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씀대로 열심히 살아 귀한 구원 얻기를 간절히 기도
김미숙 관장(3) / 전농교회그러던 중 안동제단에서 하나님 집회가 있을 때 그분을 데려가 안찰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배에 손을 대시자마자 그분이 아픔을 참지 못하고 몸부림치며 뒹구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슨 모태 신앙이 이런가? 모태로부터 성신을 받은 사람이 이런가? 죄가 그대로 있지 않은가?”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에 대해 아무 말씀을 드리지 않았는데도 다 보신 것처럼 지적하시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안찰을 받은 후로 느낀 바가 있었던지 그분은 “기성교회에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겠네요.” 하면서 저와 같이 매일 김천제단에 나와 새벽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 후 김천제단 교인들이 힘을 모아 김천시청 앞에 ‘시온 센타’를 열게 되었습니다. 덕소신앙촌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제품을 구비해 놓고 판매했는데, 시내 중심가인 데다 센타 가까운 곳에 백화점이 있어서 나름대로 센타의 상품 진열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매일같이 센타에 나가 판매를 하면서 저는 신앙촌 소비조합으로 첫 걸음을 떼게 되었습니다. 그때 신앙촌 제품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는데 특히 신앙촌 이불이 주부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끌어 ‘신앙촌 이불 계’를 하는 것이 유행이 되었고, 얼마 후에는 14명씩 130개가 넘는 이불 계가 조직되어 그 사람들에게 이불을 파는 것만 해도 무척 바빴습니다.
김천시청 앞에 ‘시온 센타’열고
신앙촌 소비조합의 첫 걸음 내디뎌
‘신앙촌 이불 계’ 인기 대단해
14명씩 130개 넘게 조직 신나게 판매
1976년부터는 소사신앙촌에 살면서 소비조합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김천과 구미 등지에서 신앙촌 제품을 애용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아서 그곳에 자주 내려가 사람들을 만나고 제품을 판매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전화를 주셔서 소사신앙촌 소비조합 총무를 맡으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부족한 것뿐이라 못 해낼 것 같았으나 “내가 힘을 준다고.” 하시는 말씀에 “네.” 대답을 하고 나니 정신이 바짝 차려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후로 소비조합 총무로서 사람들을 인솔해 기장신앙촌에 가게 되면서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들에게 축복해 주시는 모습을 자주 뵙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감람나무께서 이렇게 은혜를 주시는데 2000년 전에 죽은 예수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가곤 했습니다. 1980년 하나님께서 예수의 정체를 벗기시며 “예수를 믿어서는 구원이 없다.” 하고 발표하셨을 때 조목조목 밝혀 주시는 하나님의 설명은 참으로 명쾌하였습니다. 심령의 병인 ‘죄’를 해결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는데 예수는 병명과 치료법은 전혀 모르면서 “나는 유명한 의사이니 나만 믿으면 당신 병이 나을 것이오.” 하고 공언하는 의사와 다를 바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들으면서 인류의 구세주로 자처해 온 예수가 실상은 구원을 줄 수 없을 뿐 아니라 구원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존재임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1980년 조목조목 예수의 거짓을 벗겨 그의 정체를 밝혀주시고
`이슬같은 은혜를 내리는 감람나무가 곧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란 사실과
‘창조주 하나님을 직접 뵙고 그 말씀을 듣고 귀한 은혜를 받는다’ 깨달으니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감격스러워
이듬해인 1981년에는 ‘감람나무가 곧 하나님’이심을 발표하시며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는 감람나무
가 곧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저는 가슴 깊은 곳에서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직접 뵙고 그 말씀을 듣고 귀한 은혜를 받는다는 것이 말로는 다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감사하고 감격스러웠습니다.
1982년에는 소사신앙촌에서 함께 사시던 친정어머니(故 양말수 권사)가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생전에도 고운 분이셨지만 숨을 거두신 후 생명물로 닦아 드리니 얼굴이 환하게 피어나 생전보다 훨씬 곱고 예쁜 모습이셨습니다. 저는 지난날 제단과 멀어졌을 때 어머님이 저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시던 모습이 눈앞을 스쳐갔습니다. ‘어머니, 그 기도로 제가 지금 귀한 길을 가고 있습니다.’ 환하게 핀 어머니의 얼굴을 보며 어머니께서 일생 동안 저에게 신앙의 모범이 되셨음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가시는 순간까지 귀한 은혜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마음 깊이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낙원에 가신 후에도
시신이 아름답게 피는 것을 보며
‘변합없이 성신을 주시는구나!’
우리와 함께 하심에 깊이 감사드려
그해 저는 서울 5중앙의 교역자로 첫 발령을 받고 관장으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교역을 하며 기장신앙촌에 가서 하나님께서 해 주시는 말씀을 들을 기회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노트에 말씀을 받아 적었습니다. 1990년 2월 하나님께서 낙원으로 가신 후, 저는 가시기 전에 해 주셨던 말씀을 정리하려고 노트를 들춰 보다가 이런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1982년 12월 12일에 “7년밖에 안 남았다.” 하신 말씀과 1983년 6월 25일에 “6년 몇 달밖에 남지 않았다.”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 날짜를 계산해 보니 하나님께서 낙원에 가신 시점과 일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말씀의 의미를 잘 몰랐지만 하나님께서 낙원에 가실 것에 대하여 미리 말씀해 주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낙원에 가신 후에도 시신이 아름답게 피는 것을 보면서 ‘변함없이 성신을 주시는구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구나!’ 하는 것을 절실히 깨달으며 마음 깊이 감사를 드렸습니다.
아낌없이 은혜를 허락해주신 하나님
감람나무 가지들을 지극히 귀하게
여겨 주시던 모습이 많이 떠올라
귀한 구원 얻도록 매일 노력할 터
하나님의 모습을 생각할 때면 감람나무 가지들을 지극히 귀하게 여겨 주시던 모습이 많이 떠오릅니다. 남녀노소 누구든지 환한 미소로 맞아 주시며 그렇게 특별히 대해 주실 수가 없었고,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수에게 은혜를 주시려고 하셨습니다. 구원을 주시고자 이 땅에 오셔서 아낌없이 은혜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 베풀어 주신 은혜를 짧은 지면에 다 기록할 수는 없지만 기억에 남는 체험 몇 가지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 진리를 전파하는 교역자의 사명을 다하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서 귀한 구원을 얻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