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기쁘고 즐거운 것은 하나님의 신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발행일 발행호수 2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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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전도관에서 예배를 마친 후 나오시는 모습(1956년)

하나님은 기쁨의 신이다.
마음속에서 기쁨이 솟아나고 즐거움이 솟아나면
그 속에 천국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은혜를 받아 나의 기쁨 되신 주께서 충만히 거하면
흘러넘치는 기쁨이 얼굴에 나타난다.
항상 기쁘고 즐거운 것은
하나님의 신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 제7부 1장 35절, 38절

야외에서 교인들과 함께하신 모습(1955년경)

수원 시내를 돌며 집회를 알리는 전도 차량 (1970년)

은혜의 기쁨 신앙체험기 ①

◇ “매일매일 기쁘게 살아요”

최재복 권사/소사신앙촌

당시 저는 곤궁한 형편에 하루도 마음 편한 날 없이 살고 있었습니다. 찬 바람이 들이치는 방에 누우면 이북에 두고 온 좋은 집과 전쟁에서 잃어버린 것들이 계속 떠올라 너무 괴로웠습니다.

1956년 1월경 저희 가게로 찾아온 명원해 (현재 기장신앙촌) 집사님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명 집사님이 “저는 가난하지만 매일 매일 기쁘게 살아요”라고 이야기하는데, 미소를 머금은 얼굴이 정말로 기쁘게 보였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그렇게 기쁘냐고 물었더니, 박태선 장로님의 부흥집회에서 은혜를 받았다면서, 은혜를 받으면 그렇게 기쁘고 즐겁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전도관에서 예배를 드리면 명 집사님처럼 마음이 기뻐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예배에 참석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전도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어디선가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며 제 몸이 후끈후끈해 왔습니다. 그때가 한겨울인 데다 집은 외풍이 세서 무척 추웠는데 어디서 그런 훈훈한 기운이 오는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 후 일요일에 명 집사님과 같이 인천 전도관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던 저는 새벽부터 일어나 몸단장을 깨끗이 하고 전도관에 갔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말쑥한 양복 차림으로 키가 크셨고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환하게 보였습니다. 저는 박 장로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찬송을 부르고 설교 말씀에 귀 기울이면서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인천전도관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 커다란 기쁨이 가슴속에서 터져 나오는 것처럼 느껴져

채은주 권사/인천교회

1955년 9월 인천 동산학교 집회장에서 박 장로님께서는 “마음문 여세요. 마음문을 열어야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시면서 찬송을 힘차게 인도하셨습니다.


찬송을 하던 어느 순간 아주 향긋하고 좋은 냄새가 머리 위에서 들이붓는 것처럼 진하게 맡아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마음이 어떻게나 기쁜지 마치 커다란 기쁨이 가슴속에서 터져 나오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기쁘고 좋았던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몸이 가벼워져서 둥둥 떠 있는 느낌이었고, 그대로 훨훨 날아서 구름 위에라도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때 그 기쁨과 즐거움은 평생 잊을 수가 없습니다.

◇ 바쁘게 생활하는 가운데에 마음은 항상 기쁘고 감사해

권옥순 퇴임 교역자

1957년, 옆집에 사는 아주머니께서 집안일을 하면서 항상 찬송을 흥얼거리셨습니다.

어느 날 아주머니에게 “어쩌면 찬송을 끊이지 않고 부르세요”하고 여쭈니 아주머니께서는 전도관에 다니는데 그곳에 가면 기쁨이 넘쳐 찬송이 절로 나온다 하셨습니다. 그 모습이 보기 좋아서 일요일에 아주머니와 전도관에 가게 되었고, 나온 지 일주일 뒤부터 반사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 후에는 특전대에도 참여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안동제단에서 집회를 하실 때면 그 소식을 알리기 위해 북을 치고 찬송을 하면서 거리를 행진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바쁘게 생활하는 가운데에 마음은 항상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 하늘을 나는 것 같이 기쁨이 넘치는 시간이었죠

김경숙 퇴임 교역자

저는 1955년 당시 육군본부 정훈감실에 근무하는 현역 소위였는데, 박태선 장로님의 육군본부 집회를 알리는 포스터를 직접 곳곳에 붙였었습니다.

보통 집회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인파가 몰렸습니다. 집회에서 비를 맞아 다 젖었는데도 박 장로님께 안수를 받고 나니 몸이 불덩이 같이 뜨거웠던 기억과 향취가 진동을 하고, 입안이 시원해지던 기억이 새롭게 떠오릅니다. 그 후로 집회가 열린 열흘 동안 저는 근무 시간을 제외하고 계속 집회장에 남아 철야를 했습니다. 용건이 있을 때만 집에 잠시 다녀올 뿐이었고 집회장에서 사람들과 함께 찬송을 부르며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를 정도로 기쁘기만 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단에 서시지 않을 때도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드리거나 받은 은혜에 대해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천막을 치고 가마니를 깔아 놓은 드넓은 집회장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 비좁게 앉아 있어도 조금도 불편하지 않았고 며칠 식사를 걸렀지만 배고픈 줄을 몰랐습니다.

집회 중 어느 날, 가지각색 병자들이 일어나 뛰는 모습은 일일이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고통에서 놓여난 사람들은 기쁨과 감격을 주체하지 못했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저도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그토록 놀라운 은혜 속에서 집회 기간은 쏜살같이 지나갔습니다.

일생 동안 한 번도 맛보지 못할 기쁨이 그곳에 차고 넘치는 것 같았습니다. 하늘을 나는 것 같이 기쁨이 넘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때에 군인들도 신앙에 열심인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은혜를 한없이 부어주시니 꼬박 밤을 새우며 철야를 했어도 피곤함을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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