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를 둘러싼 포화…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재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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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7일(현지시각) BBC 등 외신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를 겨냥해 대대적인 로켓포 공격을 감행했다. 이스라엘에 침투한 하마스 대원들은 민간인을 살해하고, 200여 명을 인질을 끌고 갔다. 이에 이스라엘은 즉각 보복 폭격을 시작했고 계속해서 무력충돌이 이어지며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당국 발표를 종합하면 이번 무력 충돌로 인한 양측 사망자 수는 10월 20일 기준 5,527명이다.

이들은 왜 충돌하는가?

이번 무력 충돌의 원인은 성경 속 성지를 두고 벌여온 갈등에 있었다. 현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영토는 성경에 나오는 지역으로, 기독교·유대교·이슬람교 등 뿌리가 같은 3대 종교 공동의 성지이다. 이스라엘과 아랍·이슬람권 양쪽은 역사적 사실과 기록을 근거로 서로 자신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팔레스타인 지역을 통치하던 영국은 1917년 ‘밸푸어선언’으로 유대인들에게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 국가의 설립을 약속했고,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설립하려 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주민들 역시 1915년 ‘맥마흔선언’을 통해 영국으로부터 아랍민족 국가 건설을 약속받았던 것이다. 팔레스타인 지역을 두고 양 측의 갈등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분쟁의 역사

결국 영국의 통치가 끝나고 1948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에 건국을 선포하자, 아랍 연합국이었던 요르단과 시리아, 이집트 등은 다음날 곧바로 이스라엘을 침공했으나 치열한 전투 끝에 패배했다. 이것을 1차 중동 전쟁이라 한다. 이후 4차 중동전쟁까지 거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미국의 중재로 1993년 오슬로 협정을 맺게 된다. 이 협정으로 팔레스타인은 서안, 가자지구 내 자치정부를 수립하게 되었지만 이후에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끊임없이 마찰을 빚어왔다. 또한 팔레스타인 내에서도 내부 갈등으로 가자지구는 무장정파 하마스가, 서안지구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집권당인 파타가 통치하게 되었다.

10월 19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 폭격을 가한 모습. 출처=CNN

하마스가 기습 공격을 감행한 이유

전문가들은 하마스의 이번 공격을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수십 년간 가자지구는 안보 위협을 이유로 이스라엘에 의해 봉쇄되어 왔고, 물과, 전기, 식량, 의약품까지 이스라엘의 허가 없이는 반입할 수 없었다. 또한 모로코, 바레인, 수단 등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국가들이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맺으며 설 곳이 좁아졌고, 결정적으로 이슬람의 종주국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최근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논의하며 가까워지자 하마스가 위기감을 느끼고 공격을 감행한 것으로 보인다.

가자지구에서는 여전히 교전이 진행 중이다. 10월 17일(현지시각) 가자지구 북쪽의 알아흘리 아랍 병원에서 폭발이 발생했다. BBC와 알자지라 방송은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최소 500명이 숨졌다고 보도했으나, 이스라엘 측은 병원 폭발은 하마스 측의 로켓 오폭에 따른 것이라고 반박하며 공방전을 이어오고 있다. 19일(현지시각)에는 이스라엘이 민간인 500명 정도가 대피해 있던 가자지구의 한 교회 건물을 공습했다. 현재 사망자수는 200명으로 추산되지만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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