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규제 없는 미국사회 큰일 난다
지난 주 미국 버지니아 공대에서 한 정신병자가 벌인 광란의 ‘캠퍼스 대학살’로 전 세계는 깊은 충격을 받았다. 특히 범인이 한국인임이 밝혀지자 재미 교포는 물론 한국의 조야(朝野)가 이번 사건으로 불이익을 당하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그러나 이러한 걱정은 곧 기우(杞憂)임이 밝혀졌다. 이번 사건의 진짜 범인은 ‘한국인’도, 어떤 ‘인종’도 아닌 바로 미국의 총기 문화임을 미국인들이 먼저 인식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총기 소지는 ‘헌법상의 권리’로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 총기 소지를 금지하는 것은 마치 생명의 위협 앞에서 무장해제를 당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국가가 책임질 수 없는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선 개인의 무장을 허용해야 한다는 미국의 총기문화는 무려 200여년 동안 유지돼 온 것으로 미국의 역사와 기원을 같이하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총기 문화로 현재 미국 전국 가구의 40%가 2억 5000만 정의 총기를 소지하고 있으며 무려 3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매년 총상으로 목숨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교사와 학생 15명이 사망한 1999년 콜럼바인 고교 총기사건을 비롯하여 끔찍한 총기 사건이 있을 때마다 제기됐던 총기규제 여론은 번번이 정치적 로비로 좌절돼 왔다. 이 로비의 중심에는 항상 전국총기협회(NRA)라는 강력한 단체가 있었다. 총기 소유권을 옹호하는 미국의 총기 로비스트들은 총기 규제 강화 움직임에 대해 총기소유를 불법화하면 사람들은 자신을 방어할 수단만 잃게 된다는 명분으로 반대 운동을 펼쳤다.
그러나 강력한 총기 규제로 총기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이룬 예는 많다. 영국의 경우 지난 1996년 ‘토마스 해밀턴 학살사건’ 이후 엄격한 총기 규제를 도입하여 올림픽 사격 선수조차도 외국에서 훈련을 받을 정도이며 11년 전 자동소총을 금지시키고 총기 사고를 대폭 줄인 호주의 예를 들어 존 하워드 호주 총리는 “미국이 더 엄격한 총기 규제를 시행했었다면 이번 같은 사건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었다”며 “미국의 총기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일침을 가하기까지 했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버지니아 공대 참사로 온 미국이 슬픔에 잠겼다.”면서 “앞으로는 더욱 안전한 캠퍼스를 만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으나 그가 총기 규제를 반대하는 한 그러한 말은 공허한 것일 뿐이다. 지금 미국은 총기 소유를 헌법적으로 보장했던 서부 개척시대나 인디언이 습격하는 카우보이 사회가 아니다. 더욱 큰 문제는 미국이 건국시대를 지탱했던 명예와 책임의 청교도 정신은 간 곳이 없고 퇴폐와 섹스와 마약으로 병들어 있다는 것이다.
인종 문제, 빈부 문제, 도덕 문제 등 미국 사회의 내재적 병리 현상들이 총기와 함께 폭발한다면 모든 이질적 요소의 ‘용광로’라고 하였던 ‘미국 정신’은 산산이 부서지고 미국은 다시는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미국은 이번 사건을 총기규제의 숙원을 이룰 수 있는 값진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