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우리아

대쪽같은 기개와 충성심, 용사 우리아
발행일 발행호수 2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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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다윗과 우리아(David and Uriah),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네델란드, 1606-1669유화)

성경에는 역사상 가장 강직하고 충성스러운 한 사람의 군인상이 소개되어 있다. 그 이름은 우리아, 이스라엘 다윗왕 때의 용사이다. 그의 충성심은 그의 아내와 다윗왕과의 불륜에서 시작되어 다윗왕의 사악한 음모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요르단과 이스라엘간의 갈등의 역사는 이들 두 나라의 관계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던 다윗왕 시대부터 시작된다.

이스라엘의 중심부에 위치한 예루살렘을 점령함으로써 사울(이스라엘 초대왕)에 이어 이스라엘의 2대왕이 된 다윗은 블레셋과의 싸움을 모두 승리로 이끈다. 자신을 얻은 다윗은 내친 김에 가나안 평정 길에도 나섰다. 다윗은 블레셋 국경을 넘어가 메덱암마를 빼앗아 이스라엘 영토로 편입하고 모압과도 싸워 이기는 등 연거푸 승전보를 울리게 되고 주변 나라들은 모두 다윗을 두려워하게 된다.

이렇게 다윗의 왕국이 강성하게 된 데에는 그 이름이 성경에 일일이 열거되어 있는 충성스럽고 용맹한 37명의 ‘다윗의 용사’ 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무엘하 23: 8~39) 다윗의 용사들 중 왕에 대한 충성심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사람으로 단연 ‘우리아’를 꼽을 수 있다.

나라 안팎으로 질서가 잡혀 나갈 때쯤 다윗이 치른 최초의 전쟁이 바로 ‘암몬과의 전투’였는데 사무엘서를 보면 암몬과의 전투 때 다윗과 우리아 간에 있었던 한 가지 비극적인 사건이 소개되어 있다.

암몬과의 전투는 다윗이 어려웠던 시절 도움을 준 암몬 왕 나하스가 죽고 그의 아들 하눈이 왕위를 이어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이 나하스 왕을 조문하고 새 왕 하눈에게 문안하고 오라고 사절단을 암몬으로 보낸 것이 발단이 되었다.

사절단이 암몬의 수도 랍바 성(현재의 요르단)에 이르렀을 때 하눈의 신하들이 “다윗이 사람을 보낸 것은 문상을 핑계로 우리 국방의 허실을 엿보고자 함입니다.”라고 하자 하눈은 사신이 도착하자 그들을 붙잡아 수염을 절반만 자르게 하고 옷은 엉덩이가 드러날 만큼 잘라서 망신을 주고 랍바 성 밖으로 추방했다. 그러나 막상 일을 저질러 놓고 보니 다윗의 보복이 두려웠던 그는 주변 나라에 구원을 요청했다.

보고를 받은 다윗은 즉각 이스라엘의 전 병력을 소집했다. 그리고 총사령관 요압으로 하여금 그들을 인솔해 랍바 성으로 진격하게 했다.

이렇게 다윗의 군대가 암몬과의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을 무렵 다윗은 암몬 정벌의 임무를 요압에게 맡기고 자기는 예루살렘에 남아 있었다. 암몬의 구원군은 이미 항복하였고 암몬의 정복도 거의 결정적이었으므로 다윗은 예루살렘에서 오랜만에 휴식을 즐긴 것이다.

낮잠을 자고 일어난 다윗은 왕궁의 옥상을 거닐다 우연히 목욕을 하는 한 여인을 보게 된다. 그녀는 바로 다윗의 충성스런 용사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였다. 다윗은 밧세바를 왕궁으로 불러오게 했다. 절세미인 밧세바에게 첫눈에 반한 다윗은 결국 그날 밤 그녀와 왕궁에서 불륜을 저지른다.

그런데 얼마 안 되어 밧세바가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다윗은 고민에 빠졌다. 당시의 이스라엘 율법은 간음을 범한 자는 그것이 왕이라 할지라도 돌에 맞아 죽게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불륜을 감추기 위해서는 밧세바를 남편인 우리아와 동침케 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다윗은 요압에게 사람을 보내 우리아를 예루살렘으로 보내라고 명령했다. 요압은 우리아에게 휴가를 주어 다윗에게로 보냈다. 우리아를 만난 다윗은 요압의 안부와 군사들의 안부, 그리고 전선의 현황 등을 묻고 수고를 위로하며 그를 집으로 보냈다. 그런데 우리아는 자기 집으로 가지 않고 왕궁 문 곁에 있는 근위병 숙소에서 잠을 자는 것이 아닌가?

다윗은 난감했다. 다음날 아침 그를 불러 물었다. 우리아는 “온 이스라엘과 유다의 용사들이 장막에 머물러 있고 저의 상관 요압 장군과 저의 동료들도 야영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저만 집에 가서 먹고 마시고 아내와 잘 수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이 적과의 치열한 전투에서 피를 흘리고 쓰러지는 것이 눈에 어른거리는데 어찌 편히 집에 가서 쉴 수 있겠느냐고 한 것이다.

다윗은 우리아와 함께 식사를 나누고 우리아에게 술을 먹여 만취상태로 집에 돌려보냈다. 하지만 이번에도 우리아는 집으로 가지 않았다. 우리아의 강직한 충성심 앞에 다윗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아에게 요압 앞으로 보내는 편지 한통을 주며 전선으로 떠나보내고 말았다. 그 편지에는 우리아를 가장 치열한 전투에 투입하라는 사실상의 살인명령이 들어있었다.

드디어 전쟁터로부터 전령이 와서 다윗이 고대했던 소식을 전하였다. “당신의 종 헷 사람 우리아도 죽었습니다.”

‘나의 빛은 여호와시다’ 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이방인 출신의 우리아는 왕에게 충성을 다하다가 이렇게 왕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간음에 살인까지 저지른 다윗의 행위를 극악하게 보시고, 우리아는 ‘본받을 만한 뼈대가 있는 사람이고 정신이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 칭찬하셨던 것이다.

왕 앞에 무력한 약자였지만 군인으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지켜낸 우리아의 충성심과 의로움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이상적이고 훌륭한 지도자라고 평가받는 다윗의 사악한 이면과 대비를 이루며 하나님께서 칭찬하신 인물로 기록된 것이다.
송미애기자sma@theweek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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