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말랐던 사람들의 심령이 새롭게 되고 손뼉을 치며 하나님을 찬송” 은혜의 기쁨 신앙체험기②

발행일 발행호수 2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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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제단 낙성집회 때 설교하시는 모습. (촬영연도: 1957년)

김배숙 승사/기장신앙촌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한다는 것을 알게 돼

저는 세상을 떠난 친구 생각에 잠겨 잠을 못 이뤘습니다. 1951년 1·4 후퇴 때 피난을 와서 알게 된 친구였는데, 이십 대 젊은 나이에 급체로 며칠 앓더니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저는 이렇게 덧없고 허무한 것이 인생인가 하며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온종일 고단하게 일하고 잠자리에 누워도 쉽게 잠들지 못하고 뒤척였습니다. 밖에 나와 달을 올려다보며 ‘이 세상에 신이 계신가요? 신이 계신다면 저를 이끌어 주세요.’ 하고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신을 찾아 의지하고 싶어서 불경을 사다 읽고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마음이 기뻐질까 하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거기서는 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다음에는 성경을 탐독하고 집과 가까운 장로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런데 막상 교회에 나가 보니 교인들이 신에 대한 이야기보다 친목회에 관심이 많아 보였습니다. 일요일이면 장로교회에 나가 하나님께 위로와 평안을 구했지만, 신의 존재는 막연하고 멀기만 했습니다.

저는 친척을 따라 서울 중앙전도관에 갔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많은 사람이 줄을 서서 한 사람씩 안찰을 받았습니다. 제 차례가 됐을 때 박 장로님께서는 제가 고집이 센 것을 말씀하시며 배에 손을 살짝 얹으셨는데 얼마나 아픈지 고통을 참기 어려웠습니다. 아픔이 차차 물러가고 배가 시원해지자 손을 떼시고 “마음속 기쁨이 귀한 은혜지요.” 하셨습니다. 안찰 받고 밖으로 나왔을 때 가슴이 어찌나 시원한지 ‘우리나라 말에 속 시원하다고 하는데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심장에서 기쁨이 샘솟는 느낌을 무어라 형용할 수 없었습니다.
마음속 기쁨이 귀한 은혜라 하셨던 박 장로님 말씀이 떠올라 “바로 이거구나!” 하며 무릎을 쳤습니다. 다음 날부터 집과 가까운 종로 을구 전도관으로 새벽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 예배 시간에는 종종 향취 은혜가 내려 형용할 수 없이 좋은 향기가 맡아졌고, 아침 햇살을 받으며 집에 돌아올 때면 몸과 마음이 가벼웠습니다. 온종일 일하는 동안 입에서 찬송이 끊이지 않았고 가슴에서 기쁨이 샘솟아 자꾸 웃게 되었습니다. 그때 많이 불렀던 찬송가대로 하나님 함께하시면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토록 바라던 신의 존재가 곁에서 함께하는 듯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최재효 승사/기장신앙촌

◇“벙어리였던 아가씨가 말문이 트여 사람들도 손뼉을 치며 기뻐하였습니다.”

저는 1955년 영등포 모래사장 집회 첫날부터 참석했습니다. 어느 날 예배 시간에 파마머리의 아가씨
가 단상으로 올라갔습니다. 주위 사람들 말로는 원래 벙어리였던 아가씨가 이 집회에서 말문이 트였다고 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그 아가씨에게 찬송가를 펴 주시며 불러 보라고 하셨습니다. 아가씨는 “저 좋은 낙원 이르니~” 하는 찬송을 부르는 것 같은데, 그 발음이 마치 외국 사람들이 한국말을 하는 것처럼 혀가 막 꼬부라지는 소리였습니다. 이전에 찬송가를 한 번도 블러 본 적이 없었을 그 아가씨는 곡조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원래 음과 하나도 맞지 않게 불렀습니다. 그래도 그 아가씨는 난생처음 말하게 된 기쁨으로 신나게 찬송을 불렀으며, 그 자리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도 손뼉을 치며 기뻐하였습니다.

윤치영/제1대 내무부장관, UN파견대사, 국회부의장

◇“노여운 마음과 증오심이 없어지고 그들에게 사랑과 동정이 간다는 사실입니다.”

제 아내는 33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두고 앓아 온 약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루에도 5, 6차례 정도의 약을 먹어야 살 수 있던 사람이 1955년 박태선 장로님의 안찰을 받고 나서는 완전히 건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안수를 받은 후에 특히 느끼게 되는 것은, 모든 원수들에게 지금까지 느껴오던 노여운 마음과 증오심이 없어지고, 그들에게 사랑과 동정이 간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슬픔과 번민이 씻은 듯이 사라져 버리는 것 느껴

김정자 권사/소사신앙촌

한창 예민한 사춘기였던 저는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할 때면 깊은 그리움과 슬픔에 잠기곤 했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허무감이 제 마음을 사로잡아 ̒어차피 죽을 인생인데 왜 세상에 태어나서 고통과 괴로움을 겪는 것일까?’ 하는 번민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제가 1955년 박 장로님 집회에서 은혜를 받은 뒤로는 슬픔과 번민이 씻은 듯이 사라져 버리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두웠던 제 마음에 따뜻한 햇살이 비치며 잔잔한 기쁨과 평안함의 물결이 흐르는 것 같았고, 이렇게 귀한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마음속 깊이 감사드렸습니다.


영등포 집회 때 벙어리였던 아가씨가 말문이 열려 찬송하는 모습. (1955. 4. 27.~5. 6.)

이슬 같은 은혜는 바로 하나님의 신이다.

그 은혜를 체험할 때

메말랐던 사람들의 심령이 새롭게 되고

손뼉을 치며 하나님을 찬송하게 된다.

『하나님 말씀』 제2부 4장 34절, 3장 11절


광복절에 소사신앙촌을 행진하시는 모습

이날 오전 9시 모든 공장과 사업을 중단하고 손에 태극기를 들고서 신앙촌 문화부 앞에 모였다. 그리고 국기를 흔들며 우렁차게 찬송을 부르면서 노구산 오만제단 기지를 중심으로 신앙촌을 일주하였다. <1958. 8. 25. 신앙신보/ 8. 15. 광복 경축 예배기사>

이정순/기장신앙촌

‘나하고 끝까지 가는 사람이 복이 있다.’

사진 왼쪽에서 세 번째 머리핀을 꽂은 여학생이 저예요. 초등학생부터 어른들까지 모두 하나님과 함께 소사신앙촌을 행진했는데 당시 저는 13살이었어요. 하나님께서 저희와 걸으시며 ‘나하고 끝까지 가는 사람이 복이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수십 년 세월이 흘렀어도 지금까지 제 신앙의 길잡이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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