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10월 16일 – 온 마을이 전도관을 핍박해
기성교회 전도사는 전향해 오고전남 해남군 현산면 황산리 소재 현산 전도관에서 시무하던 장 전도사가 ‘전도관을 3년간이나 없애버리려고 별러왔던’ 마을의 최부자(父子)에게 습격을 받았다. 제단 건물을 부수고 전도사를 돌로 쳐 넘어뜨린 후 흉부를 재차 돌로 쳐 절명케 한 것이다. 이에 “동 제단 성도들은 호흡이 끊어진 장 전도사를 부둥켜안고 눈물로 합심 기도를 했던 바 마침내 3시간 30분만에 소생했으며 또한 9일에는 단에 설 수 있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인천전도관에서는 8일 주일 밤에 “작년 이맘때 ‘배반과 훼방의 역사’로 혼란했던 동제단의 정상 복구를 기념하기 위한 기념예배를 보았다”고 전하고 있다. 신앙촌의 다수의 교인이 참석한 가운데 다채로운 프로의 음악의 밤을 가졌던 것이다. 한편 1면 톱 기사도 “깨여 빛에 거하라”는 제하에 ‘배신과 훼방’은 심판을 면치 못할 ‘마의 역사’이니 성도는 등불을 켜고 푯대를 세워 일로 매진하자는 내용의 기사가 실려있어 당시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장로교 전도사가 전도관으로 전향해 왔다고 사진과 함께 그간의 일이 상세 보도되었다. 장로교 총회신학교 출신으로 제일육군병원에서 3년간 군목으로 활동하였고, 현재 서대문구의 00교회 전도사로 시무중인 황복원씨가 심령의 갈증을 풀기 위해 삼각산 등지로 기도를 하러 다녔으나 거기서도 만족을 얻지 못하고 있다가 우연히 속초 친척집에 갔다가 속초전도관 전도사를 만나 2,3차에 걸친 성경토론 끝에 참 진리를 깨닫고 전도관으로 전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서울중앙전도관 주최 서울 각 지관 대항 탁구대회가 9일 한글날을 맞아 서울경성전기공업고등학교 강당에서 성황리에 개최되었고, 신앙촌 내 시온국민학교는 3일 개천절을 맞아 개교 축하 추계 체육대회를 1500여 학생들과 학부형과 내외빈을 모신 가운데 ‘아침 9시 부터 해질녘까지’ 다채로운 순서로 진행하였다. 또 5일에는 체신부로부터 별정 우체국 설치령에 따라 신앙촌 내 우체국이 허가되어 10일부터 사무를 보기 시작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2면에는 2회를 맞는 지방제단 순회탐방이란 박스 기사에서 부산 영주동에 있던 부산전도관을 사진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영주동 201번지 해발 100여 미터 산 언덕에 1313평 대지에 565평 2층 아연판 연와 건물로 1957년 7월 기공하여 동년 12월에 준공을 보았다고 한다.
설교란에는 “믿음은 선물” “인간 개조는 성신 받아야”란 큰 제목이 눈에 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