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성신의 은혜 널리 전해야
감람나무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라는 증거 중에 첫 번째는 그가 ‘하나님의 신’을 내린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 ‘성신(聖神)’이라는 기록이 나오지만, 감람나무가 내리는 이슬성신은 성신중의 성신인 것입니다.
감람나무가 구원의 이슬성신을 내린다는 것이 과연 사실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를 두고 과거에 사상 초유의 법정 공방과 우리나라 메이저 언론과의 일대 대결의 역사가 펼쳐졌었습니다.
1959년 서울지방법원 대법정에는 이남규 판사가 법대에 앉아 있고 그 주변에는 증인이라는 이름으로 기성교회 교권주의자들이 둘러싸고 있었는데 그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 판사를 부추겨 박태선 장로가 지금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슬성신을 내린다고 하니 그것이 진짜냐, 가짜냐, 진짜라면 우리 눈앞에도 보여 줄 수 있는 것이냐고 윽박질렀습니다. 그때 박태선 장로님이 “이슬성신은 진실이다. 지금이라도 내가 집회를 하면 이슬성신이 내리는 것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라고 분명한 답변을 하자 그들은 더 이상 맞서지 못하고 꼬리를 내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초창기 집회에서 수많은 사람이 이슬성신을 목격한데다가 그 가운데는 다수의 목사들도 이슬성신을 체험한 바 있었기 때문에 잘못하다가는 이슬성신의 진정성을 사법부의 판결로 확인하게 될까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당시의 동아일보는 이슬성신이 가짜라고 줄기차게 주장했던 한국 언론의 대표 격인 신문이었습니다. 동아일보는 집회장에서 이슬성신이 찍힌 사진을 가짜라고 매도하면서, 자기네가 조작한 괴상한 사진을 게재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슬성신을 체험한 수많은 천부교인들과 그것을 한사코 부인하려는 동아일보와의 한판 대결은 불가피하게 되었습니다. 상식과 과학적 증거와 논리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자 물리적 충돌이 빚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1960년 12월 11일 동아일보사 내외에서 천부교인들이 벌인 대규모 집회와 충돌, 세간에 이른바 ‘동아일보사건’으로 알려진 것은 그렇게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이슬성신이 진짜냐 가짜냐 하는 기성교회와의 논란은 그 후에도 양상을 바꾸어 계속됐지만, 이슬성신을 부인할 수 없는 확실한 다른 증거 때문에 이 싸움은 싱겁게 끝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이슬성신이 담긴 물을 사람의 시신에 바르면 흉한 모습을 했던 시신(屍身)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현상은 죽은 시신이, 믿는 사람이든 안 믿는 사람이든, 어떤 종교를 가졌던 사람이든, 무종교인이든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언제나 어디서나 나타나는 객관적 사실이므로 이슬성신을 증명하는 확실한 과학적인 증거가 된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통탄하는 것은 세상의 모든 지성인들과 지도자들이 이슬성신을 좀 더 일찍이 깨달았다면 온 인류에게 얼마나 유익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깨달아서 이슬성신을 부정하는 기성교회의 훼방을 초반에 제압했더라면 온 인류에게 이슬성신의 축복이 전파되었을 것이고 세상은 달라졌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슬성신을 먼저 체험하고 믿는 우리들의 책임이 얼마나 중차대한 것인가 하는 것을 새삼 엄숙히 자성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