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촌 상공에 장엄한 축복이 내리는 것 자주 목격해

정수길 승사(2)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276
글자 크기 조절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신앙신보 사진

저는 이만제단의 주일예배에 참석하면서 차츰 하나님 설교 말씀을 이해하며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비롯한 성경상의 선지자에 대해 풀어 주셨는데, 기성교회에서 들어 보지 못한 그 말씀이 참으로 새롭고 재미있었습니다. 또한 구원을 얻으려면 죄와는 상관없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시는 한 말씀 한 말씀이 제 마음속에 울렸습니다. 아버님께서 제가 전도관에 다니는 것을 아시고 심하게 반대하셨지만 저는 제 뜻을 굽힐 수가 없었습니다. 전도관에 대해 비방하는 말만 들으시는 아버님을 보면서 저의 지난 모습을 되돌아보게 되었고, 구원의 참길을 깨달은 이상 어떤 어려움이 와도 이 길을 따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풀어주시는 성경 말씀은 기성교회에서는 들어보지도 못한
새롭고 재미있는 구원의 말씀 한 말씀 한 말씀이 제 마음에 울려

그 후 1963년 군에 입대한 저는 논산훈련소에서 신병 훈련을 받은 후 계속 그곳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병영 생활을 하며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에서 친구 재환이가 보내 주는 신앙신보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매주 신문에 실리는 설교 말씀을 통해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었고 은혜 체험담을 읽을 때는 은혜를 허락해 주시는 예배 시간이 몹시도 그리웠습니다. 그 후 근무지가 27연대로 옮겨지면서 일요일 외출이 허용되어 인근의 금마전도관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주일에 단 하루 예배에 참석하는 그 시간이 더할 수 없이 귀하게 느껴졌습니다. 당시 금마전도관은 언덕 위의 자그마한 시골 제단이었는데 하루는 예배드릴 때 향취가 강하게 진동하는 것이었습니다. 제단을 가득 채우는 듯한 향취 은혜 속에서 이곳 시골 제단에도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심을 마음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주 하나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천국이니” 하는 찬송가를 그때 절실히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군에서 제대한 저는 졸업 후 서울에서 교편생활을 시작했으며 매일 도봉제단에서 새벽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교인 분들과 같이 여러 집을 심방한 적이 있었는데, 어느 집에 갔더니 환자 분이 오랫동안 거동을 못하여 등에 생긴 욕창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아파하시는 모습을 보고 몹시 안타까웠던 저희들은 그때 생명물이나 축복 캐러멜이 없어서 급한 대로 축복 캐러멜 포장지를 욕창 위에 붙여 드렸습니다. 욕창 부위는 피부가 심하게 짓물러 진물이 줄줄 흐를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잠시 동안 찬송을 부른 후 욕창을 다시 살펴봤더니, 진물이 어느새 꾸덕꾸덕하게 마르고 정상 피부와 다름없이 되어서 모두들 놀라워했습니다.

군에 입대하여 하나님의 예배 시간을 몹시도 그리워 하던중 시골전도관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강한 향취가 진동해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심을 감사

1981년 하나님께서는 감람나무가 곧 하나님이심을 발표하신 후, 인간의 창조와 천체 운행 등 창조주만이 밝히실 수 있는 말씀을 세밀히 풀어 주셨습니다. 지구과학을 전공한 저에게 우주와 지구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은 경이로울 뿐이었습니다. 태양 열도나 화산 폭발에 관한 말씀은 학교에서는 결코 알 수 없는 내용이었으며, 특히 지구 가열에 관한 말씀이 너무도 인상 깊었습니다. 하나님의 신이 화부(火夫) 역할을 하며 지구 내부에서 가열하실 때 암석에 따라 열이 통과하는 정도가 다른 것을 전부 계산하여 가열하게 되며, 지열과 함께 지상의 햇빛과 바람 등 모든 조건을 알맞게 조절하셔서 식물의 뿌리가 마르지도 냉하지도 않게 되어 곡식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말씀이었습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을 직접 뵈었다는 사실은 생각하면 할수록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 귀한 말씀을 듣고 깨달으면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경외를 마음 깊이 새기게 되었습니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을 직접 만났다는 사실은
생각하면 할수록 엄청난 일, 그분의 귀한 말씀을 듣고 깨달으면서
다시 한번 감사함과 경외로운 마음을 깊이 새기게 돼

1981년에는 제1회 이슬성신절이 제정되었으며 이후 해마다 축하 음악회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서울 남성 합창단으로 활동하게 되었는데, 특히 1986년 이슬성신절 음악 경연 대회에서 1등을 수상했던 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합창단원들 모두 한마음이 되어 열심히 연습했던 것과 합창을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올 때 하나님께서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은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습니다. 현재 저는 시온 남성 합창단으로 활동하면서 여가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 1999년 교직에서 정년 퇴임한 저는 기장신앙촌에 입주하여 신앙촌 인근 동부리에서 경비 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신앙촌 상공에 찬란한 빛으로 은혜가 내리는 것을 자주 목격했는데, 경비원들뿐 아니라 신앙촌에 있는 주민들과 도로에 지나가던 사람들까지 다 함께 그 모습을 보았습니다. 밤하늘에 선명하고 영롱하게 빛나는 성신을 보면서 저는 은혜를 허락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곤 했습니다.

시신이 피는 것을 많이 보았으나 2001년 성영순 전직 관장님 장례에서
피부가 형광등처럼 빛나는 시신 처음 봐 하나님의 크신 권능에 놀라며 감사드려

저는 이 길을 따르며 시신이 은혜를 받아 아름답게 피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2001년에 72세를 일기로 운명하신 성영순 전직 관장님이셨습니다. 생명물로 씻긴 시신은 피부가 너무나 맑고 뽀얗게 피어나 마치 형광등이 하얗게 빛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저는 고인과 같은 숙소에서 생활하며 생전의 모습을 잘 알고 있었기에, 살아 계실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운 모습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신이 피는 것을 많이 보았으나 피부가 형광등처럼 빛나는 시신은 그때 처음 보았습니다. 입관예배에 참석한 유족들과 교인들 모두 그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크신 권능에 놀라워하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50년 가까이 이 길을 따르는 동안 하나님께서 은혜로 함께해 주심을 깊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여 하나님 앞에 간구할 때면 큰 위로와 평안을 주시며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셨습니다. 가르쳐 주신 말씀대로 자유율법을 지키고자 노력하면서 죄를 멀리하는 생활이 될 것을 다짐해 봅니다. 하나님 빛 앞에 설 수 있는 가지가 되기를 오늘도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관련 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