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어떻게 무기가 되는가?

발행일 발행호수 2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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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어렵게만 생각되는 철학이 일상생활에서 유용한 무기가 된다는 내용이다. 왜 회사 생활에 의욕이 없는지, 왜 저 사람은 남을 무시하는지, 나는 열심히 설명했는데 왜 상대방 반응이 미지근한지, 이런 평범한 의문에 철학이 깊이 있는 답을 준다는 것이다.

그리스어로 철학은 지혜를 사랑한다는 뜻이라 한다. 이런 철학이 선함을 추구하는 종교와 만나면 지혜롭고 선한 삶을 가르쳐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실제 역사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반대파를 처단하고 세계를 지배하려는 종교 집단의 손아귀에서 철학은 대량 살상 무기가 되었다.

중세 스콜라 철학은 가톨릭 교리를 철학적으로 완성한 것이었다. 스콜라 철학의 대표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가톨릭의 핵심인 성찬식을 뒷받침하는 철학을 만들어냈다. 이른바 ‘실체 변화’로써 성찬식에서 먹는 밀떡과 포도주가 겉보기에 밀떡과 포도주지만 실질적인 특성은 예수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가톨릭은 1200년 동안 성찬식을 하면서도 이를 설명하는 변변한 교리가 없었다. 가톨릭은 ‘실체 변화 교리’를 열광적으로 지지했고 부정하는 자에게 저주가 있으리라 경고했다. 이를 정면으로 부정한 사람이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였다.

그는 원자론에 근거해 실체 변화는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비판했다. 누구든지 밀떡을 예수의 살로 변하게 할 수 있다면 제발 자기 집의 오래된 물건을 황금으로 변하게 해 달라고 일갈했다.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주장해 가톨릭에 반대한 것 외에도 가톨릭의 성찬식까지 부정했다는 것은 1980년대 새롭게 밝혀진 사실이었다. 갈릴레이는 1633년 종교재판소에 끌려가 신성모독이자 이단자로 낙인찍혔고 죽을 때까지 가택 연금을 당했다. 종교재판은 가톨릭이 반대자를 ‘이단’으로 몰아 처형하는 제도로써 아우구스티누스의 철학에 뿌리를 둔 것이었다.

4세기에 활동한 아우구스티누스는 가톨릭 교리의 기초를 닦은 ‘교부(敎父) 철학자’로 추앙받고 있다. 그는 가톨릭이 세계를 지배하는 종교가 되기 위한 이론을 정립하면서 ‘악에 대한 처벌’을 핵심에 두었다. 가톨릭에 대한 반대는 극악이며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는 논리는 종교재판의 기초 철학이 되었다. 500년간 종교재판은 살인 기관으로 100만 명이 넘는 사람을 처형했다.

종교 재판관들은 이단자에게 끔찍한 고문을 가하면서도 신성한 일을 하고 있다고 자부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처벌이 곧 그를 구원하리라.”는 철학을 설파했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산 사람을 불태우는 잔인한 처형을 하면서도 이단자의 영혼을 정화시키는 신성한 의식을 베풀어 준다고 여겼다. 화형식은 이러한 철학이 구체화된 성스러운 축제였다.

화형식 날 종교 재판관은 위엄에 찬 목소리로 선고문을 낭독했다. 성경 문구와 교부 철학에 근거해 죄목을 상세하게 설명한 선고문이었다. 대부분 문맹이었던 민중은 어려운 철학책을 읽지 못했지만 그 대신 이단 선고문을 들으며 이단자는 반드시 불태워 죽여야 한다는 생각이 뿌리박히게 되었다.

화형에는 느리게 타는 생나무가 사용됐는데 최대한 오랫동안 고통을 주기 위해서였다. 등이 다 타고 늑골이 드러난 이단자들은 제발 빨리 태워 달라고 울부짖었다. 지켜보는 민중은 극도로 흥분해 이단자를 향해 조롱과 야유를 던졌다. 그 시대 가톨릭에 반대하는 것은 신성모독으로 화형을 당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었다. 그 끔찍한 화형식을 남녀노소가 축제처럼 즐기게 만든 철학은 어떤 살상 무기보다 무서운 것이었다.

이단자를 처형하던 철학은 시대착오적인 과거지사가 되었다. 일반인들은 축구 선수가 특출한 능력을 보여도 농담 삼아 신이라는 별명을 지어 주고, 이를 두고 신성모독이라고 발끈하는 교황에게 꼰대라는 댓글까지 날리게 되었다. 이렇게 대놓고 비웃음을 당하는 교황은 과거가 목 메이게 그리울 것이다. 신성모독자들을 한 줌의 재로 만들 수 있었던 과거의 권력이 눈앞에 선할 것이다. 지금도 교황청에 종교재판소(명칭만 신앙교리성으로 변경됨)가 버젓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철학을 무기로 사람들의 사고를 철저하게 지배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은 모양이다. 과거의 기억에 집착하는 것은 인지장애의 증상이라고 한다. 그 집단의 인지장애가 안쓰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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