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 제단(5) 언론의 보도

성조지에서 서울중앙전도관의 위용을 소개
발행일 발행호수 2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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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 1957년 장로장립식에서 머리위에 손을 얹어 축복의 기도를 하심. 마이크 든 사람은 이정길 목사

서울중앙전도관 신축 예배에서 하나님의 안수하심으로 제1회 장로 장립식이 있었음은 기보한 바 있거니와 당시 장로 장립을 받은 사람들의 면면을 계속하여 살펴보고 몇몇 언론의 보도도 보기로 한다.

장병림 교수(1918~ 전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장모의 권유로 제단에 나오게 되었는데 새벽제단도 열심히 출석했으며 안수와 안찰을 받고 향취와 각종 은혜 체험을 하였다. 제단에서는 항상 온유한 태도와 밝은 미소로 주위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고 한다.홍우(1913~2000) 전 중앙대학교 경제학 교수는 돈암동 자택에서 서울중앙전도관까지 가끔 새벽제단에 나오곤 하였다. 홍 교수는 하나님 집회에서 은혜를 받고 하나님께 안수와 안찰을 받았다. 1957년 무더기 심방 때는 여러 교인의 간청을 제치고 자기 집으로 하나님을 모시고 기뻐했다고 한다.

홍경섭 수도공고 교장은 은혜를 받아 부인과 같이 안국동 자택에서 매일 아침 새벽제단을 쌓다가 아예 서울중앙전도관 근처로 자택을 옮기고 새벽제단에 출석할 정도로 열심이었다. 서울역 앞 건너편에 위치해 있던 수도공업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할 때는 교사와 학생들을 전도하기 위해 하나님께 청원하여, 하나님을 모시고 심령부흥집회를 학교에서 개최하였다. 수도공고 부흥집회에서는 교사들과 전교생 그리고 원근 각처에서 모여온 신도들로 강당이 비좁아 운동장에까지 확성기를 장치하고 은혜를 받았다고 한다.장로 장립식에서 축사를 한 정기원 전 의원도 부인의 권유로 하나님께 나와 은혜를 받았다.

홍경섭교장은 학교에 하나님 모시고 전 교사와 전교생이 은혜 받게 해
당시 서울중앙전도관의 준공은 그 큰 규모와 그곳에 모이는 엄청난 신자들로 국내외의 주목을 받았는데, 1957년 5월 24일자 미군 극동군 기관지 「스타스 앤드 스트라이프스(Stars and Stripes)」에는 “한강 강변에 성화로 휘황하게 빛나는 석조의 성전”이란 제목으로 서울중앙전도관을 소개하였다.

동사 실크니터기자는 서울중앙전도관의 웅대한 모습과 ‘젊은 일꾼들이 등에 건축 물자를 운반하여 90척이나 되는 드높은 RCA 음악종탑의 벽돌을 쌓고 있는’ 모습, 그리고 ‘박 장로의 설교를 들으려고 모여드는 서울중앙전도관의 2만 군중들이 인산인해를 이룬 광경’ 등의 사진과 함께 다음과 같은 기사를 썼다.

“서울에서는 성령의 역사가 박태선 장로를 통하여 수많은 군중에게 불일 듯 일어나고 있다. 오직 박 장로로 말미암아 일어난 이 놀라운 부흥의 봉화는 한국의 한강 가에서 시작된 것이다. 박 장로가 창설한 서울중앙전도관은 매주일 2만 명의 대중이 회집하여 설교를 듣고 예배하고 있다. 매주일 이 전도관에는 은혜 받으러 오는 성도들이 언덕 위에 있는 교회를 향하여 약 5백 미터나 되는 기나긴 장사진을 이루는데 아마 이같이 많은 성도가 모이는 교회는 한국에서 전도관밖에 없을 것이며 전도관은 한국에서 제일 큰 교회일 것이다.박 장로가 예배시간에 강단에 나타나기 전까지 은혜를 사모하는 성도들은 힘차게 박수와 북을 치고 찬송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전도관 실내는 체육관과 같이 굳은 널마루로 되었는데, 한국 성도들은 무릎을 꿇고 예배를 드린다. 그런데 좌석은 입추의 여지도 없이 꽉 찬다. 박 장로가 힘 있게 영력이 넘쳐흐르는 부흥설교를 할 때에는 많은 청중들은 웃으며 즐거워하기도 하며 혹은 울고 애통해 하기도 한다.

「Stars & Stripes」誌  `2만명이 모이는 한국 최대의 교회`

이 서울중앙전도관의 교인 수는 2만 명이며 전국의 각 제단 총수는 4백여 개가 된다는 바 그 가운데 특히 한강변에 세운 이 큰 교회는 순전히 전도관 신도들의 헌금과 그들의 노력으로 건립된 것인데 이는 한국으로서 가장 자랑할 만한 큰 교회인 것이다.전도관 교인이며 국회의원인 윤치영씨는 ‘우리는 어떠한 경우라도 절대로 타인의 원조를 받지 아니할 것이다.’ 라고 말하였다. 윤치영씨는 이 교회의 기초골격 건축공사는 놀랍게도 단 7주간 만에 완성하였다고 부언하였다.권능의 부흥사 박 장로의 설교를 들으려는 수만의 군중은 건평 1,100평의 3층 건물에 차고 넘쳤다.”

또 『삼천리』라는 잡지의 1957년 5월호에는 정철(鄭哲)이라는 기자가 서울중앙전도관 일요일 예배를 참관하고 다음과 같은 기사를 게재하였다.
“원효로 버스 종점에서 언덕 위를 바라보니 하늘에 우뚝 솟은 서울중앙전도관은 실로 웅장하기 짝이 없다. 신교 각파의 파쟁에 초연하여 새로운 개척지를 개척하고 있다는 이 교단은 세간의 이단시(異端視)를 단연 냉소하고 오직 신앙에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마침 예배 중인 교회에 들어가 설교단 가까이 앉아 박장로의 불을 뿜는 설교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다.  풍부한 포즈와 기발한 제스처를 구사하고 있는 박 장로의 설교는 신도들의 영혼을 휘어잡고도 남는 것 같았다.

서울중앙전도관은 바닥면적이 550 평(영락 교회는 270평)이나 되는 한국 굴지의 대 교회당으로서 그 웅자를 한강변에 드러내고 있다. 3층으로 된 이 건물의 좌석 총면적은 무려 1,000평을 훨씬 넘는다고 한다.

몇해 전 보건부장관으로 재임 중이던 최창순 박사(현 적십자 병원장)가 강원도 일대를 순찰 중 짚차 사고로 대퇴부 골절상을 당했을 때의 일이다.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한 그는 박 장로의 안찰을 받고 다 나았으니 곧 일어나라는 말을 듣고도 믿지 못하여 그냥 누워 있다가 어느날 몸이 너무 가뿐하여 그대로 일어나 걸어보니 아무 이상 없는 몸이 되어 있어 주치의가 깜짝 놀라 당신은 거짓 병을 앓았다고 하더란다.그러나 안찰받기 전의 엑스레이 사진을 보니 부서진 뼈가 훤히 보였으므로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 하는 의사를 남기고 퇴원, 그로부터 최창순 박사는 완전히 박 장로의 전도관 사업에 헌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간부의 안내로 박장로가 축복한 물을 먹으려고 도열하고 있는 별관에 가 보았다. 안내자가 주는 한 컵의 물을 삼켜 보니 좀 찝질했다. 이들은 또 죽은 송장에 축복한 물을 바르면 산 사람처럼 피어나 며칠을 두어도 썩지 않는다고 하였다. 일요일 예배를 마치고 2만여 명의 신도들이 버스를 타고 헤어지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필자는  끝없이 줄지어 나가는 신도들의 숙연한 대열에서 종교 혁명의 기백이 서리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기성교회 목사들의 이단 공세가 한창 거세었던 당시에 종교적인 선입견이 없었던 두 기자는 서울중앙전도관의 준공을 보고 긍정적인 시각을 보일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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