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받은 이야기를 하는 순간에도 강한 향취가 진동해 놀라

박영희 권사(1) / 소사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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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저는 1932년 경기도 양평에서 7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부유한 농가였던 저희 집은 아버님이 농사를 크게 지으시며 소를 사고파는 사업을 하셔서 풍족하게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서울에 있는 작은오빠 집에서 지내면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 후 6.25 전쟁 중에 부모님과 함께 부산으로 내려왔으며 스물한 살에 결혼하여 부전동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저희 시어머님은 재건교회에 열심히 다니시는 분으로 저에게도 같이 교회에 가자고 하셨습니다. 종교에 큰 관심이 없었던 저는 예배 시간이 길고 지루하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제가 예배에 참석하면 시어머님이 무척 기뻐하시는 것을 보고 차마 뜻을 어길 수가 없어서 교회에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던 1955년 어느 날 시어머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즘에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분이 부흥집회를 하시는데 거기서는 장님이 눈을 뜨고 벙어리가 말을 하고 병이 낫는 일이 많단다.” 하시며 “나도 항상 몸이 아프니 그 집회에 가 봐야겠다.”라고 하셨습니다. 몸이 약하신 시어머니는 자주 앓아누우셨는데, 박 장로님의 집회에 열심히 참석하시더니 그 후로 앓아눕는 일도 없어지고 차츰 건강해지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부터는 재건교회에 가지 않으시고 박 장로님께서 세우신 ‘전도관’이라는 곳에 다니셨습니다. 저는 ‘전도관이 어떤 곳일까? 병이 낫는 것을 보면 거기에 무엇이 있긴 있나 보다.’ 하며 알아보고 싶어서 어느 날 시어머님을 따라 전도관에 가 보았습니다.

시어머니를 따라 처음 간 전도관에는
발 디딜 틈도 없이 빼곡히 사람이 모여
하나같이 박자를 맞추어 찬송하는 모습이 신기하게 보여

대신동 도로변에 있는 전도관에는 많은 사람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빼곡히 모여 있었습니다. 예배가 시작되자 힘차게 손뼉을 치며 빠른 박자로 찬송을 불렀는데 저는 재건교회에서 느릿느릿 찬송하던 것이 몸에 익어서 처음에는 찬송을 잘 따라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박자를 맞추어 찬송하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저도 찬송을 따라 부르게 되었는데 한참 찬송하던 어느 순간 아주 좋은 향기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이전에 고급 향수 냄새를 맡아 본 일이 있지만 그 향기는 향수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향기로울 뿐 아니라 어디서도 맡아 보지 못했던 냄새였습니다. 그리고 숨을 들이쉬며 맡으려고 하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다시 진하게 맡아졌습니다. 옆에 앉은 분에게 “지금 좋은 냄새가 나지요?” 하고 물었더니 그분은 “아뇨, 무슨 냄새가 난다고 그러세요?”라고 되물었습니다. 저는 ‘이상하다? 분명히 맡아지는데…….’ 하며 의아했는데, 설교 시간에 박태선 장로님께서 “오늘 예배 시간에 향기를 맡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향기는 하나님이 주시는 향기로, 같은 자리에 있어도 향기를 맡는 사람이 있고 맡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듣고 ‘내가 하나님이 주시는 향기를 맡았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찬송을 부르는데 고급 향수와는 비교도 안 될 향기로운 냄새가 맡아져
하나님께서 설교하시기를 `오늘 예배 시간에 향기를 맡은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 향기는 하나님이 주시는 향기인데 같은 자리에 앉아 있어도
맡는 사람도 있고 맡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후로 한 번씩 대신동제단에 가서 예배를 드릴 때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신나게 찬송을 부르고 설교 말씀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갔으며, 많은 사람들 틈에서 비좁게 앉아 있어도 힘든 줄을 몰랐습니다.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일요일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오셨는데, 전도사님의 인도로 찬송을 부르다가 어느 순간 향취가 진하게 맡아져서 둘러보면 어김없이 박 장로님께서 예배실에 들어오고 계셨습니다. 또 어느 날인가 예배를 마친 후 다른 분들과 함께 “오늘 향취를 맡았어요.” “나도 예배 시간에 맡았어요.” 하며 이야기하던 중에 순간 향취가 강하게 진동하여 놀랐던 일도 있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저는 기쁘고 즐거운 예배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며 일요일마다 대신동제단으로 달려가게 되었습니다. 저와 시어머님이 같이 전도관에 다니게 되면서 얼마 후에는 시아버님도 제단에 나오셨습니다.

전도관에서 예배를 드리니 마음이 기쁘고 즐거워져
많은 사람들 사이에 비좁게 앉아도 힘든 줄을 몰라
신나게 찬송하고 설교 말씀을 듣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몰라

1957년에는 영주동에 웅장한 전도관 건물이 세워졌으며 저희 동네에는 서면전도관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서면제단 교인 중에 황복수(故 황복수 관장)라는 친구의 아버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입관예배를 드린다는 연락을 받고 그 집에 가 보니, 친구 복수는 “아직 전도사님과 교인 분들이 안 오셨어.” 하며 저에게 참외 하나를 먹으라고 주었습니다. 그런데 참외를 먹으려고 그 집 뒤뜰에 갔을 때 어디선가 말도 못 하게 역겨운 냄새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시신을 모신 방의 창문이 조금 열려 있었는데 거기서 그렇게 고약한 냄새가 풍겨 나오고 있었습니다. 송장 냄새가 얼마나 진동하는지 손에 쥐고 있는 참외까지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잠시 후 전도사님과 교인 분들이 오셔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시신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방 안에는 냄새가 더 심할 텐데…….’ 하며 망설이다가 마지못해 따라 들어갔는데, 정말 냄새가 얼마나 지독한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신에서 송장 썩은 물이 흘러나와 방바닥이 흥건히 젖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시신을 처음 봤던 저는 ‘사람이 죽으면 저렇게 비참하게 썩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오늘 여기에 괜히 왔다.’ 하는 후회마저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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