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집회에서 박장로님께서는 양심의 법을 강조하셔

박종문 승사(1) / 노량진교회
발행일 발행호수 2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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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저는 1922년 황해도 벽성에서 무남독녀 외동딸로 태어났습니다. 천도교(天道敎)를 믿으셨던 아버님은 종종 정화수를 떠 놓고 조용한 음성으로 무언가를 외우셨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는 어렴풋하게나마 신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다녀 본 적은 없었지만 밥을 먹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저는 항상 식사 전에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며 기도를 드리곤 했습니다. 그 후 스물한 살에 결혼한 저는 서울 상도동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 공산군이 서울을 점령했을 때, 집에 들이닥친 공산군이 남편을 붙잡아 간 적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교사인 남편이 학군단에 소속되었다는 이유로 잡아 간 것 같았습니다. 당시 서슬 퍼런 공산군에게 목숨을 잃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저는 남편이 산속으로 끌려간 후 두려움과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가 딱딱 맞부딪힐 정도로 온몸이 떨리는 가운데 다급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으로 이 일이 어떻게 될까요?’ 하며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 만약 저들이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다면 그것은 큰 죄를 짓는 것이 아닙니까. 저들이 옳지 못한 길로 간다면 옳은 길로 돌아오게 하옵소서.’ 그렇게 기도를 드리면서 두렵고 불안하던 마음이 조금씩 안정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며, 몇 시간이 지난 후 남편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교회에 나가 하나님을 믿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시부모님을 모시고 대가족의 살림을 하느라 바쁜 속에서도 교회에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항상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1955년 3월, 저는 난생처음으로 상도 장로교회에 나가 주일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날 예배 시간에 백용종 목사가 광고하기를 “지금 박태선 장로라는 분이 남산에서 부흥회를 하고 있으니 교인 분들은 많이들 참석하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3일이 지난 후 수요일예배 때 백 목사가 다시 남산집회에 대해 이야기하며 “거기서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찬송을 부르는지 말로 다 못합니다. 찬송이 무르녹아요. 아직 안 간 분들은 다들 가 보세요.”라면서 집회에 참석할 것을 몇 번이나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저도 집회에 꼭 참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는 저희 집 앞의 고갯길에서 상도 장로교회 여자 전도사가 할머니 한 분을 모시고 부지런히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바쁘게 걸어가는 두 분을 보면서 ‘박 장로님 집회에 가나 보다.’ 하며 저도 빨리 집회에 참석하고 싶어서 서둘러 준비를 하여 남산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집회가 열리는 남산 광장에 도착했을 때, 저는 집회장의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드넓은 광장에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는데, 그 많은 사람들이 손뼉을 치며 찬송하는 모습이 마치 아득한 바다에 파도가 넘실넘실 밀려와 “착- 착-” 하며 물결치는 것 같았고, 군중들의 우렁찬 찬송 소리가 온 산에 울려퍼졌습니다. 저는 ‘세상에! 이런 데가 있다니…….’ 하며 한참 동안 그 광경을 바라보았습니다.

단상에는 감색 양복 차림의 젊은 신사 분께서 찬송을 인도하고 계셨는데, 그분이 바로 박태선 장로님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찬송가를 전혀 몰랐지만 사람들 사이에 앉아 손뼉을 치면서 찬송을 따라 불렀습니다. “저 좋은 낙원 이르니 그 쾌락 내 쾌락일세~” 찬송을 부르는 동안 마음이 한없이 편안해지며 왠지 모를 기쁨과 즐거움이 넘쳤습니다. ‘참 좋구나! 내가 언제 이렇게 기뻤던 적이 있었나?’ 하며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날 저녁때 집에 돌아온 저는 다음 날 집회에 또 가고 싶어서 미리 집안일을 끝내 두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처럼 집회장에서 철야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먹을거리와 모포 등을 챙겨서 4남매 아이들과 함께 다음 날 일찍부터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설교 시간에 박 장로님께서는 마음으로도 죄를 지어서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을 많이 강조하셨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행동만이 아니라 순간이라도 양심에 어긋나는 마음과 생각을 가질 때 죄가 된다는 말씀이 제 가슴을 파고 들어와 ‘나는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배가 끝나 박 장로님께서 단상에서 내려가신 후에도 “지은 죄를 하나님 앞에 회개하세요.” 하시던 안타까운 음성이 귓가에 맴돌아 저는 애타는 심정으로 기도드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저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30년이 넘도록 죄가 죄인지도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부디 저의 죄를 용서하시고 씻어 주시옵소서.’ 그렇게 간절히 기도드리던 어느 순간, 콧속으로 맑고 시원한 공기가 확 하고 들어오더니 말로 다 할 수 없이 좋은 향기가 진동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가슴속이 후련하게 트이며 금방이라도 훨훨 날아오를 것처럼 온몸이 가볍게 느껴졌습니다. 다른 잡념이나 생각이 전혀 없이 오직 ‘하나님~’하고 마음속으로 부르며 계속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날 예배 시간에 “나와 세상은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하는 찬송을 부를 때, 그 가사가 꼭 저의 마음을 나타낸 것 같아서 목이 쉬도록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저는 집회가 끝날 때까지 며칠 동안 계속 참석하면서 낮에 잠깐씩 집에 가서 집안일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전차를 타고 가는 길에나 부엌에서 밥을 할 때 즐겁게 찬송을 부르다 보면, 어느 순간 집회장에서 맡았던 좋은 향기가 진하게 맡아지곤 했습니다. 그때 갓 돌이 지난 넷째 경원이를 집회에 데리고 갔었는데, 홍역을 앓아 열이 오르고 설사를 하던 아이가 예배를 드리는 동안 어느새 열이 다 내리고 설사도 멈추어 언제 아팠던가 싶을 정도로 깨끗이 나았습니다. 장시간 예배를 드리는데도 아이는 배고프다고 보채지도 않고 울지도 않으며 새근새근 곱게 잠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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