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장로님 집회에서 좋은 향기 맡은 후로 기쁨이 샘솟아
권기남 권사 / 기장신앙촌저는 1936년 경상북도 영양군에서 태어나 안동읍 법상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젖먹이 때부터 어머니 등에 업혀 장로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저는 자라는 동안 교회에 열심히 나갔습니다. 당시는 부흥강사가 집회를 하는 일이 자주 있었는데 저는 교회 어른들을 따라 유명하다는 부흥강사의 집회에 참석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친구들과 같이 반사로 활동하며 주일학생들을 가르치고 돌보는 일도 했습니다.
병 나은 사람들이 기뻐서 외칠 때마다
환호하는 소리로 집회장이 떠나갈 듯
집회를 주시하던 점잖은 안동 어른들도
다 같이 놀라워하며 환호성을 올려
그러던 1955년 제 나이 스무 살 때였습니다. 제가 다니는 성결교회 박승은 목사가 광고하기를,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분이 안동에서 일주일 동안 집회를 하신다며 이번 기회에 반사들 모두 참석해서 은혜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저는 부흥집회 소식을 들으면 미리 가서 장소를 확인하곤 했는데 그날도 집회가 열린다는 안동역 근처 백사장을 찾아가 봤습니다.
낙동강 변의 드넓은 백사장에는 천막이 수십 개 설치돼 있었고, 천막 안은 얼마나 넓은지 저 멀리 단상이 까마득하게 보였습니다. 집회가 시작되려면 며칠이나 남았는데도 벌써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어 단상과 가까운 앞자리에는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분에게 왜 이리 일찍 오셨냐고 물었더니, 서울에서 박 장로님 집회에 참석한 후 곧이어 안동에서 집회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왔다고 했습니다.
집회가 열리는 날 어머니를 모시고 가 보니 그 넓은 천막 안에 사람들이 빈틈없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동안 부흥집회에 다녔지만 그렇게 많은 군중은 난생처음 봤습니다. 잠시 후 단상에 서신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마음 문 여세요.” 하신 후 “날빛보다 더 밝은 천국~” 하는 찬송을 힘차게 손뼉을 치며 인도하셨습니다. 제가 다니던 교회에서는 느릿느릿 찬송하며 손뼉을 치지 않았는데 집회장에서는 저도 손뼉을 치며 소리 높여 찬송을 불렀습니다. 하지만 점잖은 안동 어른들 중에는 손뼉은 치지 않고 팔짱을 낀 채 그 모습을 바라보는 분도 있었습니다.
안동역 근처 백사장에서 열린 박 장로님 집회에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사람 모여
집회 기간 동안 곱추의 등이 펴지고 벙어리였던 처녀가 말문이 트여 말을 하고
반신불수여서 들것에 실려온 아저씨가 걷게 된 모습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해
집회 3일째로 기억되는데 박 장로님께서 찬송을 잠깐 멈추시고 “내게서 성신이 나갔는데 병이 나은 사람은 손을 드세요.” 하시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중 몇 명은 단상으로 올라가 이야기했는데, 한 아저씨가 “저는 꼽추였는데 이 집회에서 등이 다 펴졌습니다!” 하고 외치더니 펄펄 뛰며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또 벙어리였던 처녀는 말문이 트였다며 마이크를 붙잡고 “어-음-마, 아-빠-아” 하며 더듬더듬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40대 아저씨가 “저는 반신불수여서 들것에 실려 왔는데 이렇게 걷게 됐습니다!” 하고 외칠 때 저는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집회 첫날 들것에 실려 온 아저씨는 예배 시간 내내 일어나 앉지도 못하고 들것에 누워 있었습니다. 아저씨와 가까이 앉아 있던 저는 그 모습을 며칠 동안 계속 봤는데 그분이 정상인처럼 걷게 되다니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습니다. 병이 나은 사람들이 기뻐서 외칠 때마다 다른 사람들도 함께 손뼉을 치며 환호하는 소리로 집회장이 떠나갈 것 같았습니다. 팔짱을 낀 채 집회를 주시하고 있던 점잖은 어른들도 그때는 다 같이 놀라워하며 환호성을 올렸습니다.
집회 중 하루는 설교 말씀에 열중하고 있을 때 갑자기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냄새는 머리카락이나 개똥이 탈 때 나는 냄새하고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지독했습니다. 고약한 냄새 속에 코가 푹 빠진 것 같아서 도저히 참을 수 없었는데 잠시 후에는 그 냄새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오는 것처럼 좋은 향기가 코끝을 삭삭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꽃향기라고 할지 사과 향기라고 할지 어디에도 비유할 수 없이 좋은 냄새가 진하게 맡아졌습니다.
그때 박 장로님께서 지금 향기를 맡은 사람은 손들어 보라 하셔서 저는 번쩍 손을 들고 보니 곳곳에 많은 사람이 손을 들고 있었습니다. ‘이 향기는 하나님이 주시는 향기’라고 하시는 말씀을 들으며 제가 귀한 은혜를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향기를 맡은 뒤로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지 마치 기쁨이 가슴에서 샘솟듯 터져 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밤낮 찬송을 드려도 늘 아쉽다는 찬송가 가사처럼 하루 종일 찬송을 불러도 아쉬운 마음에 자꾸만 부르고 싶어졌습니다.
박 장로님 집회 기다리던 중 안동 시내에
집회 알리는 포스터 보고 기쁘고 반가워
장로교 다니던 교인들이 안동전도관
신축 위해 박 장로님 집회를 열게 된 것
집회 기간 동안 어머니는 살림을 하느라 예배 때만 잠깐씩 참석하셨고, 저는 집회장에 계속 있다가 새벽예배를 마친 후 집에서 밥을 먹고 다시 집회장으로 갔습니다. 하루 종일 한 끼만 먹어도 배가 고프지 않았고 밤새워 기도하고 찬송해도 졸리거나 피곤한 줄을 몰랐던 것이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기만 합니다.
저희 동네에 사는 분들 중에는 장로교인이 많았는데 모두들 안동 백사장에서 열린 박 장로님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저는 집회에 다녀오고 1년이 지난 후에도 그분들과 만나면 박 장로님 집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때 천막을 엄청나게 쳤대요.” “천막을 실은 트럭만 수십 대였잖아요.”라고 이야기할 때면 까마득하게 넓었던 집회장이 눈앞에 떠올랐습니다. 특히 은혜 받았던 기억이 생생해서 박 장로님 집회에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던지 하루는 남동생이 “누나! 시내에 포스터가 붙었는데 박 장로님이 안동에 오신대.”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저는 한달음에 시내로 달려갔습니다. 벽에 붙은 포스터에서 ‘1956년 9월 24일부터 26일’이라고 써 있는 집회 날짜를 보고 또 보며 얼마나 반갑고 기뻤는지 모릅니다.
저는 집회 며칠 전에 장소를 알아 두려고 포스터에 써 있는 집회장을 찾아갔습니다. 명주실 공장 마당에 큰 천막을 치고 어른들이 모여 있었는데, 알고 보니 서부 장로교회에 다니던 주동 장로님과 권사님들이었습니다. 그분들은 박 장로님 집회에 참석한 후로 따로 모여 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이번에 ‘안동전도관’을 신축하기 위해 개관집회를 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전도관은 박태선 장로님께서 세우시는 교회라는 것을 그때 알게 됐습니다.
(권기남 권사님 신앙체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