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9월 23일 – “신앙촌은 세계에 자랑할 만한 보배”
한국 최초의 여기자, 최은희 여사 인터뷰신앙신보는 1963년 9월 23일자 1면에 덕소신앙촌 건설기념으로 한국 최초의 여기자로 활동했던 최은희 여사(1904~1984)의 인터뷰 기사를 다음과 같이 실었다.
신앙촌에서 왔다 하니 몹시 쇠약함에도 불구하고, 기자를 반가이 맞아들인 최 여사는 형형한 눈을 들어 신앙촌 칭찬을 하는 것이었다.
“신앙촌엘 가 보니 듣던 말과는 너무도 엄청나게 다르더군요. 도무지 상상외였어요. 세계 어느 나라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겠어요. 그 꼭 짜인 규모며, 아름다운 신도들의 근로정신이며…….”
그와 같은 놀라운 곳, 신기한 곳, 아름다운 곳, 자랑할 만한 곳이 도대체 어떻게 널리 전파되지 않았으며 온 세계에 소개되지 않았느냐고 자못 안타까운 표정이다. 여사의 칭송과 동경을 듣는 동안 탐방자의 심경은 미묘해졌다. ‘아름답게 알려지기는커녕 천하에 온갖 더러운 이름으로 선전되고, 미움의 대상이 되며 불의의 발 아래 짓밟힘이 되었던 신앙촌이 아니었던가? 그렇게까지 악선전된 책임은 어디에 있었던가?’ 하는 것이 언론인 최 여사를 대하는 기자의 솔직한 심경이었다.
“어떻습니까? 선생님, 붓의 힘은 참으로 큰 것이어서 붓대 하나 잘 놀리고 못 놀림에 따라서 나라의 흥망이 달렸다고 하여 언필칭(言必稱) 언론의 공정이니 정의니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언론은 어떠했습니까? 몇 년 전만 하여도 전도관과 신앙촌에 대하여 한국의 전 신문 지상에 온갖 더럽고 누추하고 타기(唾棄)할 만한 기사가 대문짝만 하게 나지 않은 날이 없었지요. 그러나 오늘날 이루어지는 진실된 결과를 보니 그것이 모두가 허위요, 중상이요, 조작임이 천하에 밝혀지지 않았습니까?”
“…….”
탐방자의 열띤 공격에 최 여사는 묵묵히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그건 그렇고… 신앙촌은 참말 꿈나라에 보는 듯 아름답더군요. 내가 그동안 여러 사람을 대해 보고 여러 곳을 보아 왔지만 신앙촌과 같은 곳은 못 보았어요. 진흙 속에 보배를 발견했다고나 할까, 나라에서 외국 사람들에게 한국에는 신앙촌이란 곳이 있다고 널리 알렸으면 해요. 신앙촌은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나라의 보배예요.”
최 여사는 말머리를 돌려 우리나라에서 외국에 내놓을 것은 솔직히 말해서 신앙촌밖에 없다고 몇 번이나 힘주어 말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