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테르테의 화살

발행일 발행호수 2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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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존재한다는 논리가 어디 있는가? 누구든지 신과 함께 찍은 셀카를 보여 주고 신과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면 즉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
최근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종교에 대한 거침없는 발언이 이목을 끌었다. 강한 리더십으로 국제사회에서 스트롱맨이라 불리는 두테르테는 왜 과격한 발언을 쏟아낼까? 가톨릭(로마교) 교도가 전체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필리핀에서 혹독한 비난의 대상이 될 것이 뻔한데도 말이다. 파격적인 발언으로 충격을 주는 스트롱맨 특유의 기질 때문인가? 가톨릭 신앙 국가이건만 마약과 범죄로 곪아 터진 상황에서 나온 리더의 고뇌인가?

필리핀의 가톨릭 수뇌부는 일제히 반발했다. 살아 움직이는 신을 만나고 싶고 신과 교감하는 정확한 실체에 무릎을 치고 싶었던 대통령에게 필리핀의 주교는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될 싸이코패스”라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사실 격양된 표현으로 진흙탕 싸움을 벌일 필요가 없는 문제다. 속히 신의 존재를 증명해 두테르테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만들면 끝날 일 아닌가. 신의 존재에 대해 명쾌한 증명을 요구하는 시대, 두테르테는 시대의 의문을 제대로 짚어낸 듯하다. 그는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종교는 영혼을 가지고 장난치는 거대한 사기극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거짓을 진실인 양 떠드는 순간 맹목적인 믿음을 자백하는 것이 된다. 신의 존재를 묻는 질문에 엉뚱하게 분노한 이유는 여기 있을지도 모른다. “거짓말하는 사람은 누구보다 쉽게 화를 낸다.” 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처럼.

필리핀을 장악한 가톨릭 세력 앞에 두테르테는 사과 비슷한 발언으로 무마했지만 그가 던진 의문의 화살은 여전히 가톨릭의 정곡에 꽂혀 있다. 평생 가톨릭에 헌신했던 테레사 수녀나 베네딕토 전 교황 같은 이들이 신의 존재를 느끼지 못했다고 고백했기 때문이다. 세상이 의문의 화살을 쏘아붙이는 지금, 이 종교가 속 시원한 해답을 내놓는 때는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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