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광수 관장 편 (36) 지금도 내리는 하나님 은혜

하나님 육을 벗으신 후에 더욱 강해진 생명물의 권능
발행일 발행호수 2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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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구원의 길 끝까지 가야

1990년 2월 인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벗으셨습니다. 저는 전보다 더욱 바쁘게 각 가정에 심방을 다녔습니다. 마산교회에 시무하면서 경상남도 서부 지역 전체를 책임지고 있었기 때문에 김해, 진주, 창원, 고성, 거창, 삼천포, 의령, 거제도, 충무(現 통영) 등 한 군내에 우리 교인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 교인을 만나기 위해 찾아갔습니다. 거제도나 거창 같은 지역에 심방을 다녀오면 하루해가 다 가버렸습니다. 하지만 교인들을 만나서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고 모두가 의롭게 살기를 바라셨던 하나님의 사랑과 언제나 변함없는 하나님 이슬성신 은혜에 구원의 길을 끝까지 가야한다는 말을 전하고 돌아올 때면 언제나 기쁘고 힘이 났습니다.

그렇게 새벽에는 마산교인들을, 낮에는 멀리 사는 타 지역 교인들을 여러 번씩 찾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또 전했습니다. 경상남도 서부 지역 뿐만 아니라 타지역 대구, 순천, 여수, 울산, 광주 등 교인들과 함께하는 모임에 참석해달라는 요청이 있으면 어디든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검은 자색으로 변한
시신을 축복 비누로
닦는 수간 흰 페인트
칠한 듯 하얗게 피어

하나님께서 낙원에 가신 얼마 후 1990년 4월 27일 마산 창원에 사시는 분으로부터 장례가 났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통영에 사시는 아버님(전계남씨, 82세)이 돌아가셨는데 장례식 좀 주관해 주십시오.” 연락을 주신 분은 돌아가신 분의 자녀로 고인은 우리 교인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예전에 여러 자녀들과 함께 전도관에 다니셨고, 그중에 창원에 사는 돌아가신 분의 아들인 전광후 집사님 내외만 제가 심방을 다니면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연락을 받고 입관식 때 시신을 닦기 위해 하나님 계실 때 축복 받았던 비누를 가지고 통영으로 갔습니다. 장례가 난 집에 도착한 저는 유족들이 보는 가운데 입관을 하기 위해 수건에 물과 축복 비누를 묻혀 저와 전광후 집사님 둘이서 정성껏 고인의 몸을 씻겼습니다. 시신의 앞을 닦고 뒤와 등을 닦기 위해 조심히 시신의 한쪽을 들었는데 등의 색깔이 벌써 검은 자색으로 변해있었습니다. 아들인 전광후 집사님은 수건에 물과 축복비누를 묻혀 검은 색으로 변한 고인의 등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죽 닦았습니다. 그런데 마치 검은 색 바탕에 흰 페인트를 칠하는 것처럼 수건이 지나간 자리가 그 즉시 하얗게 변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너무 놀란 전광후 집사님이 그 순간 “아이고, 하나님”하고 외쳤고 유가족들도 그 광경을 함께 지켜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육을
벗으셨어도 변함없이
이슬성신의 은혜가
임하시는 것 깨달아

장례식 이후 전광후 집사님은 보기 흉한 시신을 아름답게 변하게 하는 하나님의 권능에 놀라고 감사하여 이때부터 마산교회에 나오면서 신앙생활을 더욱 열심히 하게 되었습니다.

1990년 5월 19일에는 전국의 소비조합원들과 고객들을 위해 기장신앙촌 판매부를 새롭게 리모델링하고 오픈을 했습니다.

1990년 8월 7일에 협회에서 두 가지 사항을 발표하였습니다. 첫째는 현직 교역자들의 중, 고, 대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에게 100% 전액 학자금을 지급한다는 것과 둘째는 전국의 천부교 교인 사망 시 협회 차원의 조의금을 지급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전국의 교회 현황
파악하는 업무 맡아
전국을 다니면서
만나는 얼굴 반가워

얼마 후 저는 전국의 공석교회 현황을 파악하는 업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공석교회라는 것은 제단을 짓기 위해 땅을 사뒀거나, 건물을 지었는데 전도사가 파송되지 않았거나, 전도사가 다른 곳으로 가게 되어 비어있는 제단을 말합니다. 교역자로서 전도 활동을 하는 동시에, 공석교회 현황 파악을 위해 전국을 순회하는 일까지 하게 되었으니 더욱 바쁜 생활이 되었습니다.

1990년 8월 31일 첫 번째로 광주와 전라남도 지역에 있는 공석교회부터 찾아 갔습니다. 광주시내에 있는 서방, 방림, 월산, 내방, 전남 지역에 있는 영광, 문평, 함평, 노안, 오양, 영산포, 왕곡, 동창, 일로, 월선을 돌아보았습니다. 10월 3일에는 전북지역 공석교회인 금마, 팔봉, 함라, 옥봉, 미성, 김제, 영전, 해리, 태인, 금구를 찾아갔습니다. 금구는 제가 1977년 김제교회 시찰장으로 시무할 당시 지관으로 있던 전도관이었습니다.

공석교회에 가면 사진도 찍고 여러 가지 사항에 대해 기록도 했습니다. 그럴 때면 그 교회 주변에 사는 전도관 교인들도 만나게 되는데 특히나 할머니 권사님들이 저희들을 보고 무척 반가워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낙원에 가신 뒤로 전도관이 없어졌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교역자들이 전도관을 돌아보고 가면 그 소문이 사라진다고 자주 오라고 했습니다. 새벽부터 해가 져서 더 이상 다닐 수 없을 정도가 되면 그 곳에서 가까운 제단을 찾아가서 자고 다음 날 새벽예배를 드리고 다시 출발을 했습니다.

1990년 10월 22일에는 충남지역 장항, 마서, 기산, 한산, 월산, 충화, 청양, 대천, 청소, 광천, 태안을 23일에는 안면도 누동, 음암, 문양, 정미, 당진, 함덕, 오가, 예산, 내량, 둔포, 모산, 전동으로 쉴 사이 없이 조사를 다녔습니다. 공석교회를 다니면서 우리를 기다리는 분들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쉴 수가 없었습니다. 교인을 한 명도 못 만난다고 해도 우리들이 공석교회를 돌아봄으로 해서 전도관이 없어졌다는 주변 사람들의 인식을 달리 할 것이란 생각을 하면 더욱 힘을 내서 다니게 되었습니다. 공석교회 순회에는 주로 전주교회 허정일 관장님, 대구교회 박일성 관장님이 동행하였습니다.

1990년 11월 9일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기장신앙촌 협회에서는 전국 각 교회에 백미 한 가마씩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주신 쌀로 교인들은 추수감사절 떡을 만들어 의미있는 추수감사절을 보냈습니다. 지금도 매해 추수감사절이 되면 전국 각 교회에 보내주신 쌀로 떡을 빚어 추수감사절을 보내는 전통이 생겼습니다.

제1회 시온실고 졸업

1991년 2월 22일에는 신앙촌에 있는 한일물산주식회사 부설 시온실업고등학교 제1회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전국적으로 교통이 마비될 정도로 큰 폭설이 와서 지방에 있는 교역자들은 물론 저도 뜻 깊은 자리에 참석을 하지 못해 아쉬움이 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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