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11월 30일 – “한국에 세워진 이상향”
일본 아사히 신문의 오바다 기자의 신앙촌 탐방기신앙신보 1964년 11월 30일자 1면에는 신앙촌을 방문하고 크게 감탄한 일본의 아사히신문 오바다(小畑) 기자가 본지에 보내 온 탐방기가 실렸다.
“일본에서도 3, 40년 전에 작가인 무샤고지(武者 小者實篤) 씨가 일본 구주지방의 산중에 이상향을 세우려고 하였고, 또한 패전 직후에는 여러 지방에서 종교 단체와 사회 봉사단들이 곤경에 빠진 대중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개간촌을 건설한 일이 있었습니다. 나는 이 나라의 신앙촌도 일본에서 일어났던 것과 같은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었고, 따라서 나의 직업적 의식에서 생기는 욕심으로 ‘밀레의 농장’과 같은 예술적인 장면을 사진으로 찍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으로 방문하였는데, 막상 가 보니 참으로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규모는 좁다고 하지만 모던한 주택, 각종의 공장, 방송실, 학교와 발전소까지 겸비한 시설을 보게 되어, “이것을 어떻게 하여 10여 년간이라는 짧은 기일에 건설하였을까?” 하는 질문을 하였을 정도였습니다.
더욱이 놀란 것은 안내원들이 설명하여 주는 말 가운데 자립 경제라는 말이었습니다. 제1신앙촌에 사는 사람들의 행복스러운 얼굴, 명랑한 어린이들, 정직한 모습 이러한 인상은 이 나라에 착임하면서부터 서울 거리의 구걸하는 불행한 어린이들과 부끄러우리만큼 심각한 이야기만 들었던 것과는 대조적이었기 때문에 한국에도 이러한 곳이 있을까 하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시온의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 중첩된 장애와 고난과 싸워 이긴 인내의 결과가 여기저기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감동에 접하고 보니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되며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을 생각하게 됩니다. 나는 그날 밤, 감격하면서 기사를 썼습니다. 이 기사는 9월 20일자 아사히(朝日)신문 지상에 게재되어 전 일본에 보도되었던 것입니다.”
1964년 9월 20일 자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서울과 인천 중간쯤에 “신앙촌”이라 불리는 뉴 타운이 있다. 면적은 약 150만 평방미터, 인구는 약 2만 명이다. 주민은 모두 전도관 신자만으로, 초·중·고교는 물론 상점, 공장, 발전소, 게다가 신문사와 유선 방송국까지 갖추고 있다. 나라의 재정은 아주 심각한데도 불구하고 이쪽에서는 건전한 자립 경제가 실현되고 있었다. 정권 불안 시대와 생활고 속에서 태어난 신앙촌, 지금 한국에서는 가장 안락한 곳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