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불법방영사건(4)동방교①

탁명환의 글은 '앞뒤가 맞지않는 소설'
발행일 발행호수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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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MBC가 동방교에 관하여 보도하면서 인용한 탁명환의 글은 ‘앞뒤가 맞지않는 소설’

MBC는 천부교를 폄하하기위한 기획으로 이름도 생소한 동방교라는 사교와 교주 노광공을 천부교와 연관시켜 들고 나왔다. MBC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던 것이다.
`우리나라 신흥종교사에서 박태선씨의 영향력은 엄청났다. 그를 좇아 종교를 만든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노광공도 그 중 한사람이었다. 1950년대 대구 지역의 집회에서 북을 치며 박태선 장로를 눈여겨보았던 노씨, 박태선씨를 쫓아다니던 노씨는 얼마 후 대구에 동방교회를 설립하고…`라고 방영하여 마치 동방교 교주가 천부교와 관련이 있는 듯 보도함으로써 천부교의 명예를 훼손하였다.

MBC 제작진이 동방교를 천부교에 연결하여 보도한 근거는 역시 탁명환의 글이었다. MBC 김태현 PD는 `탁명환이 저술한 ‘한국의 신흥종교 1’의 215 페이지, ‘한국의 신흥종교 2’의 42 페이지에 (그러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고 당시 대구집회에 참석하여 이를 목격하였던 이주헌(현 안동교회 장로)과의 인터뷰에서 이를 확인하였다. 또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가 발행한 ‘한국 신흥종교 실태조사 보고서’에도 그러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자칭 신흥종교 연구가라는 탁명환은 당시 대구집회에 참석한 노광공을 이주헌이라는 사람이 목격하였다는 것을 근거로 그러한 글을 썼고 이를 원광대학교 등이 인용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천부교는 이주헌이 목격하였다는 당시의 정황을 세밀히 조사한 결과 탁명환의 글은 날조에 불과하다는 것을 밝혀 낼 수 있었다. 먼저 천부교 관계자와 이주헌과의 면담 내용을 살펴보자.

`대구 신천집회 때 노광공이 참석했다는데 그 집회가 언제 있었나요?`
`그게 아마 내가 후퇴해서 대구에 있을 때니까 1951년 쯤 되지 않나 싶습니다. 확실한 날짜는 잘 기억이 안 납니다.`

`6·25가 난 다음입니까?`
`6·25가 난 다음 아직 끝나지 않을 때였습니다.`

`6·25중에 집회를 열었습니까?`
`예.`

`그 신천 집회에 가보니까 상황이 어떻던가요?`
`많은 군중들이 모여 있었어요. 천막을 아주 크게 많이 쳐 놨고.`

`군중이 어느 정도이던가요?`
`추산컨대 아마 2만명 정도 안 되겠느냐 싶었습니다.`

`그러면 상당히 분위기가 시끄러웠겠네요.`
`예. 그런 대 군중 속에서 찬송 소리가 대단했지요.`

`그때 시간은 몇 시 정도 되었나요?`
`저녁 7시 반쯤 되었습니다.`

`가을철 저녁 7시 반이라고 하면 좀 어둡지 않았겠습니까?`
`좀 어두웠지요. 그러나 전기불을 아주 환하게 켜 놓았었습니다.`

`그때 이주헌씨는 집회장 어디쯤에 계셨나요?`
`노광공씨 있는 데서 한 50m 정도 떨어져 있었습니다.`

`예배 마치기 전에 이주헌씨는 나오지 않고 끝까지 지켜봤습니까?`
`끝나기 전에 나왔습니다.`

`그 집회에서 헌금하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까?`
`그 장소에서 헌금하는 것을 본 것은 없어요.`

`노광공은 그 집회에서 헌금하는 것을 보았나요?`
`그때는 내가 나왔으니까 헌금 할 때는 노광공이 뭘 어떻게 했는지 모릅니다. 못 봤으니까요.`

`그때 이주헌씨는 집회에 며칠간 참석했습니까?`
`그 집회가 한 일 주일간 계속되었는데 저는 단 한 번밖에 안 갔습니다.`

`노광공이 박태선 장로님 집회에 참석하는 것을 그 이후에 본적이 있습니까?`
`그 이외에는 한 번도 본적이 없어요.`

이번에는 당시 동방교회의 설립을 재정적으로 지원하였던 감리교 대구교회 감리사 조윤승씨와 천부교 관계자의 인터뷰 내용을 보자.

`동방교회를 처음 개척한 배경과 노광공의 전도사 임명 동기는?`
`동산기독병원의 간호과장이던 김정선(후에 노광공의 부인이 됨)과 개인병원 의사인 감리교 김병서 장로가 천막교회를 개척하면서 노광공을 추천하여 감리교 본부인 총림원(감독 류형기, 전도국 총무 조신일 목사)에서 서리 전도사로 승인 받아 발령하였다.`

`동방교회라는 이름은 누가 만들었나요?`
`동방교회가 있던 신천동이 대구의 동쪽이므로 나와 김정선, 김병서 세 사람이 개척하면서 동방교라고 하였다.`

`그때가 몇 년도 입니까?`
`1954년쯤으로 기억이 잘 안 난다.`

`처음 개척 당시 지원은 없었나요?`
`총림원에 보고하고 지원을 해 주었다. 본부에 가서 내가 직접 보조금을 받아왔다. 그때 나는 향촌동 제일감리교회에 있었으며 감리사로 일했다. 당시 개척교회에 지원은 기본이었다.`

조윤승 감리사의 증언에서도 동방교는 천부교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이 감리교의 한 교회로 창설되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다시 천부교 관계자는 노광공의 처 김정선씨를 직접 만나 인터뷰하여 노광공이 박태선 장로님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증언을 청취하였다.

`동방교회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나요?`
`내가 노광공씨 하고 1954년부터 했지요.`

`그 사람은 어떻게 만났나요?`
`미국에서 나와서 결혼했지요. 동방교회는 둘이 같이 했지요. 그때가 1953년도 입니다.`

`박태선 장로님을 아시나요?`
`그분은 서울에서 알지요. 대구에서 집회를 할 때는 가본 적이 없어요. 노광공이와는 아무 상관없고 (노광공은) 그분을 본 적도 없어요.`

`노광공이와 박태선 장로님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어요.`

천부교 관계자는 동방교회의 연혁을 알 수 있는 감리교 대구교회의 연혁을 입수하였는데 거기에는 동방교회의 시작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었다.

`1954년 10월 3일 대구 신청동 소재 이학수씨 집 마당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비가 올 때는 곤란해서 미공군 군목인 쉬필드씨가 큰 텐트를 2개 주어 이것으로 천막교회를 세우고 동방교회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즉 감리교 대구교회의 연혁에 따르면 동방교회는 박태선 장로님이 천막집회를 시작하기 전인 1954년에 설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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