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민의 ‘먹을 권리’
인권단체 앰네스티는 북한에 대한 인권 보고서를 통해 “북한 정권의 가장 심각한 실패는 2200만 주민의 ‘먹을 권리’를 보호하지 못한 무능력”이라며 북한을 비난했다. 인권단체가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의 투옥과 고문, 처형 등을 거론하지 않고 주민의 ‘먹을 권리’를 이유로 북한정권을 비난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인간이 먹지 못하고 굶주리는 고통이 고문과 처형에 못지않은 잔인한 일이라는 것을 지적한 것이라고 하겠다. 세계식량기구의 북한 담당관은 “이대로 가면 8월엔 북한 주민 360만 명이 기아 상태에 빠지게 된다”고 북한 식량난의 심각성을 경고하였다. 어느 나라든 정권의 실질적인 존재이유가 그 국민을 배불리 먹이는 데 있다고 한다면, 북한 정권은 이미 그 자격을 상실한 셈이다.
북한 인민이 굶게 된 이유는 우선, 인간의 본성을 무시한 공산주의 사상에 개혁의 바람을 불어넣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직 자기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존재’인 인간의 이기심을 간과한 공산주의 이념은 인민의 ‘먹을 권리’를 보장하지 못했다. 냉전시대 소련제국이 시장주의로 무장한 미국의 생산성을 당해내지 못해 파산하여 몰락한 것이 그 때문이다.
그러나 구소련과 동구권 공산주의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오늘날, 중국과 베트남 같은 공산주의 국가들은 경제를 위해서 재빨리 그 이념을 일정부분 용도폐기하고 과감히 문호를 개방하여 잘 사는 길을 활기차게 찾고 있다. 그런데 왜 북한만은 중국과 베트남의 성공사례를 따르지 못하고 인민이 굶어야 하는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가? 그 이유는 다른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볼 수 없는 특수한 ‘왕조적(王朝的) 체제’가 북한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 마오쩌둥이 있었고 베트남에 호치민이 있었지만 그곳에는 그들을 우상화하고 신격화하는 어떠한 체제도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이 개혁과 개방의 길을 걷지 못하는 것은 자칫 개방의 물결이 그 ‘체제’를 위태롭게 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인민을 잘 살게 할 것인가 하는 것보다도 어떻게 하면 ‘체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선군(先軍)정치와 핵무기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핵을 담보로 한 벼랑끝 전술이 북한 인민의 ‘먹을 권리’를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우리의 대북교류도 북한 정권에게만 도움이 되고 북한 인민의 굶주림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는데 기여하지 못한다면 국민적 동의를 얻기가 어려울 것이다. 모든 교류의 초점은 북한의 ‘체제’보다 굶주리는 북한 동포에게 맞추어져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