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소신앙촌(5) – 생필품에서 제철까지②

각계 원로들, '우리도 잘사는 나라 만들려면 신앙촌같은 정신개혁 이루어야'
발행일 발행호수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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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1960년대부터 신앙촌 제품이 전국적으로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기 시작하자 신앙촌의 생산활동에 대하여 종교인들이 왜 경제활동을 하는가 하고 질시와 비판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한국을 대표하는 각계의 지성들은 신앙인들의 경제활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오늘날과 달리 1960년대만 해도 기업들에게서 품질관리의 인식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은 때였는데 신앙촌 제품은 우리나라 최초로 품질관리에 의하여 생산된 것으로 인정을 받았다.  
 
1963년 7월 22일자 신앙신보는 당시 건국대학교 재단 이사장이었으며 전 건국대 총장 유석창 박사의 다음과 같은 신앙촌 방문 소감을 실었다.
 
국가경제에 플러스
 
“신앙촌은 신앙을 토대로 해서 유용한 생산을 해 나가는 곳으로서 국가경제 재건의 기초를 마련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양심적인 생산을 하고 있었습니다. 종업원들은 자기네 일처럼 최선을 다하고 있더군요.
 
나는 우리 학교의 2백여명 교수와 강사들에게 박 장로님의 굳은 신념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교육적인 견지에서도 결코 배울 바가 적지 않기 때문이지요. 나는 신앙촌을 보고 전도관이야 말로 국가에 ‘플러스’가 되는 종교단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앙인이 사업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그릇된 것인 줄 압니다. 신앙에 매진하는 한편 선한 생산을 병행해 나간다면 오히려 신앙도 더욱 건전해 지리라고 봅니다. 이것이 보다 현실적이며 하는 일 없이 교파 싸움만 일삼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겠느냐는 말입니다.
 
신앙촌의 생산공장은 그 분위기가 일반사회공장과 퍽 다른 것을 느꼈습니다. 첫째 일하는 사람들이 믿음직해 보였습니다. 겉만 번지르르하게 하여 이윤을 많이 얻어 보려는 일반 사회공장에 비하여 그곳에서는 하나하나 정성을 들여 우수한 물품을 만들려고 애를 쓴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하면 물론 처음엔 손해를 보겠지만 장차 크게 발전할 것은 뻔한 것입니다.
 
나는 요즘 손님들에게 박 장로님 얘기를 많이 합니다. 해방 후 18년이 되었어도 이 나라가 못사는 원인이 무엇입니까? 덴마크, 스위스 같은 나라가 잘사는 원인은 무엇입니까? 정신부터 개조하여 문화민족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정신개혁! 이것은 신앙으로서만 가능합니다.”
 
`경제없는 신앙은 있을 수 없는 것`
신앙인의 경제활동 높이 평가
 
1963년 7월 29일자 신앙신보는 당시 한양대학교 총장 김연준 박사의 신앙촌 방문 소감을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신앙촌은 모든 사람들이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면서 또 평화롭고 아름다운 생산을 하는 곳입니다. 신앙촌의 공장들은 일반 공장과는 달랐습니다. 전부 신앙으로 뭉쳐진 사람들이니까 보통 영리만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첫째, 그들은 신앙 가운데서 일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공장과는 유별난 그곳의 큰 장점이기도 하지요. 둘째로는 양심적으로 물품을 생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곳의 물건이 좋다는 평은 전부터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가서 보니 과연 양심적으로 최선을 다해서 성의껏 일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셋째는 일하는 분위기가 매우 좋다는 것입니다. 물론 신앙 가운데서 일하기 때문에 그야 당연하겠지요.
 
앞으로 신앙촌 사업은 크게 성공할 것입니다. 좋은 생산을 하여서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면 국가적으로도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전도관은 사업을 위주로 하고 신앙을 방편으로 한다는 사람들의 비난을 일축하면서 김연준 박사는 “경제가 없는 신앙은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신앙인의 경제 활동을 옹호했다고 신앙신보는 보도 했다.
 
당시 사상계(思想界)사 사장 장준하 선생도 신앙신보 기자에게 신앙촌과 신앙촌 제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신앙신보 1963. 8. 5.)
 
“며칠 전 우리 간부회의 때 나온 말인데 한국 사회에서 전도관 신앙운동만큼 강력한 추진력을 가진 운동이 과거에도 없었고 현재에도 없다고들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저도 동감이에요. 물건 속에 신앙을 집어넣어 생산해 낼 때 그 생산품이 기막히게 나올 것은 말할 것도 없지요. 참 좋은 일입니다.”
 
신앙을 넣은 제품 만들어
 
1963년 8월 19일자 신앙신보는 당시 한국 사회학계의 제1인자 변시민 교수의 인터뷰를 싣고 있는데, 그 기사에 따르면 변교수가 전도관 신앙운동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자유당 때 종교담당 주무부서인 문교부 문화국장 직에 있을 때부터였다고 했다.
 
그가 문화국장에 취임하자 사방에서 전도관에 대한 온갖 중상과 모략이 들어왔다. 기자가 사회학자인 변교수에게 무릇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선구적 개혁운동이 기성사회의 탄압을 받는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기성 사회는 언제나 현상유지를 원하는데 그 수준을 능가하는 새 운동이 일어나면 기득권층이 그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반발하고 배척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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