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소신앙촌(17) – 시온 어린이농구팀③
시온을 드높이고 하나님께 영광 돌려1965년 11월 14일자 소년한국일보는 제1회 전국 남녀 국민학교 농구대회 결승전 경기 광경을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제1회 전국 남녀 국민학교 농구대회 결승전은 1965년 11월 13일 장충체육관을 메운 각 학교 응원단의 북소리, 나팔소리, 고함소리가 체육관을 뒤흔드는 가운데 거행되었다. 시온 응원단 2,900명을 포함한 11,000여 명의 각 학교 응원단과 구경온 관중 등 모두 15,000여 명이 빽빽하게 들어찼는데 이와 같은 대 관중은 체육관 개관이래 어린이나 학생들의 경기로는 처음이라고 장충체육관 측에서는 밝혔다.
시온 어린이농구팀과 서울 교동 팀의 결승전에서 ‘시온’팀은 능숙한 장거리 패스와 맨투맨 작전으로 ‘교동’팀의 볼을 막았으며, ‘서울 교동’은 끝까지 힘을 다해 싸웠으나 패스가 정확하지 못하여 점수 차이가 더 크게 벌어지자 선수들이 당황하여 ‘시온’팀에게 패스를 하는가 하면 점프가 모자라, 리바운드 볼을 번번이 빼앗겨 슛할 기회를 놓치고 우승의 영광을 ‘시온’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점수차에 당황한 상대팀
제2회 전국 남녀 국민학교 농구대회는 1966년 5월 2일 장충체육관에서 개최되었는데 소년한국일보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소년한국과 대한농구협회가 공동 주최하고 서울 텔레비젼 방송국 협찬, 문교부와 서울시 교육위원회의 후원으로 열린 제2회 전국 남녀 국민학교 농구대회가 5월 2일 장충체육관에서 화려한 막을 올렸다. 이날 오후 1시 30분에 열린 개회식에서 학교 이름이 적힌 팻말을 앞세우고 색색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해병대 군악대의 행진곡 연주에 맞추어 걸음도 당당하게 들어서자 7,000여 명의 어린이들이 일제히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대한농구협회 전무이사 강재권씨의 개회사에 이어 참가 선수들을 대표한 경기 ‘시온 제2’팀의 이영호 선수가 ‘대회 경기 규칙을 지키고 끝까지 정정당당하게 싸울 것’을 다짐하는 선서문을 낭독하였다. 제2회 전국 남녀 국민학교 농구대회 입장료는 국민학교 어린이는 3원, 어른은 20원, 학생은 10원이었다.”
이 대회에서도 시온 어린이 팀이 우승을 차지했는데 1966년 5월 7일 소년한국일보 1면은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4일 동안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제2회 전국 남녀 국민학교 농구대회는 남녀 9개 팀이 참가하여 열전을 벌인 끝에, 남자부에 경기 ‘시온 제2’팀이 작년에 이어 우승함으로써 영예의 문교부장관 우승기를 다시 차지하였다.
이날 오후 5시부터 시상식이 있었는데, 준우승 팀에게 교육감상을, 그리고 남녀 개인 우수상과 기술상으로 각각 대한체육회장 상패가 수여되었다. 또한 각 팀 선수들 가운데 남녀 선수 1명씩에게 본사 사장이 주는 감투상을 수여하였으며, 참가 선수 전원에게 참가상으로 메달과 동아제약 및 종근당 제약에서 기증한 어린이 캄파리 헤모구론 등 1병씩을 나누어 주었다.”
1966년 3월 시온 어린이 팀은 미8군 어린이 팀과도 경기를 하였는데 미국 어린이들의 신장은 평균 170cm이고 180센티미터를 넘는 선수들도 여럿 있었다. 그러나 경기결과는 시온 어린이농구팀의 승리였다. 평균 신장 135~137cm가 평균 신장이 30cm나 더 큰 거인 팀을 꺾은 셈이다.
당시에는 모든 조건이 열악한 시절이라 농구장도 울퉁불퉁 하였고 처음에는 축구공으로 농구연습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시온 어린이농구팀은 빠른 스피드를 무기로 하여 두 번이면 슛으로 바로 연결되는 속공플레이를 구사하여 상대방을 무력화시키곤 하였다. 이러한 묘기를 보고 관중들은 열광하였다. 스피드뿐만 아니라 그들의 점프력도 대단하였다. 143cm의 단신 선수가 1미터 10cm를 점프하여 링을 잡을 정도였다.
경기에 임하기 전에는 항상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시고 경기가 끝나고 돌아오면 또 축복해주셨다. 하나님 댁 정원에서 축복을 받던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당시의 선수들은 증언하였다.
상대가 파울을 범하여 ‘자유투(自由投)’가 주어지면 모두들 마음속으로 기도를 하고 공을 던졌는데 시온 어린이들의 성공률은 거의 100%였다고 한다.
축복을 받고 경기장에 나가면 시온 어린이들은 자신 있게 경기에 임하게 되어 마음으로 상대의 기를 꺾고 들어갔다고 회상했다. 이들이 연습경기를 하려고 해도 같은 국민학교 팀들과는 상대가 안 되어 무학여중 등의 중학생 팀과 연습경기를 많이 하였다고 한다.
출전자격을 제한해
소사신앙촌의 시온 제1 국민학교도 농구팀을 창단하여 제3회 대회에서 우승하였다. 물론 준우승은 시온 제2 국민학교였다. 전국어린이 농구대회를 1회에서 3회까지 모두 시온이 차지하다보니 주위에서 질시와 견제가 끊이지 않았다. 드디어 대한농구협회는 전국 어린이 농구대회를 폐지시키고 대신에 시온 팀이 출전할 수 없도록 출전자격을 서울 팀으로 제한하여 서울시 대회로 축소시켜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