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종교 탐구 <39> 순교는 천국을 보장하는가-①
세계 종교 탐구 <39>왼쪽 사진의 저 해골은 왜 금박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보관함에 전시되어 있는 걸까? 저것은 17세기의 프랑스 선교사 장 드 브레뵈프(Jean de Brébeuf)의 해골이라고 한다.<자료1> 그는 캐나다 휴런 지역에서 원주민을 대상으로 선교하다 살해당한 인물인데, 가톨릭교회에서는 그를 순교자라 부르며 성인으로 추대하고 있다. 성당에서 해골을 마주친 어린 아이는 무섭다며 엄마에게 달려갈 정도로 일반인들에겐 죽은 사람의 섬뜩한 유해일 뿐이지만, 가톨릭교회에서는 신자들이 찾아와 기도하는 성스러운 유물이다. 순교자와 그의 유물을 숭배하기까지 하는 것은 가톨릭만의 특징이나, 순교자를 영웅시하고 고귀하게 여기는 것은 대부분의 종교에서 공통된다. 목숨을 바칠 정도로 자신의 종교를 추앙하는 신자들이 많아질수록 그 종교의 생존에 유리하다. 세계의 주요 종교들은 순교를 기쁘고 영광스러운 행위로 가르치고, 순교자들에게 종교의 궁극적 목표이자 최고의 가치인 구원을 약속했다. 이에 따라 여러 종교에서 수많은 순교자들이 발생했는데, 종교의 주장대로 이들은 모두 천국에 갔을까?
이번『세계 종교 탐구』에서는 다양한 순교 사례들을 살펴보며 그 판단의 토대를 쌓아 볼 것이다.
▣ 순교자에게 천국을 약속하다
먼저 종교들이 순교에 대해 어떻게 가르쳤는지 알아본다. 많은 종교에서 ‘순교를 하면 천국에 간다’, ‘순교는 영광되고 기쁜 일’이라고 가르쳤다.이는 기본적으로 경전에 명시되어 있다.
이슬람교의 경전 꾸란에서는 “하나님의 길에서 순교한 자가 죽었다고 생각지 말라. 그들은 하나님의 양식을 먹으며 하나님 곁에서 살아있노라.(꾸란 3장 169절)”, “하나님을 위해 성전(聖戰)에 참여하도록 하여 내세를 위해 현세의 생명을 바치도록 하라. 하나님은 그에게 커다란 보상을 주실 것이라.(꾸란 4장 74절)”,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기뻐하며 그들과 함께 하지 못하고 뒤에 올 순교자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곳에는 두려움도 슬픔도 없노라.(꾸란 3장 170절)” 등 순교를 권하는 구절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기독교는 ‘순교자의 피는 그리스도교의 씨앗’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순교를 중요시하는 종교다. 그들의 경전 성경에는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예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마가복음 8장 35절)”, “주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요한계시록 14장 13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핍박받았느니라(마태복음 5장 12절)” 등의 내용이 여러 곳에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유대인들이 믿어온 순교란 ‘키두쉬 하셈(םשה שודיק, Kiddush Hashem)’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란 의미다. 구약성경에는 ‘키두쉬 하셈’이란 단어가 나오진 않지만 “하나님을 거룩하게 하라”, 또는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궁극적인 행위는 ‘율법을 어길 바에는 자신의 생명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사형집행을 당할 때도 키두쉬 하셈을 외치며 죽었다고 하는데,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라면 핍박도 즐거이 받겠다는 뜻이라고 한다.
순교를 가르치는 데에는 경전의 지침 외에도, 순교한 자의 일화를 영웅담처럼 풀어내는 방법도 효과적이었다. 예를 들어 유대교에는 ‘아키바’라는 유명한 순교자가 있다.<자료2> 서기 135년, 로마인에게 공개적으로 고문당해 죽은 랍비 아키바는 “들어라, 오, 이스라엘이여, 여호와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라는 말을 하며 죽었다고 한다. 그는 토라 교육이 사형죄로 규정된 후에도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토라를 가르쳤고, 처형당하기 위해 끌려 나왔을 때도, 아침 쉐마(유대인들이 아침 저녁으로 암송하는 신앙고백 기도문)를 암송해 쇠빗으로 피부를 벗겨내는 고문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기독교에선 아예 순교자들의 영웅적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 따로 출판하기도 했다. 1260년경 출판된 야코부스의『황금전설』은 유럽에 널리 퍼져있던 가톨릭 성인 전설을 한데 모은 책으로, 중세 당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베스트셀러였다. 발간되자마자 성직자들은 강론을 위해 읽었고 신자들은 신심 함양을 위해 이 책을 펼쳤다. 책의 내용은 대부분 어떤 인물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박해나 악마의 유혹, 잔인한 고문을 받다 순교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들의 죽음은 영웅스럽게 묘사되었고, 천국에 간다는 믿음에 오히려 순교를 기다리고 고통을 기뻐하는 모습들도 보여주었다. 이는 순교가 천국을 보장하는 영광스러운 일이라는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심어주었다. 일례로 동정녀라는 아가타(Agatha, A.D 230년-251년)의 전설에서도 순교를 고대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시칠리아 총독 퀸티아누스가 아가타를 탐했다. 아가타는 온갖 유혹과 협박에도 순교의 영광을 얻기를 갈망하며 매일 울면서 기도할 뿐 굴복하지 않았다. 그러자 퀸티아누스는 그녀를 고문대에 대(大)자로 눕혀 놓고 고문하라 명령했다. 그러자 아가타는 “이러한 고통들은 나의 기쁨입니다. 마치 내가 좋은 소식을 듣고 있는 것 같으며, 내가 오랫동안 애타게 보고 싶어 하던 그 어떤 분을 보고 있으며, 위대한 보물들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화가 난 퀸티아누스는 사형 집행인에게 그녀의 젖가슴을 오랫동안 비틀어 짠 다음 절단하라 명령했고, 아가타는 가슴이 도려진 채 감옥에 갇혔다.”
이 전설 때문에 아가타는 보통 자신의 잘려 나간 가슴이 담겨진 접시를 받쳐 들고 있는 여성으로 묘사되며,<자료3> 강간 피해자, 유방암 환자, 수유하는 여인들의 수호성인이 되었고, 그녀의 유해라 주장하는 가슴, 손, 발, 대퇴골 및 기타 뼛조각들은<자료4> 위대한 순교자의 성유물로서 숭배받고 있다.
▣ 살인한 순교자도 천국에 가는가
순교를 권장하고, 천국을 보장해준다는 종교들의 가르침에 따라 실제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게 되었다. 그런데 본인만 일방적으로 목숨을 잃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경우도 많았다.
지난달 1월, 이슬람 무장단체 IS는 이란 케르만주 ‘순교자 묘역’에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했고, 이를 ‘이중 순교 작전’이라 명명했다. IS는 자살 폭탄의 의미를 ‘순교’라 성명하며 작전을 수행한 두 대원의 실명을 밝혔는데, 이는 그들을 ‘순교자’로 추앙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맨 처음 소개했던 가톨릭 선교사 장 드 브레뵈프를 비롯해 그의 동료 7명은 캐나다 온타리오주 원주민들에게 선교를 하다 살해당했다. 가톨릭에선 그들이 영웅적인 삶을 살다 순교하였고, 북아메리카 교회는 순교자들이 흘린 피로써 일어난 것이라며 추켜세웠다. 그런데 원주민들은 왜 이들을 죽였던 것일까?
1633년, 브레뵈프와 선교사들은 본격적으로 휴런 지역 선교에 나섰다. 그러나 유럽 질병에 대한 면역력이 없던 휴런족에게 유럽인들과의 접촉은 치명적이었다. 1634년(이질과 결합된 천연두), 1636년(악성 인플루엔자), 1639년(천연두)의 전염병으로 인해 3만 명으로 추산됐던 인구가 1만 2천 명으로 줄어드는 재앙이 발생했다. 한 늙은 휴런족 여성은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검은 로브(신부복을 입은 선교사를 지칭) 가 우리에게 주문을 걸고 우리를 죽게 만들고 있어요. 모두가 잘 지내던 마을에 들어왔어요. 도착하자마자 모두가 죽었어요. 그들은 다른 마을의 오두막집을 방문하러 갔고, 그들이 발을 디디지 않은 곳만 죽음과 질병을 피할 수 있었어요.”
반복되는 재앙으로 원주민들에게 선교사들의 존재는 불쾌해졌으며, 재앙을 몰고 온 악마라고 간주되었다. 휴런족은 전염병의 책임을 예수회에 물었고, 이에 가톨릭 신앙을 거부했던 것이다. 3만 명이던 원주민 인구의 절반 이상이 죽어 나갔지만, 덕분에 브레뵈프를 포함한 이 8명의 선교사들은 생전 그들이 원했던 순교를 하게 되었고,<자료5> 그들의 믿음대로라면 천국에도 가게 되었을 것이다.
기독교는 십자군 전쟁에 참전해 전사하는 것을 순교라 표현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교회는 십자군 전쟁에 참가하는 사람에게 지난 과거의 모든 죄를 용서받는 전대사(全大赦)를 주고, 전사자에겐 순교의 영광이 있을 것을 약속했고, 열성적인 신자들은 흔쾌히 십자군 원정에 참가하게 되었다.
제1차 십자군 전쟁은 시작도 하기 전부터 피를 뿌렸다. 1096년 독일에서 출발한 십자군 무리는 라인강 계곡의 유대인 공동체를 초토화하고 수천 명을 죽였다. “보라, 여기에 메시아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인 유대인이 있는데 우리는 이스마엘의 자손에게 복수하러 가고 있다. 먼저 유대인에게 복수하자.” 이것이 유럽에서 최초로 유대인 홀로코스트를 벌인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폭력은 1099년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함락했을 때 절정에 이르렀다. 교황의 면죄부를 받은 십자군은 무슬림과 유대인을 닥치는 대로 죽였다. 유대인은 회당에 몰아넣고 검으로 죽였으며, 모스크로 피신한 무슬림 만 명도 잔인하게 학살당했다. 그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고 사흘 동안 약 3만 명을 살육했다. 거리에 피가 냇물처럼 흘렀다. 프로방스의 연대기 기록자 아길레르의 레몽은 다음과 같이 학살 현장을 기록했다. “사람들은 무릎과 고삐까지 차는 핏물 속에서 말을 달렸다. 이 장소가 불신자들의 피로 가득 찬 것은 정의롭고 훌륭한 심판이었다.” 유대인 회당과 이슬람 사원엔 주검이 쌓였고, 죽은 자들이 너무 많아 시신을 처리할 수가 없었다. 다섯 달 뒤에도 예루살렘에서는 썩어가는 주검에서 나는 악취가 진동했다.
8차례의 십자군 전쟁은 약 17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당시 세계 인구가 3억 명이었으며, 발달된 살상 도구도 없었던 것을 고려하면 얼마나 잔혹한 살육전이 일어났던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믿음에 따르면 성스러운 전쟁에 참가한 십자군은 사람을 죽여도 모든 죄를 용서받을 것이며, 죽더라도 천국에 갈 것이었다.<자료6>
십자군에 살해당한 무슬림과 유대인들도 십자군의 박해에도 개종을 거부하다 목숨을 잃은 순교자들일텐데, 이들도 전사한 십자군과 함께 천국에서 만나게 되는 것일까? 또 순교로 죽임을 당한 자보다 죽인 자가 더 많더라도 그 순교자들은 천국에 가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