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교회 유기성 관장

이 몸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고자
발행일 발행호수 2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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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젊음의 소중함’을 강조하셨다. 세상 사람들도 청춘을 예찬해왔다. 이는 청춘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청춘의 특권을 값없이 써 버리는 젊은이들이 대부분이지만, 청춘의 특권을 하나님께 바치는 관장이 있다. 그 주인공이 바로 구리교회 유기성 관장이다.

그는 1970년 초, 초등학교 때에 동네사람의 전도를 받아 먼저 천부교에 입문한 어머니를 따라 경기도 파주군 금천리에 있는 천부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사실 그의 어머니는 어려서 병고로 약을 달고 살았던 큰 아들의 건강을 위해 신앙생활을 시작했는데 아들이 건강해지자 자신의 집에 갈현 전도관을 유치하였다.

유 관장은 어려서는 멋모르고 교회에 나왔지만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학교 선생님들과 친구들이 천부교와 하나님, 생명물을 비난하던 아픈 추억들이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한다. 어린 유관장은 집에서 예배를 드리니 자연적으로 어머니가 깨워서 새벽예배를 드리게 되었으며, 하루라도 어머니가 데려가지 않으면 오히려 어머니께 짜증을 내곤 하였다. 나중에 2km나 떨어진 곳에 천부교회가 신축되어 꼬마가 걷기에는 멀었지만, 어머니 손을 잡고 ‘영원한 하늘나라 들어가려고 오늘도 모여왔네 우리 친구야’를 부르며, 매일 새벽 교회로 향하면 절로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어머니 손에 이끌려 따라다닌 새벽기도 믿음의 씨앗돼
장례식에서 뻣뻣해진 시체가 생명물로 피어나는 것 보고
젊음을 다 바쳐 하나님의 일 하기로 결심해

중학교 3학년이 되자 주일학교 반사를 하면서 동네 아이들을 모아서 전도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한 친구를 전도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때 알게 되었다. 그는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어른들을 따라 장례식에 가서 뻣뻣하던 시신이 생명물로 피는 것을 목격하였다. 축복일에 하나님께서 가지들이 순종치 않아서 안타까워 하시던 모습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유 관장은 그때 눈물을 흘리시며 ‘함께 천국에 가자’며 당부하시던 하나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1980년에 들어서 하나님께서 예수의 정체와 새 말씀을 선포하시자, 기성교계는 탁명환을 앞세워 우리 천부교회에 대한 대대적인 중상모략을 했다. 고등학생이던 그는 파주 장로교회에서 열린 탁명환의 집회에 가보니 거짓으로 혹세무민을 하던 그가 불쌍하고 가련하기도 하며, 한편 ‘너무나 억울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군복무를 마치고 경기도 가평군의 당시 공석이던 상천 천부교회를 방문하여 꼭 전도를 할 마음으로 그곳에서 누군가를 만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기도를 했다. 먼 곳에서 다가오는 두 고등학생을 공손하게 맞이하며 이야기를 건넸더니 순수하게 이야기를 받아주었다. 이 친구들이 교회에 나오게 되었고 드디어 축복일에 기장신앙촌까지 가게 되었다. 그들과 오가면서 유 관장은 생명물의 권능, 시신 피는 이야기, 이슬성신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한 친구는 예배 후에 하나님께서 소예배실에 놓인 생수통을 축복하시는데 ‘하얀 안개 같은 것이 마구 통 속으로 들어가더라’고 간증하였다. 그 친구는 이슬성신 체험을 하였고 너무나 기분이 좋다고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친구가 학교 윤리 선생님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했더니 그 선생님이 ‘너, 최면술에 걸린거야. 그곳은 이단이니 가지마라’라고 하여 신앙생활을 멀리하였다. 유 관장은 학교 선생에게 전화를 걸어서 항의를 하였더니, 그 선생님은 어쩔 줄 몰라하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젊음의 특권과 기회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사업을 미는데 바치고 싶어
온 세상 젊은이에게 외치고 싶은 말 `젊음을 값지게`

늘 마음 한 구석에 ‘하나님 일을 해야겠는데…’라는 생각이 있던 중에 유 관장은 종종 소비조합을 하는 권사님들의 물건들을 실어다 드렸다. 물건을 실어다 드리고 돌아서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왜 소비조합원들 가운데 젊은이들은 없을까?’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우리 젊은이들이 나이드신 분들에게 이 일을 맡겨야 하는가?’라는 죄스러운 마음이 들어, 그는 ‘그래, 나도 한번 방판을 해보자’라고 마음먹고 아파트 주변에서 신앙촌 양말을 팔아보았다. 처음에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나님께 ‘힘을 주시옵소서’라고 매달렸다. 이미 신앙촌 제품의 명성은 알려져 있어서 친절과 진실로 판매에 임하니 소비자들이 알아서 우리 제품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유 관장은 하나님께서 ‘내가 도와줄테니, 나가봐라’는 말씀이 실감이 났다. 시간이 지나면서 유 관장은 ‘그래, 하나님께서 성사업을 할 수 있는 나에게 주신 마지막 기회이다’라고 마음먹고 소비조합을 하시는 권사님들께 단골을 소개받고 그리고 소개받은 분이 마치 쇠사슬을 잇듯이 계속 연결을 시켜주는 것이었다. 우리 제품을 가져가면 소비자들이 자기네들끼리 알아서 홍보를 해주고, 소개를 해주어 ‘땅짚고 헤엄’치는 격이었다.

유 관장은 고객이 늘어나면서 ‘내가 소비조합을 하는 목적이 전도이니 앞으로 교역을 해보자’라고 마음을 먹었다. 그의 교역자의 꿈은 2005년 1월에 구리교회 학생관장으로 발령받아 이루어졌다. 그의 하루 일과를 보면 새벽 4시면 일어나 교인 한 명 한 명을 머리에 떠올리며 기도를 한다. 5시에 새벽예배를 드린 후에 아침운동을 하고 덕소매장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지인들도 만나 정보도 교환하고 고객이 주문한 물건들을 구매한다. 물건을 싣고 주문한 고객을 전화로 연락하면서 찾아가면 모두 반갑게 맞아준다. 안타까운 일은 ‘아직 신앙촌이 있느냐?’라고 묻는 고객들이 있다는 것. 그의 사업 구역은 ‘지구 끝까지’이다.

유 관장은 특히 청년들에게 ‘늙으면 하나님 일을 하고 싶어도 힘이 없고 능력이 없어 할 수가 없다. 기회가 주어진 것은 젊은이만이 갖는 특권이다. 용기를 갖고 이 특권을 하나님께 드리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외친다. ‘젊음의 특권을 후회하지 않는 일에 쏟는 젊은이가 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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