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령 속 깊이 스며드는 향기’가 이것이구나!

신효균 승사(1) / 부산 기장교회
발행일 발행호수 2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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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1936년 충청남도 논산군 채운면에서 태어났습니다. 저희 집은 천석꾼이라 소문이 날 만큼 큰 부자였습니다. 부모님은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셔서 큰 가마솥에 밥을 해 두고 누구든지 들어와 먹게 하셨고,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 주기도 하셨습니다.

아버님이 종교를 믿지는 않으셨지만 교양에 좋을 거라며 교회에 다녀 보라 하셔서 저는 동네에 있는 감리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리고 제 나이 스무 살 때 교회 청년과 결혼하게 됐습니다. 목사가 꿈이었던 남편은 고등 성경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총회 신학교에 다녔는데 서울에서 공부하면서 가끔 논산 집에 다니러 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신학교를 그만두고 전도관의 전도사가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전도관은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분이 세우신 교회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고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성경 지식도 특출했는데 신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하니 시아주버니는 안 된다며 펄쩍 뛰셨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뜻을 굽히지 않고 설득하면서 그동안 겪었던 일을 들려주었습니다.

박태선 장로님 설교집을 읽으니
하나님께서 멀리 계신 것이 아니고
은혜를 내려 주신다는 것을 깨달아
그때부터 하나님께 기도드려

남편은 폐병에 걸려서 몇 달간 고생하다가 박태선 장로님께 안수를 받고 완전히 나았다고 했습니다. 안수를 받는 순간 뜨거운 불덩이가 등에 떨어진 것처럼 후끈후끈하더니 온몸이 가뿐해졌고, 병원에서 진찰을 받아 보니 완쾌됐다고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성경학교 시절에 형제처럼 지냈던 친구가 원효로전도관에서 전도사를 하고 있어 친구와 성경 토론을 했다고 했습니다. 신학박사들도 대답하지 못했던 성경의 의문을 그 친구가 속 시원히 풀어 주면서 “이것은 내 말이 아니고 감람나무 박태선 장로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이라고 해서 놀라웠다고 했습니다. 호기심이 생긴 남편은 전도관에 다니며 감람나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게 되었고 이제는 감람나무를 따르는 것이 참길이라는 확신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남편의 굳은 결심에 시아주버니는 더 이상 말리지 않으셨고 저는 박 장로님이 어떤 분이신지 더 알아보고 싶어졌습니다.

얼마 후 남편이 순천전도관의 전도사로 부임하면서 저에게 박태선 장로님 설교집을 주고 갔습니다. 저는 그 책을 옆에 두고 매일 읽고 또 읽었습니다. 성경을 잘 몰랐지만 구절구절 풀어 주시는 말씀이 재미있었고 유명한 장관과 박사들이 박 장로님께 은혜를 받았다는 체험담이 신기했습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설교 말씀을 들어도 하나님에 대해 막연하게 느껴졌는데 박 장로님 말씀을 보니 ‘하나님께서 멀리 계시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은혜를 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박 장로님 설교집을 앞에 놓고 ‘하나님!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미련하지만 여기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에게도 은혜를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드렸습니다.

이만제단 개관 집회 예배 시간에
박 장로님의 얼굴과 온몸에서
환한 빛이 쏟아져 나온 모습에 감탄
참으로 높고 귀하신 분이라 생각

그 후 1957년 4월 서울에 이만제단이 세워져서 개관집회가 열릴 때 저도 참석했습니다. 서울에 도착해 보니 시내버스마다 이만제단 집회 포스터가 붙어 있었고 안내 띠를 두른 전도관 학생들이 곳곳에서 안내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만제단 올라가는 언덕길은 전국 각지에서 모인 교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는데, 시골에서만 지냈던 저는 그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모습이 놀라웠습니다. 집회 중에 열린 체육대회까지 참석하고 나니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는데 한 가지 인상적인 것이 있었습니다. 예배 시간에 박태선 장로님을 뵈었을 때 얼굴과 온몸에서 환한 빛이 쏟아져 나오던 모습이었습니다. 내 눈이 잘못됐나 하며 비비고 다시 봐도 마찬가지였고 ‘세상에 저런 분이 계실까!’ 하며 감탄했습니다. 박 장로님은 참으로 높고 귀하신 분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천전도관 교인들과 예배 후에도 남아서 함께 밤새워 기도드리며
찬송하는 중에 아주 좋은 향기가 예배실을 가득 채운 것처럼 진동해
마음이 기뻐지고 온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져서 둥둥 떠오르는 것 같아

집회를 마치고 돌아온 후에는 남편이 시무하고 있는 순천으로 가게 됐습니다. 순천전도관에 교인이 계속 늘어나고 예배 후에도 남아서 기도드리는 사람이 많았는데, 하루는 교인들이 철야 기도를 하기에 저도 따라한 적이 있었습니다. 밤새워 기도드리다 같이 찬송을 부를 때는 “진실히 주를 믿고 그 뜻을 행하면 주께서 영원히 같이할지니∼” 하는 찬송이 마음에 와 닿으며 참 좋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같이해 주시는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한 글자 한 글자 뜻을 생각하며 찬송하는 중에 어디선가 아주 좋은 향기가 맡아졌습니다. 화장품이나 향수 냄새는 아닌데 그보다 훨씬 좋았고 마음은 왜 그리 기쁘고 즐거운지 몰랐습니다. 향기가 예배실을 가득 채운 것처럼 진동하더니 온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져서 둥둥 떠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박 장로님 설교집 중에서 임영신 박사가 향기를 맡았다고 했던 체험담이 떠올랐습니다. 그분이 ‘심령 속 깊이 스며드는 냄새’라더니 이걸 말한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천전도관에서 몇 달 지낸 후 남편은 안성전도관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안성에서는 교인들과 같이 흙벽돌을 찍어서 제단을 지었는데 함께 힘을 모아 일하는 것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제단을 다 짓고 하나님께서 오실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산기슭 외줄기 조그만 촌에 아담한 제단은 시골 전도관∼” 하는 찬송을 자주 불렀습니다.

(신효균 승사님 신앙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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