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경계인(境界人)의 함정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 교수가 경계인으로 살겠다며 한국에 정착하기를 열망하여 왔을 때 우리는 처음부터 그 저의를 의심하였다. 어느 편도 들지 않고 한국과 북한의 경계에 서서 ‘균형있는 삶’을 살겠다고 했지만 그는 이미 너무 깊숙이 북한에 편향되어 있었다.
검찰에 따르면 송교수는 지난 91∼94년 북한에서 김일성을 만난 뒤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임돼 국내외에서 주체사상 전파 등 임무를 수행하였고 김일성이 죽었을 때는 서열 23위의 장의위원으로 선임되었으며 최근까지 20여 차례에 걸쳐 북한을 드나들면서 북측의 지령을 받아 왔다는 것이다.
송교수가 처벌의 경고를 무릅쓰고 한국에 찾아와서 과거의 행적을 부인하고 전향을 완강히 거부하는 것은 이념적 혼란을 겪고 있는 남쪽에 둥지를 틀고 젊은이들에게 본격적으로 주체사상의 전도사 역할을 하려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송교수는 북한은 북한의 잣대로 보아야 한다는 소위 ‘내재적 접근법’이라는 교묘한 이론을 아직도 내세우고 있다. 북한은 북한의 잣대로 보고 남한은 모순의 잣대로 접근한다면 그런 ‘불균형’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송교수를 너그럽게 받아 주자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것은 ‘관용과 포용’이라는 허황된 개념이다. 그 개념의 전제는 지금은 냉전의 시대가 아닌 화해의 시대라는 것과 우리의 국력이 북한을 압도하고 있으므로 체제경쟁은 이미 끝났다는 안이한 인식이다. 그러나 북한이 본질적으로 변하려는 의지가 없이는 한반도의 냉전이 끝났다고 할 수 없으며 북한이 경제적으로는 지리멸렬하지만 아직도 김정일 체제는 건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민족을 볼모로 핵을 보유하려는 위험한 도박을 계속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북한이 반세기 동안 집요하게 전개한 통일전선 전략의 결과로 심각한 국론분열의 위기를 맞고 있다. 우리의 국론분열은 선진국에서 볼 수 있는 건전한 진보와 보수의 상호보완적 대립구도가 아니라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과 북한을 반대하는 진영간의 극한적 투쟁이라는데 있다. 북한이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원군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남쪽의 김정일 추종세력이며 그들의 유일한 희망은 남쪽이 국론분열로 스스로 무너지는 것이다.
송교수가 경계인이라는 모호한 입장으로 이 나라에 정착한다면 진실로 위험한 일이 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성숙되지 못하였으며 우리의 현실은 북한을 관용하고 포용할 만큼 여유롭지 못하다. 그렇다면 송교수 같은 경계인은 마땅히 추방되어 더 이상 국론분열의 독소가 되지 못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