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에 두려움 대신 확신과 희망은 차오르고
김청희권사(1) / 기장신앙촌저는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나 위로 오빠만 다섯이 있는 가정의 귀염둥이 막내딸로 다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한번 시작한 일은 누구보다 잘하고 싶었던 저는 1951년 경기여고를 졸업한 후 회사에 취직해서도 나름대로 열정과 자부심을 가지고 일했습니다. 경성전기 사장 비서실에서 근무하던 중 스물네 살에 결혼하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가정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1965년경 저희 가족이 서울 한남동에 살 때였습니다. 저는 이웃의 엄미연씨라는 분과 친하게 지냈었는데, 그분이 전도관에 함께 가자며 저에게 전도를 했습니다. 종교에 큰 관심이 없었던 저는 번번이 거절했지만, 그래도 그분은 전도관이나 신앙촌에서 예배드리는 날이면 꼭 저희 집에 찾아와 함께 가자며 권유하곤 했습니다.
그때 즈음 저희 가정은 큰 어려움에 빠져 있었습니다. 법무부에 다니던 남편이 갑자기 직장을 그만두고 가정을 돌보지 않으면서 살림이 어려워졌던 것입니다. 난생처음 끼니를 걱정하며 배고픔과 가난을 겪었지만, 그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마음이 슬프고 괴로운 것이었습니다. 학교를 같이 다녔던 동창들이 사회적인 지위와 부를 누리는 것을 보면서 상대적인 박탈감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또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부모 역할을 제대로 못 해 준다는 생각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친정집이 잘산다고 하지만 도움을 받는 것도 한두 번이었고, 생계를 이을 방법이 막막한 저의 처지가 너무 괴로웠습니다.
그동안에도 엄미연씨는 끊임없이 찾아와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는 것을 싫어하는 제 성격을 알고는 제가 아무 말 안 해도 저희 집의 비어 있는 쌀독을 들여다보고 쌀을 가득히 채워 놓곤 했습니다. 늘 찾아와 무슨 일 있을 때마다 같이 걱정해 주고 도와주는 그 정성은 친언니나 동생도 그럴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진심 어린 마음이었습니다.
그렇게 3년이 지나면서 엄미연 씨의 착하고 고운 심성에 감탄하는 때가 많았습니다. 저를 전도하기 위해 한결같이 정성을 들이는 것을 보며 전도관에 무엇이 있긴 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토록 큰 도움을 주는데 전도관에 가는 것으로 보답이 된다면 가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엄미연씨와 함께 덕소신앙촌 축복일예배에 처음 참석한 날이었습니다. 예배 시간에 등단하신 하나님을 뵈니 하얀 와이셔츠를 입으신 모습이 너무나 환하고 깨끗하게 보였고, 왠지 모르게 세상 사람과는 다른 분인 것 같았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안찰을 받게 되었는데 배에 손을 대시자마자 얼마나 아픈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 속의 죄를 하나님의 은혜로 소멸시키시기에 그렇게 아프다는 것을 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안찰을 받고 돌아오면서 제 머릿속에는 ‘죄를 안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예전에 천주교회에 잠깐 다녔을 때도 죄에 대한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고 죄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안찰을 받고 나니 죄는 절대 지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계속 떠올라 집에 오는 동안 눈길 한 번 돌리는 것도 조심했습니다.
그다음 날부터 엄미연씨와 함께 이태원전도관으로 새벽예배를 나갔습니다. 엄미연 씨가 은혜 받은 이야기를 하던 것을 떠올리며 나도 정성을 드려 은혜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맨 앞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렸습니다. 새벽예배 때마다 전도사님이 전해 주는 하나님 말씀은 들으면 들을수록 달고 오묘했습니다. 이슬성신을 내려 사람의 죄를 씻어 주신다는 말씀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고, 절대 죄를 짓지 않아야 한다시며 세밀하게 죄를 구분해 주시는 말씀 또한 가슴에 깊이 남았습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마음 가득히 차오르는 평안과 기쁨을 느낄 수 있었고, 믿고 따를 만한 참 진리를 찾았다는 확신과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의지할 데 없이 외로운 상황에서 당장 내일을 살아갈 것이 걱정되고 두려웠던 제 마음속에 한 줄기 빛이 비치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가 1968년, 제 나이 서른일곱 살 되던 때였습니다.
제단에 다니면서 마음이 점점 변하는 것을 저 스스로 느끼는 때가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 거리를 쓸고 있는 청소부가 보이면 ‘저분이 이른 아침에 밥은 먹고 나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전에는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던 걱정이었습니다. 헐벗은 할머니를 보면 잠이라도 따뜻한 데서 주무셨을지, 연세도 많으신데 한데서 주무시면 어쩌나 진심으로 걱정이 되었습니다. 제가 계속 부유하게 살았더라면 이런 생각을 못 했을 거라는 깨달음과 함께, 고생을 통해 제 마음의 깊이와 폭이 달라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전에는 저의 처지를 괴롭게 생각하고 절망하기만 했는데 그 속에도 감사할 조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을 믿으며 어려움을 극복해야겠다는 의지 또한 강하게 생겨났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