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소신앙촌(18) – 시온 어린이 합창단①
방송 출연 대회 공연 등 전방위 활약덕소신앙촌 시절 시온 어린이 농구단만큼이나 주목을 받고 사랑을 받았던 것이 덕소 어린이 합창단이었다.
1963년 9월에 창단된 덕소 어린이 합창단은 TV와 라디오 방송 출연은 물론 국제 어린이 음악제에 한국 대표로 출전하고 다수의 합창 경연대회에 나갔으며 1967년 레코드를 취입하여 호평을 받은 바 있다.
덕소 어린이 합창단의 전통은 소사신앙촌 시절 시온 어린이 합창단으로부터 이어진다. 소사의 시온 어린이 합창단은 서울 중앙전도관에서 80명의 어린이 성가대로 시작하였다. 교회와 음악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맑고 아름다운 음색을 자랑하는 시온 어린이 합창단은 시온 안에서 뿐만 아니라 방송 출연, 군부대 위문공연 등 대외적인 활동도 활발히 전개하여 시온을 알리는 꼬마 전도사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던 것이다.
어린이 성가대가 모체
“너희는 꼬마 전도사야. 많이 아는 어른들보다 너희들이 더 많이 전도할 수 있단다.” 덕소 어린이 합창단에서 활발히 활동했던 이종혜(51세) 씨는 합창단 활동을 후원하던 어른들로부터 ‘꼬마 전도사’란 이야기를 들으며 더 많은 자부심과 책임감을 느꼈다고 했다. 어린이 성가대로 시작한 시온 어린이 합창단은 교회 주일학생들로 이루어진 것이다. 지금은 주일학생이라고 하면 초등학생을 떠올리지만 1960년대 주일학생이라고 하면 중학생까지를 포함하는 의미였다. 소사의 시온 어린이 합창단은 보통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학생들이 활동을 했다.
시온 어린이 합창단은 1961년 5월 6일 서울 제1방송국에 출연을 했다.
“지난 6일 하오 7시 10분 서울 제1방송국에서 방송하는 ‘청소년 음악회’시간에 신앙촌 내 시온주일학교 어린이들로 구성된 ‘시온 어린이 합창단’의 합창이 있었다. 시온 주일학교내의 중등부 성가대에서 선발된 48명의 귀여운 종달새들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에 흘러감으로써 신앙촌 어린이들의 순박하고 따뜻한 사랑의 정서를 온 천하에 알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서울 제1방송국에서는 종전에 듣지 못했던 ‘시온 어린이 합창단’의 기발한 연주에 탄복한 나머지 앞으로 우리나라에 찾아오는 외국사절단을 환영할 합창단의 유력한 멤버로 넣어줄 것을 약속하였다고 한다.”(신앙신보 1961.5.15)
‘귀여운 종달새’들의 아름다운 화음
합창단원 대부분이 현악 연주하기도
시온 어린이 합창단과 새로 발족한 시온 현악합주단의 연주회 소식을 전하는 1961년 12월 11일자 신앙신보에 의하면 1961년 7월에는 현악합주단이 조직되었는데 합창단 대부분이 현악합주를 겸했다고 한다.
1961년 12월 15일 국제 친선협회 주최와 한국일보사 후원으로 삼일당(진명여고 강당)에서 가진 시온 어린이 합창단의 송년 공연에는 박세선 씨의 첼로 독주, 임만섭 씨의 테너 독주, 홍지유 씨의 바이올린 독주 등 저명인사의 찬조출연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작곡가 홍난파 씨의 아들인 홍지유 씨는 시온어린이 합주단을 지도하기도 했다고 한다.
신앙촌 바이올린은 유명
시온 어린이 합창단에서 소프라노로 활동을 했던 오순희(61세.서울전농교회)권사도 바이올린을 연주했는데 “합창단원들이 거의 다 악기를 연주했어요. 그 때 신앙촌에는 바이올린 공장도 있었고요, 바이올린 품질도 우수했어요. 신앙촌에는 국내 음악가들 중에 유명한 사람들도 많았는데 그 분들이 다 선생님이셨어요.” 쟁쟁한 선생님들로부터 지도를 받았다고 은근한 자랑을 했다.
시온 어린이 합창단의 방송 출연이 잇달았는데, 1962년 1월 31일에는 문화방송국에서 2월 2일에는 중앙방송국에서 각각 방송 합창 녹음 취음을 했다. 녹음한 방송은 중앙방송이 2월 13일 오후 5시 30분 ‘어린이’시간에, 문화방송에선 14일 오후 6시 ‘노래잔치’시간에 각각 방송한다고 했다.
본격적인 TV방송이 시작되면서 텔레비전에도 출연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