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의 의미와 경제 회복

발행일 발행호수 2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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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용,전남대 명예교수/경제학

지금 전 세계는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겹친 스태그플레이션에 직면해 있다. 장기간의 저금리 정책으로 엄청난 양의 돈이 풀린 탓이다.

미국은 자가(自家) 소유 비율을 높이기 위해 2000년부터 돈을 풀어 2008년에 금융위기를 맞았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해 또다시 돈을 풀었다. 미국 경제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주요 각국도 그랬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를 계기로 주요 각국은 또다시 엄청난 양의 돈을 풀었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금융위기의 경우처럼 장기간의 저금리 정책으로 풀린 돈이 기업가들에게 대출되면, 그들은 사람들이 오늘의 소비를 줄이고 미래의 소비를 위해 저축을 늘린 것으로 착각하고, 미래의 소비 증가에 대비해 자본재 산업에 투자를 늘린다. 그런데 늘어난 투자는 소비하고 남은 실물로 뒷받침된 저축이 아니라 풀린 돈으로 이뤄진 잘못된 것이다.

예를 들어 소비자들은 20층 건물을 원하여 그에 필요한 자재와 장비만을 저축했는데, 기업가들은 풀린 돈을 저축 증가로 착각하여 50층 건물 공사에 착수하는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투자된 돈이 임금과 토지 임대료 등의 형태로 소비자들의 소득으로 돌아옴에 따라 소비도 증가하여 경제는 붐(boom)을 이룬다. 풀린 돈으로 불을 지핀 것이다. 이후 인플레이션을 우려한 중앙은행이 돈 풀기를 중단하고 금리를 올리면 50층 건물 공사는 잘못된 것임이 밝혀져 중단되고 소비자들의 소득도 감소하면서 붐 기간에 생긴 거품이 터진다(bust).

불황은 문제를 해소하고
경제를 복구하는 기간이지
극복해야 할 악(惡) 아니야
불황 벗어나기 위해서는
시장의 조정 기능에 맡겨야

한편, 코로나19 경우처럼 풀린 돈이 소비자들에게 들어가면 소비수요가 증가하므로 생산요소들이 소비재 산업으로 이동하고 자본재 산업에 대한 투자가 줄어든다. 이에 따라 층층이 분업화된 자본재 산업이 단순화되면서 소비재 생산량이 줄어든다. 자본재에는 단시간에 많은 소비재를 생산할 수 있는 시간이 저장돼 있기 때문이다.(곡괭이와 포클레인을 비교해 보시라.) 풀린 돈과 줄어든 생산 탓에 물가는 오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갈등으로 공급망에 문제가 생긴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스태그플레이션의 근본적 원인은 아니다.

잘못된 투자가 청산되고, 돈이 풀려 부자가 된 것으로 착각하고 써버린 자본이 복구돼야 경제가 회복된다. 그동안의 불황은 필연적이며, 소득 감소와 실업 증가 등의 고통은 피할 수 없다. 그런데 불황은 지금의 경제 구조에는 문제가 있으니 시장 조정을 통해 고치라는 신호이며, 소비자들이 원하는 소비재(20층 건물)를 원하는 시기에 생산하는 경제 구조로 회복하는 기간이다. 불황은 문제를 해소하고 경제를 복구하는 기간이지 극복해야 할 악(惡)이 아니다.

저금리 정책으로 경제에 쌓인 돈 더미를 치우기 위해 금리를 올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 효과를 제대로 얻으려면 시장 조정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자생 능력이 없는 기업에 대출을 늘리는 정책, 임금과 물가를 떠받치는 정책, 똑똑한 소비 운운하며 소비 증가와 저축 감소를 조장하는 정책, 세금을 올리고 재정 투입을 늘리는 정책, 보조금 지급 정책 등은 모두 시장 조정을 방해하는 것들이다. 불황은 장기간의 저금리 정책의 결과이고, 불황에서 벗어나는 길은 이 기간에 이뤄지는 시장 조정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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