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대의 추억

이단우권사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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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이단우 권사(뒷줄 왼쪽 세 번째)가 1970년 초 기장신앙촌 제1동 건물 옥상 위에서 동료들과 함께 찍은 사진.

나는 1955년 부산 집회에서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1958년 5월 13일에 소사신앙촌에 입주하였다.
지금도 기장신앙촌이 그렇지만 그 당시에 우리나라에서 신앙촌만한 생활환경이 없었다. 한국전쟁으로 전 국토가 피폐화되었고 원조물자로 연명하던 시절에 자급자족으로 삶의 터전을 하나님께서 일구어주셨으니 그야말로 지상낙원이었다. 은혜를 받고 귀한 정성으로 물건을 만들고 그야말로 기쁨으로 충만한 삶이었다.

나는 그 후 군대를 갔다오고 양말공장을 거쳐 1962년 7월에 덕소신앙촌에 제1차 건설대로 선발되어 블록을 찍는 일에 참여하였다.

6명이 한 조로 시설도 미비하던 시절에 우리는 하루에 3개조가 3,000장 이상을 찍었다. 힘든 줄도 모르고 작업이 끝나면 새벽 3시에 일어나 목욕하고 예배를 드렸다. 육신의 피로도 몰랐다.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니 기쁠 뿐이었다. 그렇게 하여 지어진 곳이 덕소신앙촌 공장지대, 제과부, 간장공장, 피아노공장, 주택지였다.

그 후 나는 1970년에 기장신앙촌 건설 선발대로 제1동 건물공사에 참여하게 되는 영광을 누렸다. 갯벌을 매립한 곳이기에 난공사였다.

얼마나 힘든 공사였는지 9미터를 파고 나서야 땅이 나올 정도였다. 하나님께서는 덕소에 계시면서 매일 비행기로 출퇴근하시는 강행군을 하셨다. 우리도 신이 나서 우리가 살 터전을 닦는데 힘을 보탰다.

그때 그렇게 즐겁고 기쁘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지은 건물이 지금 축복일이나 절기예배를 드리는 곳이 있는 바로 제1동 건물이다. 나는 예배를 드릴때마다 그 때를 생각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콘크리트반에서 작업하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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