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를 마치고…

10개 도시 15회 집회 118일간의 대장정의 현장을 답사하고
발행일 발행호수 2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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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퍼즐의 조각이 하나하나 맞춰진다.”지난해 1955년 하나님의 천막집회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2005년은 천부교단으로도 50년을 맞이하는 해이고 신앙신보도 창간 50년이 되는 해였다. ‘1955년 하나님께서 인도하셨던 천막집회의 현장을, 집회가 열렸던 기간에 그 때에 참석했던 분들과 함께 찾아가본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으로 기획을 하게 되었다.그러나 손에 들고 있는 자료는 체험기와 신앙신보가 거의 전부였다.
 
1955년 하나님의 천막집회 가운데 첫번째 집회인 남산집회. 집회 당시의 모습을 그려보기에는 남산이 너무 많이 변모되어 일제 시대 찍은 남산의 사진들을 찾아보면서 말로만 들어서 다 그려지지 않는 집회 당시의 규모를 머리 속에 그려볼 수 있었다.
 
두번째 영등포집회자리는 지금 여의도라는 사실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 때 집회 자리를 증언해 주었던 문명아권사님은 약속 하루 전날 한 번 더 나와서 그 때의 걸음과 기억을 더듬어 ‘바로 저쯤’이라고 정확하게 집회자리를 짚어주었다.
 
5월 23일부터 31일까지 열린 부산공설운동장집회. 신앙신보에 기사가 나간 후에 부산공설운동장집회에 대한 부산일보의 기사를 찾아 다섯번째 집회인 대구집회 기사 앞머리에 인용하기도 했었다.
 
7월에는 수많은 인파가 참석했던 한강백사장집회 자리를 찾았다. 한강개발로 한강도 예전의 모습은 사진으로 그려 볼 수밖에 없었다.
 
장마와 한여름의 무더위를 피하고 9월 16일 하나님께서는 인천의 동산학교에서 집회를 재개하시게 된다. 집회 때마다 청해서 듣게 되는 권사님들의 이야기 안에서 그 당시의 체험은 권사님들 신앙의 뿌리이고 기쁨임을 확인하며 취재를 하며 더불어 힘을 얻는다.
 
그 다음 집회가 대구집회이다. 이번 기획이 ‘집회가 열렸던 그 때 그 자리에 그 사람이’라는 컨셉이어서 대구에서 두 번째 열린 집회현장에 찾아가는 것에 대해서는 살짝 고민을 했었다. 6월에 집회가 열린 장소와 같았다. 1955년에 한 도시에서 두 번 이상 집회를 하신 경우는 세 곳으로 서울, 부산, 대구이다. 그러나 서울과 부산은 집회가 열렸던 장소가 달랐다. 고민 끝에 ‘이 때는 그 때와 다르니까’ 찾아가기로 결정했다. 그러면서도 같은 자리에서 얼마나 다른 내용을 찾을 수 있을까 내심 걱정을 했었다. 그러나 그 집회는 완성해야하는 퍼즐의 또다른 조각이었다.
 
하나하나 그림이 되어가는 대구 9월집회의 모습에서 전율이 느껴졌다. 천우교회 주최라는 영남일보의 광고 문구를 보고 인터넷을 아무리 검색해도 나오지 않았던 천우교회가 집회장소 바로 옆에 있던 침산제일교회라는 증언을 대구교회의 허두생권사님으로부터 듣게 되었다. 산역사의 힘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침산제일교회 50년사>를 접하게 되었고 하나님 말씀에서 들어왔던 ‘기성교회 목사들이 교회를 짓다가 못지으면 하나님을 모시고 집회를 하려고 줄을 섰다’는 말씀을 기성교회 목사의 글 속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대구 칠성동 천변을 또 찾아가기로 한 결정은 잘한 일이었다고 가슴을 쓰러내린다.
 
원주집회. 남아있는 기록이 가장 적었던 집회이다. 가까스로 찾아진 참석자들과 원주까지 기차를 타고 가긴 갔으나 결국 집회가 열렸던 장소가 어디인지는 찾지를 못했다. 원주집회 자리를 기억하는 독자 여러분의 연락을 기다린다.
 
이어지는 호남집회-광주공원집회, 순천집회, 목포집회.
 
순천집회 취재를 위해 순천에 내려갔더니 순천철도국 운동장 천막집회로부터 2년 뒤의 이야기를 하시는 권사님 앞에 앞길이 깜깜. 막막. 순천까지 내려왔는데… 뒤늦게야 광양교회 집사님이 참석했다는 소식에 부랴부랴 연락을 취하고, 갑자기 연락받고 철도국운동장에 나온 남준우집사님은 덕소신앙촌에서 남자소비조합원들끼리 찍은 사진과 다다미 바닥이 보이는 오만제단에서 찍은 사진까지 들고 나와 주었다. 호남 지방에 폭설이 계속되고 찬바람이 부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취재에 기꺼이 협조를 해주었다.
 
마지막 목포집회. 지금까지 천막집회는 거의 그 지역에 계시는 분들과 함께 집회 장소를 찾아갔었다. 그러나 목포집회는 소사교회의 김금순권사님과 함께 KTX를 타고 내려갔다 왔다. 얼굴을 전혀 모르는 상태로 전철역에서 만나기로 하여 바로 앞에 두고도 지나치며 50여분을 허비한 후 우여곡절 끝에 권사님을 확인하고 늦게야 목포에 다녀왔다. 집회 장소를 찾아간 날 다음날부터 기온이 급강하하여 전국이 꽁꽁 얼었다. 83세의 노권사님을 모시고 그날 다녀온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송혜영기자news-song@theweek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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