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고비마다 지켜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신앙체험기 526회> 광주 산수교회 양송자 권사
발행일 발행호수 2668
글자 크기 조절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양송자 권사/광주 산수교회

저는 1944년생으로, 어린 시절 초등학교 교감 선생님이셨던 아버지 밑에서 크게 부족함 없이 자랐습니다. 영암과 진도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뒤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광주로 올라온 저는 자취를 하며 계림장로교회에 다녔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뒷집에 사는 친구 집에 자주 놀러 갔는데, 그때마다 친구의 외할머니를 뵈었습니다. 전도관에 다니시던 그분은 저를 볼 때마다 “왜 기성교회에 다니냐”고 말씀하셨고,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러던 1962년, 제가 자취하던 곳에 어머니가 오셨을 때였습니다. 친구의 외할머니께서 어머니가 오신 것을 아시고 친구 집으로 부르셨고, 그곳에서 어머니는 전도관에서 심방을 나오신 장시춘 관장님을 처음 뵙게 되었습니다.

관장님께서는 어머니에게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씀을 들려주셨고,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생명물을 나눠 주셨습니다.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생명물을 한 컵 마신 뒤 집으로 돌아와 저에게 천국에 가려면 전도관에 다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저와 어머니는 광주 계림지관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전도관에 다니면서 가장 신기했던 것은 향취였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면 어디선가 좋은 향기가 났습니다. 백합꽃 향기와 비슷하면서도 그보다 훨씬 아름답고, 어디에서도 맡아보지 못한 향기였습니다. “엄마, 좋은 냄새가 나요” 하고 말씀드리면 어머니도 “글쎄 말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향취는 예배 시간뿐 아니라 길을 걸을 때도 맡아졌습니다. 신앙촌에 갔을 때나 신축·개축 예배에 참석했을 때도 향취를 맡곤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배나 모임이 있는 곳에는 꼭 참석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당시 광주에서는 하나님께서 직접 오셔서 집회를 여시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집회 소식이 전해지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제단 안은 2층까지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찼고, 뒤쪽에는 아픈 몸으로 들것에 실려 온 분들도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신 하나님께서는 집회에 모인 사람들 사이를 다니시며 한 사람 한 사람 안수를 해 주셨습니다.

집회 때 기회가 닿아 몇 차례 안수를 받을 수 있었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눈 안찰을 받았을 때였습니다. 손가락을 잠깐 대셨을 뿐인데도 어쩌면 그렇게 무겁고 아픈지 깜짝 놀랐지만, 안찰이 끝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눈이 시원해졌습니다. 대학생 시절에는 목포와 광주 제단에서 배 안찰을 두 번 받기도 했습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다고 할 수도 없었는데 ‘내가 이런 귀한 은혜를 받았구나’ 하는 생각에 감격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1969년 결혼한 뒤에는 전남 무안에서 교편생활을 했습니다. 첫아이를 임신했을 무렵, 조산 위험이 크니 즉시 입원하지 않으면 산모와 아기가 모두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결국 휴직을 하고 병원에 한 달간 입원해 치료와 안정을 취하면서 무사히 출산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출산 후 충분히 몸조리를 하지 못한 채 다시 교단에 서야만 했습니다.

출산 후 얼마 지나지 않은 1970년에는 신우신염을 앓게 되었습니다. 큰 병원을 전전하며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었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왼쪽 옆구리가 칼로 도려내는 듯 심하게 아팠습니다. 고통스러운 날들이 이어지면서 ‘이렇게 고통 속에 살다 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마침 기장신앙촌에 모임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참석했는데, 그날 하나님께서 참석한 사람들에게 안수를 해 주셨습니다. 저도 차례가 되어 떨리는 목소리로 “하나님, 신장이 너무 아파서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너무 힘이 듭니다”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래?” 하시더니 아픈 부위를 손등으로 가볍게 툭 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안수를 받고 나니 걷기조차 힘들 정도로 심했던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졌습니다. 그때 얼마나 감격스럽고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이후 통증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고 신장 약도 더 이상 찾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일을 겪은 뒤로는 안수나 안찰 소식이 들리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 은혜를 받곤 했습니다.

신우신염 앓을 때 약도 소용없었으나
하나님의 손길에 통증이 씻은 듯 사라져

뇌종양 진단받아 수술 날짜까지 잡았지만
수술 없이 건강 되찾아 하나님께 감사드려

생명물로 입관한 아버지 빙그레 미소 짓던
마지막 모습 잊지 못해

그런데 또 한 번의 큰 고비가 찾아왔습니다. 몸에 이상 증세가 있어 병원을 찾았는데, 처음 찾은 병원에서 뇌종양이 의심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곧바로 전남대병원으로 향했고, 정밀 검사 결과 뇌종양 진단을 받아 수술 날짜까지 잡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부모님께서는 큰 충격을 받으셔서 한동안 눈물로 밤을 지새우셨습니다. 저 역시 주변에서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보았던 터라 두려움이 더욱 컸습니다.

그 후 수술 날짜를 기다리며 매일 약을 복용하고 기도하며 지냈습니다. 수술 직전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MRI를 다시 찍었는데, 검사를 마친 의사 선생님께서 “약이 아주 잘 들었으니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도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수술 날짜까지 잡았던 상황에서 더 이상 수술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를 듣자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이후 별다른 치료 없이 지내다가 경과를 확인하러 몇 년 만에 다시 전남대병원을 찾았습니다. CT 촬영을 하고 의사 선생님께서 사진을 확인하시더니 아주 깨끗하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병에 대한 걱정 없이 다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습니다.

1955년 광주공원 집회 때 내린 이슬성신

그 일을 겪고 몇 년이 지나, 1995년에는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평소 마음이 고우셨던 아버지께서는 제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이해해 주시고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집 안에 있는 생명물을 보시고는 “벽장에 놔둬도 여름철에 변하지 않으니 참 신기하다”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아버지의 마지막 길에는 주변 제단 관장님들이 찾아오셔서 생명물로 씻겨드린 후 입관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입관을 마치고 수의를 입혀 드린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본 순간 모두가 깜짝 놀랐습니다. 아버지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빙그레 미소를 짓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 자리에 함께했던 사람들도 “교장 선생님께서 웃고 가신다”며 입을 모았습니다. 비록 전도관에 다니지 않으셨지만, 마지막 순간 환하게 핀 아버지의 얼굴은 지금도 제 가슴속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2000년에는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아픔도 겪었습니다. 어머니는 목포제단 회장 직분을 맡으시며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셨는데, 기성교회에 다니는 동생과 장례 절차를 두고 의견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때 제 아들이 나서서 외할머니가 평생 전도관에서 신앙생활을 해오셨다는 점을 차분히 설명한 덕분에 천부교식 장례로 모실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머니의 몸이 굳어 팔을 들어 올리면 몸통까지 따라 올라올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생명물로 정성껏 씻겨드리자마자 온몸이 노글노글할 정도로 부드럽게 풀렸습니다. 평생 신앙생활을 해오신 어머니를 마지막까지 생명물로 모실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저는 시어머니께도 제단에 한 번 나와 보시라고 권했습니다. 새벽마다 법문을 외우시던 분이었지만, 제 권유를 받아들이시고 계림제단에 나오시게 되었습니다. 제단에 다니신 뒤로는 “그동안 네가 전도관에 다니는 것이 마땅치 않았는데, 내가 직접 다녀보니 여기가 이렇게 좋은 곳인 줄 몰랐다”며 고마워하셨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어머니께서 운명하셨습니다. 저는 권사님들과 함께 생명물로 닦아드린 후 입관을 해 드렸는데, 예배를 마친 뒤 마주한 시어머니의 얼굴은 생전보다 훨씬 뽀얗게 피어 잠드신 듯 평온해 보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생명물의 권능이 참으로 크다는 것을 깊이 느꼈습니다.

지금 제 곁에는 기장신앙촌에서 소비조합 활동을 하고 있는 큰딸과 가까이에서 저를 돌봐주며 광주제단에 열심히 다니고 있는 아들이 있습니다. 신앙촌에 가면 딸이 반겨주어 즐겁고, 집에서는 같은 길을 가는 아들이 있어 하루하루가 행복합니다. 이제 제게 남은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막내딸도 하나님을 깨닫고 이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가족 모두가 하나님 안에서 함께할 수 있기를 바라며, 지금처럼 하루하루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지나온 시간 동안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관련 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