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교회 – 믿는 일과 매사에 명랑하고 적극적인 교인들

발행일 발행호수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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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우리끼리 스무살 때 온천여행 가기로 했는데, 그 때 관장님께 효도 관광 시켜드릴께요.”(초6. 배이슬)
“우리 관장님이 자주 어깨 아프다고 하시니 커서 안마사가 될래요. 그리고 관장님은 공짜예요.”(중3. 우민정)
“너희 관장님 좋아?”라고 묻자, 학생들은 이구동성, 두말없이 “우리 관장님이 좋아요. 재밌어요.” 거의 소리를 지르며 대답을 한다.
교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하나님 말씀 공부도 하고 학교 공부도 하고 체육대회 앞두고 운동도 하고 먹고 놀고 떠들고…
여수시 관문동 꼭대기 천부교 여수교회엔 늘 학생들로 북적인다.

“교회에서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게 제가 많이 끼고 있는 편이에요. 아이들 이야기를 많이 들어줍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친구 문제 때론 부모님과의 갈등도 이야기를 해요. 그러면 그걸 다 들어줍니다. 그리고 자기들 편에서 이해해주고 잡아주는 거죠. 아이들이 저보고 자기들 보모 같다고 해요.”

여수교회 우해숙 학생관장은 본인이 신앙을 키워왔던 과정을 돌아보면서 아이들에게 배운대로 해주고 있다. “주일학교 때부터 배운 것으로 지금까지 오고 있는 것 같아요. 일요일 예배를 빠지면 안 된다는 말씀과 헌금을 정성껏 드려야 한다는 말씀에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하면서 신앙이 커가게 된 것 같아요. 전도를 하면 기쁨이 넘친다는 말씀을 들었는데 실제로 전도를 하니까 기쁘고 즐거웠어요.”

우 관장은 믿지 않는 부모와의 갈등으로 집에서는 바람 잘 날 없었다. 하나님께 ‘보잘 것 없지만 하나님 손을 놓지 않을 테니 하나님, 꼭 잡아 주세요. 이끌어 주세요.’란 기도를 많이 했다고 했다. 그리고 ‘꼭 보답하겠다’는 기도도 함께 했다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이 무엇인가 찾게 되었고 그래서 전도를 더 열심히 하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우 관장은 대학 시절 우수 반사로 여러 번 수상한 경력이 있다.

여수교회를 찾은 것은 9월 첫 주. 토요일엔 몹시 많은 양의 비가 왔다. 여수. 서울에서 참 멀었다. 그 먼 거리에도 1956년에 하나님께서 오셔서 천막집회(여수 서초등학교 천막집회)를 열었던 곳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천부교 여수교회. 교회가 위치한 곳은 그 예전에 흑산의 돌을 깨서 세웠던 전도관이 있던 자리 바로 옆에 있다.

학생관장은 2007 천부교 체육대회의 어린이 고무줄 선수들과 함께 순천교회에 연습을 하러 가서 저녁 때나 되어야 온다고 했다.

여수역으로 마중을 나온 양정희 부인관장과 여수서시장 쇼핑타운내에서 시온쇼핑을 하고 있는 서경자 집사를 찾았다. 소비조합이 된 지 꽉 찬 2년이 된다는 서 집사는 “세상 돈은 벌어도 소용이 없었어요. 그 돈이 내 돈이 안 되고 다 날아가 버리더라구요. 벌어먹고 산다고 제단도 등지고 주일도 모르고 살았는데 지금은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마음도 편하고.” 중년의 얼굴이지만 아이같이 순수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서 집사의 얼굴에선 기쁨과 편안함이 묻어나왔다. 덕소신앙촌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축복 받던 이야기를 하면서 얼굴에 퍼지는 미소를 감추지 않았다.

부인회장 오월주 권사의 신앙의 동기는 남달랐다. “신앙촌 바지를 사 입고 신앙촌을 그리워했어요. ‘어쩌면 이리 좋을까’하고 말이죠.” 신앙촌 아줌마에게 사 입은 바지를 통해 신앙촌을 그리는 마음을 갖고 살다가 하나님께서 순회 집회를 하시며 여수에 오신다는 소식에 신앙촌 아줌마와 함께 처음 천부교회를 찾았다는 오 권사. 오 권사는 결핵을 심하게 앓은 후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빼빼 말랐었는데 어느 날 꿈결에 ‘이제 밥 먹어’라는 음성과 위를 탁탁 쳐주시던 손길을 체험하고 그날로 밥을 먹으면서 건강해졌다고 했다. 그런데 천부교회에 와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집회에 참석해 보니 꿈에 뵌 바로 그 손, 그 음성인 것이었다. 그렇게 천부교인이 된 오 권사는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마지막 축복을 세상적인 일로 놓친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 아깝고 안타까워 교회 일이라면 무엇도 앞장 서서 하고 싶은 마음으로 열심히 실천하고 있다.

천부교회에 나온 지 햇수로 7년이 된 박대엽 집사는 아들인 천부교 광주교회의 최현동 집사의 열매이다. 천부교에 나오기 전 불교를 지성으로 믿어왔다는 박 집사는 “거기는 내 길이 아니었던 거예요. 아들이 어머니 위해 37년을 헌금을 드렸다고 그래요. 제가 천부교회에 나오면서 모든 일이 잘 된다고 얼마나 기뻐하는지 몰라요. 아들은 매일 저녁 안부 전화하고 살뜰히 챙깁니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점심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다가 문득 생각 난 듯 “진짜 하나님이 지켜주세요. 축복일에 기장에 가면서 가스불에 국냄비를 얹어놓고 다녀온 거예요. 올려놓은 것도 까맣게 모르고 다녀왔는데 왔더니 가스불이 켜있는데 냄비는 타고 국만 졸아서 그 냄비는 씻어서 지금 다시 쓰고 있어요.”

박 집사는 축복일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면서 오히려 주위 사람들의 축복일 참석을 독려한다.

일요일 오후 예배를 마치고 아이들은 학생관장과 함께 해변공원에 가서 운동을 마치고 다시 교회로 돌아왔다. 학생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음식센스 끝내주는 학생관장님표 떡볶이’에 밥까지 비벼 먹으며 또 한번 왁자하다.

늦은 시간 이런 소란스러움에 인상 한 번 구길만도 한데 양정희 부인관장은 온화한 미소로 아이들을 지켜본다.

“저도 학생 때 신앙이 전성기가 아니었나 싶어요. 인천에서부터 소사신앙촌까지 통학을 하면서 시온 중고등학교를 다녔어요.”

어머니(최재복 권사. 소사신앙촌)를 옆에서 보면서 ‘어머니는 천부교회에 나오면서 건강을 찾으시고, 교회에 나오면서 집안이 축복을 많이 받아 부유해졌다’하는 생각을 했다는 양 관장은 인천제단에서 많은 사람을 안수해주시느라 너무나 많은 땀을 흘리시던 하나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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