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로 함께해 주신 하나님의 손길”
<신앙체험기 521회> 성남교회 장원애 권사 1편
장원애 권사/성남교회
(지난호에 이어)
저는 새벽 제단을 쌓기 위해 제단 근처에 사시는 문삼섭 권사님 댁에 머물며 살림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권사님의 어린 딸을 등에 업고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예배에 나갔고, 시간이 흐른 뒤에는 구역장 직분을 맡아 예배를 인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소사신앙촌 1차 건설대를 모집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제가 지원하겠다고 나서자, 문 권사님께서는 젊은 아가씨가 감당하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만류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미 집회에서 큰 은혜를 체험한 저는 하나님께서 가시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가겠다고 굳게 다짐한 터라 꼭 가고 싶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소사신앙촌에 도착해 보니, 노구산에 오만제단이 세워지기 전 예배를 드리던 구제단은 이미 모습을 갖추고 있었고, 주택 A·B동은 일부만 완성된 채 한창 건물을 올리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저는 순천, 구례, 광양에서 올라온 언니들을 따라다니며 함께 일했는데, 그 시절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많은 은혜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특히 아침저녁으로 안찰을 해 주시면 그 자리에 함께한 저희 모두에게서 향취가 진동했고, 안찰을 받고 돌아설 때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차올라 마치 천국에서 사는 것만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
물을 마시자 향취 덩어리가
목으로 넘어가고 기쁨 넘쳐
어느 날은 팀별로 벽돌 찍기 경쟁이 벌어졌습니다. 단합이 잘 되는 서울과 인천팀은 앞서 나갔지만, 저희 광주팀 12명은 자꾸 뒤처져 속이 상해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저희 쪽으로 다가오시더니 축복해 주시겠다 하시며 저에게 물을 떠오라고 하셨습니다.
주변에는 물을 뜰 만한 곳이 없어 저는 건설대를 지휘하시던 장세호 집사님의 오두막까지 급히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적당한 그릇이 눈에 띄지 않아, 다급한 마음에 넓적하고 얕은 옴박지에 물을 받아 머리에 이고 돌아오는데, 혹시나 하나님께서 가버리실까 봐 마음이 몹시 조급했습니다. 한시바삐 가야 한다는 생각에 허둥지둥 뛰어오다 보니 물은 자꾸 쏟아지고 옷은 어느새 흠뻑 젖고 말았습니다.
겨우 남은 물을 들고 도착하자 하나님께서는 “오다가 물도 쏟고 옷도 다 젖었구나” 하시며 몇 걸음 다가와 맞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물을 향해 축복해 주시자 진한 향취가 맡아졌고, 한 모금 마실 때는 향취가 덩어리째 목으로 넘어가는 듯했습니다. 저희 팀원 모두가 그 물을 함께 나누어 마시며 기뻐하던 그날의 모습은 지금도 제 마음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건설대에서 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님께서는 체구가 작은 제가 지게를 지고 일하는 모습을 안쓰럽게 보셨는지, 앞으로는 지게를 지는 일 대신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든 현장을 떠나 다른 일을 하게 되어 아쉬웠지만 이후 수예부에서 일하게 되었고, 작은 보탬이라도 되고 싶어 틈틈이 현장 일을 거들며 신앙촌에서의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 무렵 저는 하나님께서 안찰하시는 곳을 부지런히 쫓아다녔습니다. 이미 다른 사람들의 안찰이 끝난 경우가 많았지만, 은혜를 받고 싶은 마음에 늦게라도 찾아가면 하나님께서는 웃으시며 안찰해 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철없던 저를 따뜻하게 받아 주신 그 사랑이 얼마나 크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신앙촌 산책로에 핀 수선화
얼마 후 저는 소사신앙촌에서 받은 은혜를 가슴에 간직한 채 더 많은 사람을 전도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서울로 나왔습니다. 마포 이만제단과 을구 지관에 다니며 신앙생활을 이어갔지만, 1967년 결혼과 함께 정읍으로 내려가면서 한동안 제단과 발길이 끊어진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다시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고, 동생의 권유로 성남 제단에 나가면서 소비조합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소비조합원으로 안찰을 받으러 갈 때면, 하나님께서는 늘 “죄짓지 마” 하고 당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돌아오면 주변에서 제 목소리와 행동이 한결 부드러워졌다고 말할 만큼 제 자신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만나는 사람마다 정성을 다하게 되고, 제가 받은 은혜를 한 사람에게라도 더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주일에 한 번 노량진교회에 오시는 날이면, 저는 성남의 초등학교 교사 20명과 함께 택시 5대에 나눠 타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러 다녔습니다. 저희가 도착하면 하나님께서는 무척 반가워하시며 예배실 2층에 따로 자리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때 단에서 “이슬성신이 내리니 여기 온 사람들은 은혜를 받습니다. 아이들도 교회에 데려오면 은혜를 받으니 모두 데리고 오세요”라고 하시던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1980년, ‘감람나무가 곧 하나님’이심을 발표하셨을 때 제 마음에는 마치 출발 신호를 받은 운동선수처럼 힘껏 달려야겠다는 다짐이 일었습니다. 당시 기성교회의 반대가 거셌지만, 저는 제가 직접 은혜를 받고 겪은 일들이 분명했기에 주저하지 않고 하나님을 증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을 축복해 주시면 그 물이 썩지 않는 생명물이 되고, 그 물로 고인의 몸을 닦아 드리면 입술이 붉어지고 얼굴이 환하게 피는 모습을 여러 차례 직접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제부(弟夫)가 세상을 떠났을 때의 일은 지금도 선명합니다. 소사신앙촌에서 오신 분들이 고인을 생명물로 정성껏 닦아 드리자, 가족들이 모두 놀랄 만큼 생전보다 더 평온하고 환한 모습으로 피었습니다.
이후 덕소신앙촌에서 19년 동안 소비조합 활동을 하던 중 잊지 못할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물건을 팔고 청량리에서 막차를 탔다가 깜빡 잠이 들어 덕소를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놀라 급히 내렸지만 사방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긴 산속이었습니다. 적막 속에 개구리 울음소리만 들릴 뿐,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아 순간 겁이 났습니다.
그때 저 멀리서 자동차 불빛이 보였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자 차 안의 신사분이 저를 보고 “귀신이요, 사람이요?” 하고 외쳤습니다. 제가 사람이라고 소리쳤지만 차는 곧 달아나 버렸습니다. 하는 수 없이 풀밭에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앉아 날이 밝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막막한 마음으로 앉아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양수리 쪽에서 자동차 불빛이 다시 서서히 다가왔습니다. 아까 그 차였습니다. 이번에는 길 한가운데로 나가 차를 막아섰습니다. 놀란 기색이 역력했지만 저는 차분히 사정을 설명하며 태워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잠시 망설이다가 저를 차에 태워 주셨습니다. 저는 혹시 무슨 일이 생길까 두려운 마음에 속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덕소 근처에 이르렀을 무렵, 그분이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오늘 일은 보통 일이 아니라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분의 말에 따르면, 그날 새 차를 뽑아 가족과 피서를 왔다가 잠깐 잠이 들었는데, 꿈에 키가 크고 얼굴이 환하게 빛나는 분이 나타나 “지금 당장 양수리 쪽으로 가라”고 재촉하셨다는 것입니다. 가족들은 말렸지만 놀란 마음에 차를 몰고 나왔다가 깜깜한 길에서 겁이 나 돌아갔는데, 차 안에 앉아 있자 같은 분이 또 나타나 “누군가를 만나거든 차에 태워 덕소 정문에 내려주고 오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집까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아침이 되어 오십부장님께 밤사이 있었던 일을 말씀드렸습니다. 이후 전해 들은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내가 갔어. 내가 거기 찾아갔어. 들판에서 짐을 잔뜩 짊어지고 떨고 있길래 사람을 보냈어. 그런데 안 가길래 두 번이나 가서 보냈어.”
그 말씀을 전해 듣는 순간, 저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칠흑 같은 들판에서 홀로 있을 때 하나님께서 지켜주셨다는 생각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하나님께서 낙원에 가신 뒤에도 제 곁에서 함께하고 계신다는 것을 체험한 일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신앙촌 이불 네 채를 버스에 싣고 노량진에서 성남으로 오는 길이었습니다. 차를 타고 한참 오던 중, 이전에 경험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고 진한 향취가 맡아졌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께서 같이 해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치 ‘늘 곁에 있으니 마음 변치 말고 끝까지 따라와’ 하며 다독여 주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 진한 향취는 한동안 이어지다가 집 근처 사거리에 이르러서야 사라졌습니다. 이렇듯 소비조합 활동을 하는 동안 귀한 은혜를 허락해 주시니, 언제나 기쁜 마음으로 일할 수 있었습니다.
그 무렵 저는 일요일이면 신앙촌 고객분들을 덕소교회 예배에 초대했습니다. 그 가운데 꾸준히 예배에 나오는 분들도 생겼는데, 현재 덕소교회 소비조합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성순 집사님도 그때 인연이 닿아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이 전도되어 은혜 안에서 새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면 모든 일이 감사하게 느껴졌고, 그 벅찬 기쁨 속에 ‘하나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변하여 새사람 되고’라는 찬송이 절로 입가에 맴돌곤 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 몸이 좋지 않아 한동안 축복일에 참석하지 못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 다시 신앙촌을 찾게 되었는데, 후문 다리를 건너는 순간 코끝을 스치는 진한 향취에 저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눈물을 쏟았습니다. “하나님, 저 왔습니다” 하고 나직이 말씀드리자, 하나님께서 변함없이 저를 기다려 주신 것만 같은 따스함이 느껴졌습니다. 그 순간 19살 소녀 시절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늘 제 곁에 계셨다는 사실이 마음 깊이 밀려왔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때 길을 열어 주시고, 진실한 마음으로 고할 때 귀 기울여 주신 그 은혜를 생각하니 다시금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지켜주시고
낙원 가신 뒤에도 향취 은혜 주시며
이끌어 주심에 감사드려
하늘 세계를 소망 삼아 살아갈 힘을 주시고, 은혜로 함께해 주신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기에 저는 오늘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제게 남은 소망은 하나님을 온전히 마음에 모시고, 허락해 주신 건강을 잘 지켜 끝까지 소비조합의 사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제 남은 생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기를 원하오니, 구원의 손길로 함께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은혜로 지켜주시고 이끌어 주신 하나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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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취에 몸이 시원해지고 공중에 떠 있는 듯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