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할 수 있는 힘이 없으면 모를까 아직 힘이 남아돌아요’

남정용(86세) 권사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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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한낮의 더위가 여전한 8월의 마지막 주, 무더위 속에서도 노익장을 과시하는 ‘어르신’이 있다고 하여 찾아간 곳은 신앙촌 판매부. 물어물어 오늘의 주인공을 찾으니, 예상과는 달리 조그만 체구의 남정용 권사(86, 기장신앙촌)였다.

인터뷰 요청에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하며, 한 짐을 들어 자전거에 싣고는 사라지더니 곧 돌아오는 남정용 권사, ‘미국에 보내는 택배가 있어 잠시 배달하고 왔다’고 한다.

남정용 권사가 판매부에서 하는 일은 주로 ‘배달’이다. 매장을 방문하는 고객들이 주문한 제품들을 차량까지 배달하고, 택배 발송도 도와준다. 명절을 앞두고 택배가 많이 늘었다는 남 권사에게 힘들지 않냐고 물었더니, “힘든 걸 모르겠어. 힘들다고 생각하면 힘들 거고, 힘들지 않다고 생각하면 힘들지 않겠지”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1922년 강원도 인제에서 태어나, 서울로 와서 기성교회를 다니다가 목사들이 미제 구호품으로 자기들의 잇속만 챙기며 비리를 저지르는 것을 보고 교회에 발길을 끊었다가, 친구의 전도로 이만제단에 나가게 되었다는 남 권사는 처음 하나님으로부터 들었던 설교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기성교회 교인들은 죄를 한 뭉치 지고 갔다가 나올 때는 한 뭉치 더 얻어 두 뭉치를 지고 나온다’는 것이었는데, 직접 들여다 본 기성교회의 현실과 너무나 부합하였다고 한다.

이후 1958년 소사신앙촌에 입주한 남정용 권사는 줄곧 소비조합 활동을 했다고 한다. 자전거에 신앙촌 캐러멜과 과자 등을 싣고 거리를 나가면 상점 주인들이 신앙촌 물건만 찾다 보니 경쟁하던 장사들이 처음엔 불평을 하다가 나중엔 아예 업종을 바꾸더라는 에피소드도 들려 주었다.

덕소신앙촌을 거쳐 기장신앙촌에 들어온 남 권사는, 90년대 중반부터 판매부에서 일하다가 지난 2005년 퇴직을 했다. 퇴직 후에도 계속 일을 하는 이유를 물으니 “일할 힘이 없으면 모를까 아직 힘이 남아도는데 집에서 놀면 뭐 하겠어? 작은 일이라도 뭔가 해야지”라고 한다.

같이 일하는 주변의 동료들도 한결같이 남 권사의 노익장에 감탄을 금치 못했는데, 그 건강의 비결을 물었더니 “깨끗한 자연 속에서 좋은 공기 마시고, 축복해 주신 생명물 마시는데 그것보다 더 좋은 비결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다음 배달이 있다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팔순의 나이가 무색한 신앙촌의 9988, 남정용 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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