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영의 퇴임관장
`인내의 도수가 차야 믿음을 완성할 수 있어`오랜 장마 끝에 맑게 갠 기장신앙촌의 하늘은 한층 더 파랗고 맑았다. 남삼호 관장(전주교회)과 이종숭 관장(일광교회)이 홍영의 퇴임관장(기장신앙촌)을 만나 그의 오랜 교역경험과 신앙체험을 듣고 대화를 나눴다.
이종숭 관장(일광교회): 하나님을 만나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홍영의 퇴임관장: 저는 이북에서 피난을 내려와 대구에서 살았는데 일요일이 되면 마음의 안정을 얻기 위해 교회를 찾았고 전형적인 장로교 집사로 열심히 믿었습니다. 그러나 평소에 목사들의 설교를 듣고 저렇게 믿어서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을 늘 가졌습니다.
1955년 하나님의 대구 칠성동 집회에 처음 참석했을 때 혼신의 힘을 다하여 외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사자후와도 같아 두려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후 한강 모래사장집회에 참석하여 비로소 하나님의 권능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강대상을 힘껏 내려치신 후, “쉭-쉭” 기운을 부시며 “병 나은 사람은 일어나 간증을 하세요.” 하고 말씀하시자 옆에 앉아 있던 18세 정도의 처녀 곱추가 벌떡 일어서서 “내 등이 펴졌어요.” 하고 기뻐 뛰는 것을 보고 저는 제 눈을 의심하여 옆으로 가서 그녀의 등을 손으로 만져 봤습니다. 놀랍게도 굽었던 척추가 반듯이 펴져 있었습니다. 벙어리가 일어서서 “엄마”를 부르며 기뻐 뛰는 것을 보았고, 중년 남자가 자신은 문둥병 환자인데 손에 흐르던 진물이 이렇게 말라 병이 나았다며 덩실덩실 춤을 추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도 마음 깊은 곳에서 한없는 기쁨과 즐거움이 샘솟듯 솟구쳐 올라왔고 입에서는 기쁨의 찬송이 쉴새없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후 한동안 하나님을 뵙지 못하다가 용산구 원효로에 계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구제단 이층에서 안찰을 하시는데 이번 기회에 저도 꼭 안찰을 받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원효로 구제단 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제 차례가 되자 저를 보시고 “어디서 오셨습니까?” 하고 물으시기에 “대구에서 왔습니다.” 대답했더니 미소를 지으시며 “복이외다, 복이외다. 참으로 복이외다.” 하시고는 “대구에 내려가시면 그곳에 있는 식구들과 같이 제단 지을 때 꼭 협력하세요.”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날 밤차로 대구에 내려가려고 하다가 너무 아쉬워 안내원에게 혹 하나님의 특별집회가 없느냐고 물었더니 내일부터 시내 구역 대심방을 하신다는 반가운 소식을 알려 주었습니다. 메마른 심령 위에 생명수의 은혜가 강같이 흘러넘치게 하심으로 일명 ‘수도공사’ 라고 불렀던 ‘무더기 심방’을 따라 다니면서 저는 기성교회에 왜 구원이 없으며 목사가 왜 거짓목자인가 하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장로교회 다닐 때에부터 뭔가 미심쩍고 의아했는데, 이제 ‘참 길’을 분명히 알게 되었던 거지요.
1957년 2월 11일, 대구 신천동에 120평의 새 제단을 짓고 하나님을 모시고 집회를 하는 동안 수많은 기성교회 교인들이 참석하였습니다. 집회가 끝난 다음 일요일 예배에는 무려 300여명의 새 식구가 모였고 주일학생은 800명이나 되었습니다.
이종숭 관장: 대구에 제단을 짓고 어떤 일을 하셨는지가 궁금합니다.
홍영의 퇴임관장: 제가 대구 남자교인 1호이다 보니까 전도사님은 꼭 필요할 때만 심방을 가시도록 하고 제가 권사들 7~8명을 데리고 심방을 전담하였습니다. 부전도사 역할을 한 셈이지요. 어느 날 기성교회에서 갓 돌아온 어느 여자 분이 급성 맹장염에 걸렸는데 입원할 돈이 없어 수술을 못 받고 있다는 딱한 사정을 듣고 저는 생명물을 들고 찾아 갔습니다. 가보니 환자는 방안에서 배를 움켜쥐고 심한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매달려 찬송하고 가지고 간 생명물을 마시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후 3일간 연거푸 심방하여 생명물을 마시게 했더니, 3일 후 일요일 예배 때는 어린아기를 업고 건강한 모습으로 제단에 나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일도 있었습니다.
남삼호 관장: 교역생활은 언제부터 하셨으며 교역생활 중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홍영의 퇴임관장: 대구 제단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보신 하나님께서 1958년 저를 전남 벌교로 교역자 발령을 내셨지요. 대구에서 제가 평신도였을 때도 저는 항상 생명물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당시에는 생명물만 먹고도 사람들의 병이 100% 나았지요. 벌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임영심이라는 처녀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하면서 구르다가 방에서 숨이 멎은 겁니다. 생명물을 가지고 당도하니 숨이 없어요. 집사님들과 예배를 보니 입이 굳어져 생명물이 들어가지 않는 거예요. 입을 좀 벌려 생명물을 넣으니 꼴깍 꼴깍 들어가지 시작해요. 그러자 영심이가 ‘푸’하고 숨을 쉬기 시작하니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고 난리가 났지요. 이 외에도 예를 들자면 끝이 없을 정도로 생명물을 가지고 감람나무를 증거 하였습니다.
1986년 11월 30일, 홍영의 관장은 30년 동안의 교역생활을 접고 정년퇴임 했다. 92 세의 홍영의 관장은 그의 소원대로 퇴임 후에 기장신앙촌에 입주하여 모든 혜택을 받으며 지금 평안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정리 김종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