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종교 탐구 <41>탄생설화를 사실로 믿는 이들에 대하여-①

세계 종교 탐구 <41>
발행일 발행호수 2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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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1> 부처님 오신 날을 알리는 거리의 연등
연등에는 연꽃 위에 서서 하늘과 땅을 가리키는 아기 부처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출처: 클립아트코리아, 울산신문)

지난 5월 15일(음력 4월 8일)은 부처가 탄생한 것을 기념하는 불교의 가장 큰 명절인 ‘부처님 오신 날’이었다. 며칠 전부터 전국 사찰에서는 각종 연등 행사를 진행했고, 거리에는 부처님 오신 날을 알리는 연등이 줄지어 걸려있었다. 연등에는 주로 연꽃 위에 서서 하늘과 땅을 가리키는 아기 부처의 그림이 그려진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부처의 탄생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자료1> 어머니의 옆구리에서 태어난 부처는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었는데, 그 걸음마다 연꽃이 피어올랐으며, 손가락으로 하늘과 땅을 가리키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쳤다고 한다. 이것이 가장 일반적인 부처의 탄생설화다.

부처뿐만 아니라, 인간들은 신이나 위대하게 여기는 인물의 탄생을 묘사할 때 흔히 비현실적인 묘사를 사용해 왔다.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 탄생부터 비범하게 묘사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종교에서 더욱 두드러지는데, 이번『세계 종교 탐구』에서는 종교에서 주장하는 탄생설화들에 대해 알아보고, 이를 사실로 여기는 믿음에 대해 검토해 볼 것이다.

▣ 탄생을 비범하게 묘사하다

<자료2> 파르슈바나타의 탄생
자이나교의 최초의 성인 파르슈바나타의 탄생을 그린 인도의 세밀화. 파르슈바나타는 어머니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출처: 샤루크 후사인,『여신』, 도서출판 창해, 2005., p.121.)

인간은 어떻게 태어날까? 인간은 유성생식을 하는 동물이다. 암수의 구별이 있는 두 생식 세포가 결합하여 새로운 개체를 만든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되고,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되고, 자궁에서 성장·발육한 태아가 여성의 외음부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이 일반적인 인간의 탄생 과정이다. 생물학적 지식이 없더라도 남녀가 성관계를 가진 뒤 여성의 배 속에서 태아가 자라나고 10달쯤 지나 출산한다는 것은 고대에나 지금이나 인간의 상식이다. 그러나 종교에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이한 탄생설화들을 주장해왔다.

예를 들면 어머니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는 인물은 부처뿐만이 아니었다. 불교와 유사한 종교인 자이나교의 최초의 성인 파르슈바나타도 어머니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자료3> 바위에서 태어난 미트라
로마의 미트라 신은 한 손에는 횃불을, 다른 손에는 단검을 들고 바위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출처: 위키피디아)

<자료2> 고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신은 아버지의 허벅지에서 태어났다고 하며, 로마의 아프로디테 여신은 우라노스 신의 생식기가 잘려나가 바다에 떨어져 생성된 거품 속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12월 25일 태어났다는 로마의 미트라 신은 바위로부터 태어난 것으로 묘사된다. 미트라는 태어날 때 이미 청년의 상태였으며, 한 손에는 횃불을, 다른 손에는 단검을 들고 어머니 바위라고 부르는 바위에서 태어났다고 한다.<자료3>

이처럼 다양한 탄생설화가 있지만 범세계적으로 흔한 케이스 중 하나는 ‘처녀생식’이다. 처녀생식은 일반적으로 ‘처녀가 자식을 낳았다’고 풀이되는데, 과학적으로는 ‘난자만으로 생식이 이뤄진다’고 한다. 수컷에 의한 수정 없이 암컷 혼자만으로 개체를 증식한다는 것이다. 수컷이 부족한 상황에서 하나의 생존 전략이 되기 때문에 일부 하등 동식물들은 실제로 처녀생식을 한다. 하지만 고등 생물인 포유류와 인간은 처녀생식이 불가능하며, 현재까지 자연적 처녀생식 사례가 보고된 바 없다. 생쥐같은 일부 포유류에서는 실험실 상에서 인공적으로 처녀생식을 성공시킨 케이스가 있으나, 처녀생식으로 태어난 새끼는 암컷만 될 수 있다.<자료4> 난자에는 수컷을 결정짓는 유전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종교에서는 처녀생식으로 아들을 낳았다 주장했다.

<자료4> 처녀생식으로 태어난 쥐와 그 자식들
처녀생식으로 태어난 쥐가 정상적으로 자라 자식까지 낳은 모습이다. 저 어미 쥐의 성별은 암컷이다. 난자에는 수컷을 결정짓는 유전자가 없기 때문에 처녀생식으로 태어난 새끼는 암컷만 될 수 있다. 이에 미국의 한 언론에서는 “과학자들이 아버지 없는 예수 쥐를 사육했다”는 제목으로 “아동 판타지 소설같은 성경의 이야기가 아니라 최신 과학의 성과”라는 기사를 보도하기도 했다. (출처: futurism.com/the-byte/scientists-breed-jesus-mice)

▣ 처녀생식과 처녀신 숭배

처녀생식에 대한 기록은 문자가 해석되는 최고(最古) 문명인 수메르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으며, 처녀생식이란 개념은 수메르뿐만 아니라 바빌로니아, 이집트, 그리스, 히브리 문화 등에서 보편적으로 드러나는 이야기이다. 수메르의 창세 이야기 「에누마 엘리쉬」에 의하면 태초의 모신(母神) 티아마트는 자손들을 죽이려는 남편 압수의 계획에 반기를 들어 그에 대항할 자식들을 스스로 낳는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앞으로 소개할 여러 문화권의 처녀생식 사례에서 ‘처녀’란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과 성관계를 하지 않은 여성’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의 시인 헤시오도스의 서사시 「신들의 계보」에 따르면 그리스의 태초의 모신 가이아도 남성과 관계를 하지 않고 홀로 하늘의 신 우라노스, 산의 신 우로스, 바다의 신 폰토스를 낳았다고 한다. 또한 제우스의 아내 헤라도 제우스가 혼자서 아테네 여신을 낳은 것을 시샘하여 본인도 혼자서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를 낳았다고 한다.

이집트 나일 삼각주 지역에서 어머니 여신으로 숭배되었던 네이트도 처녀생식을 하여 태양신 라와 악의 신 아펩을 낳았다는 기록이 있으며, ‘처녀 어머니 여신(Virgin Mother Goddess)’으로 묘사되었다. 오시리스의 아내이자 호루스의 어머니로 알려진 이시스 여신도 처녀생식을 했다는 주장이 있다. 후기 왕조 시대에 작성된 「루브르 파피루스 3079」에는 이시스가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모두 수행했다며 그녀의 처녀생식 권능, 자발적 회임을 암시하는 내용이 기록돼 있고,
「코핀텍스트 148번」에는 번개가 친 것을 보고 놀란 후 오시리스의 씨를 잉태했다고 기록되어 있어, 이시스가 번개에 의해 임신했다고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다.

인도 힌두교의 신 크리슈나도 어머니 데바키로부터 처녀생식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비슈누 프라나」에 의하면 힌두교의 3주신이자 비슈누파의 최고신 비슈누가 직접 데바키의 자궁으로 내려와 그녀의 아들 크리슈나로 태어났는데, 크리슈나가 태어나기 전, 그녀를 비추는 빛 때문에 아무도 데바키를 바라보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고 한다.

부처의 어머니 마야 부인은 결혼 후에도 오랫동안 자식을 낳지 못하다가 45세에 상아가 6개 달린 하얀색 코끼리가 하늘에서 내려와 오른쪽 겨드랑이로 들어오는 꿈을 꾼 후 부처를 잉태했다고 한다. 불교 경전에서는 부처를 잉태한 그녀의 몸을 성전과 법기로 보고 있다. 마야 왕비가 임신할 때, 천신들이 내려와 침대를 들고 올라가 천신들의 부인들이 그녀를 씻기고 천신들의 옷을 입혔다고 하며, 부처를 임신한 그녀의 자궁을 성소(聖所)로 여겼다.

<자료5> 프라 안젤리코가 그린『수태고지』 천사가 마리아에게
예수를 잉태할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는 모습의 상상화 (출처: 위키피디아)

현존하는 가장 유명한 처녀생식 탄생설화는 기독교가 주장하는 예수의 탄생설화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남편 요셉과의 동침 없이 혼외 자식인 예수를 잉태했는데, 이는 성령으로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한 것이며 천사가 이를 알려주었다고 주장했다.<자료5> 결혼 전에 임신하는 것은 당시 규례에 따라 돌로 쳐 죽임을 당해야 하는 중죄였기에, 그녀의 말을 믿지 못한 요셉은 아내를 배려해 조용히 파혼하기로 마음 먹었지만, 그에게도 천사가 나타나 성령으로 잉태한 것이 맞다고 얘기하고 요셉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사건이 일단락된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처녀생식으로 아들을 낳았다는 설화는 전 세계적으로 상당히 흔했다. 앞서 소개한 설화들은 가장 늦게 저술된 예수의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기원전 수천~수백 년 전 고대부터 존재했던 설화들이다. 이는 고대의 사람들이 직접 아이를 배고 출산하는 여성의 생식 능력을 더 높이 평가했음을 반영한다고 한다. 처녀생식을 하는 어머니와 여신들은 생명을 만들어내는 본인의 창조 능력, 다산의 능력으로 숭배 받기도 했지만, 처녀생식이 태어날 자식의 신성함과 특별함을 강조하려는 목적으로 쓰여진 경우, 세상의 구원자나 위대한 자식을 출산했다는 이유로 자식과 함께 숭배받는 경우가 많았고, 이는 모신 숭배 전통으로 이어졌다.

예수가 태어나기 몇백 년 전부터 근동 지역에는 메시아의 임신과 탄생에 관한 신화가 확실히 성립되어 있었다. 데메테르, 이시스, 아스타르테, 키벨레 등 마리아 이전의 여러 모신과 마찬가지로, 마리아도 인류의 구원을 위해 죽은 후 부활하는 아들을 낳아 전통적인 모신 숭배 스토리를 따랐다.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만으로는 마리아가 신격화될 만큼 대중적인 숭배를 받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천사가 예수 수태를 고지하는 일화에서 처음 등장하는 그녀는 요셉과 여행할 때, 예수가 탄생할 때, 양치기와 왕들의 경배를 받을 때, 예수가 처형될 때 잠깐 언급될 뿐 숭배 규모에 비해 성경에서 그녀에 관한 분량은 작았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 찬송, 그림 속에서 그녀의 모성을 찬양했다는 사실은 고대에 이미 널리 퍼져있던 어머니와 아들 신의 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음을 시사한다. 영국의 이집트학자 월리스 버지는 기독교 복음서 작가들이 마리아의 많은 특이점들, 예를 들면 처녀생식 문제 등을 이시스와 네이트의 속성으로부터 받아들였다고 했는데, 이는 이집트 뿐만 아니라 고대에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던 모신상이었다.

초기 그리스도교부터 지금까지도 많은 신학자들이 고증이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에 성모 숭배 사상을 제거하려 노력했지만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처녀신에 대한 전통적인 모습을 대중들의 의식 속에서 말살시킬 수 없었으며, 오히려 마리아는 그녀에게 흡수된 많은 이교도적 특성에 힘입어 자신의 위치를 계속 공고히 할 수 있었다. 성모 숭배는 가톨릭 교단이 제공하는 안전하고 거룩함을 연출하는 환경 속에서 오늘날까지 번창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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