먼 발치에서 하얀 양복을 입으신 하나님 모습을 뵈었습니다. 코흘리개였던 막내 딸은 마당에서 놀다가 집회를 마치고 나가시는 하나님의 양복 바지를 잡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은 교회가 놀이터였습니다. 여름이 되면 여름성경학교가 열렸는데 반사들이 북을 치며 ‘천년성 거룩한 땅’을 부르면, 집에 있던 모든 아이들은 그 소리를 듣고 나와 반사들 뒤를 따랐습니다. 아이들의 행렬은 장관이었습니다.(작은 사진) 신나게 찬송을 부르며 교회에 온 아이들은 말씀도 배우고 연극도 하고 저와 여러 부인회원들이 준비한 간식도 먹었습니다. 이때 여름성경학교는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도 함께 참여하는 즐거운 행사였습니다.

그렇게 공주전도관은 저의 신앙생활의 출발점이 되었지만 지금은 도시공사로 교회 터가 3분의 1이 수용되었습니다. 아래 큰 사진 맨 뒷줄 오른쪽 네 번째에 있는 박병화 권사님(대전교회)을 그 때 ‘엉아’라고 부르며 신앙생활을 함께 했는데, 지금도 만나면 다시 공주전도관이 세워졌으면 하는 바람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당시엔 신앙촌 물건의 인기가 참 좋았습니다. 몇 번씩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고 어렵게 신앙촌에서 사온 물건이 잘 팔리면 잘 팔려서도 좋았지만, 작은 일이라도 하나님 일을 할 수 있다는 기쁨에 힘든 줄 몰랐습니다.

공주전도관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자란 아이들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신앙생활을 멀리 하게 되었는데 애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시신이 피는 하나님의 권능을 보고 다시 하나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터만 남아 있는 공주전도관. 믿음으로 서로 의지하고 기쁠 때 같이 웃고 어려울 때 같이 도우면서 살았던 그 때의 식구들이 그립습니다.

서정자 권사 /대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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