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신의 향기가 있다고 하셨는데 이 향기가 바로 그 은혜인가
박인화 권사(1) / 덕소신앙촌1928년 평안남도 강동군 삼등면에서 태어난 저는 어렸을 때 친구들과 함께 동네 뒷산에 있는 장로교회에 다녔습니다. 스물두 살에 결혼한 후 육이오전쟁이 일어나면서 남편은 인민군에 징병되어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었고, 저는 임신한 몸으로 친정 식구들과 함께 피난을 내려왔습니다. 부산 적기 마을(현재 감만동·우암동 일대)의 피난민촌에 정착한 저는 이웃 할머니의 권유로 집 근처의 제일 장로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박 장로님이 부산 공설운동장에서
집회를 하시는데 엄청난 은혜가 내려
불치병자들이 낫는다”라는 소문 듣고
저도 집회에 참석하고 싶은 맘 일어
그러던 1955년 5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같은 교회에 다니는 임 권사님이 이야기하기를, 부산 공설운동장에서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분이 집회를 하신다며 같이 가 보자고 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엄청난 은혜를 내리셔서 집회를 하시면 불치병자들의 병이 낫는 등 놀라운 기사이적이 많이 일어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저도 집회에 참석하고 싶어서 임 권사님을 따라 집회장에 가게 되었습니다. 집회가 열리는 공설 운동장에는 수많은 천막이 가설되어 끝이 어디쯤인지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뒤쪽에 앉으면 단상과 거리가 너무 멀었기 때문에 저희 일행은 앞으로 가서 단상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청중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가르쳐 주시며 문답식으로 설교하셨는데 한 말씀 한 말씀이 머리에 쏙쏙 들어오며 참 재미있었습니다. 말씀에 열중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흘러 그날 집회장에서 철야를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특별한 이유 없이 어깨와 등이 뻐근하고 아픈 증상으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하룻밤을 새웠더니 어깨와 등이 너무 아파 도저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집회에 계속 참석하며 박 장로님의 설교 말씀을 듣고 싶었지만, 몸이 견딜 수 없이 힘들고 아프니 한시라도 빨리 허리를 펴고 누워야 했습니다. 저는 집회장과 가까운 친구네 집에서 몇 시간을 쉰 후에 겨우겨우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그 후로는 더 이상 집회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위장병이 나았다고 증거하는데도 ‘밥을 먹어보아야 낫는 걸 알지’
집회에서 병이 낫는다는 말이 믿기지 않아 의심했는데
1년간 어깨와 등이 아파 고생하던 것이 안수 받은 후 씻은 듯 나아
그로부터 1년이 지난 1956년 5월, 거리를 지나던 중에 ‘박태선 장로 부흥집회’라고 쓰인 포스터를 보았습니다. 서대신동에서 닷새 동안 집회가 열린다는 내용을 보고 어찌나 반갑던지 그길로 집회장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집회는 서대신동에 세워진 ‘부산전도관’의 개관집회였습니다.
집회 기간 중에 박 장로님께서 “병이 나은 사람들은 일어나서 사실 그대로 이야기하세요.” 하고 말씀하시면 많은 사람들이 일어나 무슨 병이 나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이야기를 듣고 몇몇 사람이 다시 큰 소리로 단상에 계신 박 장로님께 이야기를 전해 드렸습니다. 한번은 남자 분이 “저는 위장병이 나았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데, 저는 ‘위장병이라면 음식을 먹어 봐야 나은 것을 알지, 지금 밥도 안 먹었는데 어떻게 위장병이 나은 것을 알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분이 밥을 먹었는지, 아니면 위장병이 나은 느낌이 있었는지 잘 알지 못했지만 집회에서 병이 낫는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아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집회에 오기 전부터 박 장로님 집회에서 병이 낫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그게 정말 사실일까?’ 하고 의심이 되었습니다.
끝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천막
청중에게 질문을 던지시며 문답식으로
설교를 하시는데 머리에 쏙쏙 들어와
말씀에 열중하다 보니 어느새 밤이 돼
집회장 제 옆자리에는 젊은 부인이 서너 살 먹은 아들아이와 함께 앉아서 열심히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걸음마를 시작할 무렵에 소아마비에 걸려서 그때까지 전혀 걷지를 못한다고 했습니다. 아이를 안아 올리면 두 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 마치 뼈가 없는 것처럼 흔들흔들거렸으며, 일으켜 세우면 잠시도 서 있지 못하고 금방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그런데 집회 중 어느 날 박 장로님께서 “병자들은 일어나라!” 하고 외치실 때였습니다. 제 옆에 있던 부인이 갑자기 “우리 애가 나았어요!” 하고 소리치는 것이었습니다. 제 힘으로 서 있지도 못하던 아이가 놀랍게도 한 발 두 발 걸음마를 하는데 보통 아이들이 걷는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 부인이 멀찌감치 서서 “아가야 이리 와!” 하고 손짓을 했더니 아이는 아장아장 걸어서 엄마에게로 갔습니다. 아이 엄마는 아이를 끌어안은 채로 엉엉 울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 되뇌었습니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봤던 저는 마음속의 의심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고 ‘나도 어깨하고 등이 아픈데 은혜를 받으면 나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단상에 계시던 박 장로님께서 강대상을 쾅 하고 내려치시며 벽력같은 음성으로 “이걸 보고도 하나님을 깨닫지 못하는가!” 하고 외치셨습니다. 강대상을 치시는 그 순간, 이글이글 타오르는 커다란 불덩어리가 강대상에서 튀어 올라 사람들의 머리 위로 쫙 퍼져 나가는 것을 제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때 얼마나 놀랐는지 그 놀라움은 다 표현할 길이 없었고, 박 장로님의 위엄 서린 음성과 모습은 두려움과 함께 경외감을 갖게 했습니다.
1년 넘게 어깨와 등이 아파서 고생했는데
병원에 가도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해
병명도 없이 괴롭히던 증상이 예배시간에
감쪽같이 사라져 놀라 대중 앞에서 증거
그날 집회장에서 철야 기도를 할 때였습니다. 어디선가 아주 맛있는 과일 냄새가 진동하는데 마치 과일을 한 입 가득 베어 문 것처럼 상큼한 향기가 진하게 맡아졌습니다. ‘누가 과일을 먹나?’ 하며 주변을 둘러봐도 그런 향기가 날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고, 그 냄새가 얼마나 싱그럽고 향기로운지 세상에 그런 과일은 있을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 전에 박 장로님께서 ‘성신이 향기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셨던 말씀이 떠올라 저는 ‘아! 이 향기가 바로 은혜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다음 날 새벽예배 시간에 박 장로님께서는 그 많은 사람들 사이를 다니시며 한 사람도 빼 놓지 않고 안수를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단상에 오르셔서 “병이 나은 사람들은 일어나서 거짓 없이 사실 그대로 이야기하세요.” 하고 말씀하셨는데, 바로 그 순간 저는 어깨와 등이 뻐근하고 아프던 증상이 씻은 듯이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온몸이 어찌나 가벼운지 자리에 앉은 것이 아니라 둥둥 떠서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았습니다. 당시 저는 1년이 넘게 어깨와 등이 아픈 증상으로 고생하며 병원에서 진찰을 받고 엑스레이를 찍어 봤지만 병원에서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했습니다. 또한 영도에 있는 한의원에서 한약을 지어다 먹기도 하고, 친구의 오빠가 군의관이이서 그분을 통해 신경통 약을 구해 먹기도 했으나 증상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저를 괴롭혀 왔던 통증이 그날 예배 시간에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신기하여 이쪽저쪽 어깨를 움츠렸다 폈다 하면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정말 나았나 봐!’ 하며 혼자 놀라워하고 있는데, 단상에 계신 박 장로님께서 거듭하여 “병이 나은 사람은 일어나세요. 받은 은혜를 이야기하세요.”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고개를 들어 단상을 바라보니 박 장로님께서는 제가 있는 쪽을 내려다보시며 저와 똑같이 어깨를 움츠렸다 폈다 하고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은 마치 저에게 어서 일어나서 병이 나은 사실을 이야기하라고 재촉하시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원래 수줍음이 많은 성격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았던 저는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일어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야기는 해야 할 것 같아 반쯤 일어섰다가 빼곡히 앉은 사람들을 보고 다시 그 자리에 주저앉았는데, 그때 누가 밑에서 저를 떠받쳐서 일으켜 세워 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다시금 용기를 내어 자리에서 일어나 “등이 아픈 게 나았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중간에서 말을 전해 주는 사람이 큰 목소리로 “등이 아프던 게 나았답니다!” 하고 말씀드리니, 박 장로님께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세요.”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놀라우신 하나님의 권능에 마음 깊이 감사드리면서 앞으로 계속 전도관에 다녀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