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주시는 감람나무가 하나님이시구나!”

발행일 발행호수 2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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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청암동 이만제단에서 설교하시는 하나님 모습(1957년경)

1940년 강원도 삼척시 하정면에서 태어난 저는 스무 살에 결혼하여 3남 4녀를 두었습니다. 결혼 후 독립해 가정을 꾸려 살아간다는 것은 녹록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광산촌에서 일하는 남편은 몸이 자주 아팠고, 저는 농사를 지어 아이들을 키웠지만 살림살이는 늘 빠듯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나름 열심히 노력했지만, 매번 턱걸이 넘듯 겨우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가끔 장로교회 앞을 지날 때면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부러워 보였습니다. 찬송을 부르는 사람들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책임져야 할 가족을 생각하며 일터로 발길을 돌린 적이 여러 번이었습니다.

1970년 강원도 도계읍 상덕리에 살고 있을 때였습니다. 여름 즈음부터 남편이 집에 찾아온 전도관 교인의 권유로 도계전도관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저한테도 같이 전도관에 다니자 했지만, 농사 일이 바빠서 안된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전도관이 뭐가 그리 좋은지 동이 트기 전에 일찌감치 새벽예배를 가고, 밤에는 호롱불 밑에서 하나님 설교집을 읽다가 잠이 들곤했습니다. 그때는 전도관에 다니면 병이 낫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몸이 자주 아픈 남편이 하나님을 의지하려나 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남편은 종종 간장이나 비누 등을 집에 가져다 놓았는데, 신앙촌에서 생산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저희 집이 광산촌과 가까우니 여기에 두고 판매하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저희 마을 가까이에는 흥덕 탄광이 있었는데, 탄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추수철이면 밭에서 수확한 작물을 팔러 광산촌에 자주 가곤 했습니다. 왠지 저는 신앙촌 제품 판매를 돕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작물을 팔러 광산촌에 갈 때 신앙촌 제품도 함께 가져가 팔아주곤 했습니다. 신앙촌 간장은 인기가 무척 좋았고, 한번 먹어본 사람들은 신앙촌 간장만 찾으니 판매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간장을 남김없이 판 날에는 뿌듯하고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는 농사 짓는데 필요한 배추씨를 사러 5리쯤 떨어진 시장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맞은 편에서 같은 동네에 사는 강우 총각이 걸어오며 “용순이 어머니 어디 가십니까?”하고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배추씨를 사러 가는 길이라 하니, 본인은 전도관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전도관은 뭔가 특별한가 봐요. 용순이 아버지도 요새 전도관 다닌다 하던데요.”라고 하자, 총각은 “그렇습니까?”하고 웃으며 돌아갔습니다.

며칠 후, 강우 총각이 제 이야기를 했는지 전도관 교인들이 저희 집에 방문했습니다. 그들은 공손히 인사한 후 남편이 다니는 전도관에서 나왔다며, 집에 들어와 경건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를 마친 전도관 교인들은 제게 전도관을 다녀보면 어떻겠냐고 권유하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의 권유에도 교회에 가지 않은 저였지만, 전도관 교인들의 친절한 모습에 마음이 열려 알겠다고 하고 그 주 일요일부터 전도관에 나갔습니다.

저희 집에서 전도관에 가려면 산골짜기를 5리 정도 걸어가야 했습니다. 걷다 보면 느티나무가 늘어선 길이 나오는데, 그 길 끝에 있는 고등학교를 끼고 돌면 도계전도관이 보였습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예배실로 들어가 난생 처음으로 예배를 드렸는데,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손뼉 치며 찬송하는 일이 즐겁고 편안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매 주일 마다 예배를 드리러 전도관에 갔습니다. 전도관에 다니며 신앙촌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는데, 신앙촌은 은혜 받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주일 예배만 드리는 정도였던 저와 달리 열심쟁이 교인이던 남편은 기장신앙촌에 한번 다녀온 이후로 가족들에게 신앙촌에 가서 살자고 자주 말했습니다. 결국 남편이 1975년 신앙촌에 먼저 들어갔고, 저와 아이들은 뒤이어 1980년 신앙촌에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신앙촌에 들어와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주일예배 때 출석카드를 가지고 오면 현재 대예배실 2번 출입구 앞에서 출석도장을 찍어주었는데, 그날도 출구 앞은 예배시작 전에 도장을 받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 안개가 뽀얗게 끼어 사람들이 잘 안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하다. 비도 안 오는데 무슨 안개가 이렇게 자욱하지? 게다가 여기는 실내인데…’ 의아한 생각이 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안개가 꼈다고 말했지만 다들 안 보인다 했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그것이 이슬성신 은혜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말로만 듣던 은혜였습니다. 이슬성신을 처음 본 저는 그저 신기하고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예배 시간이 되었습니다. 평소처럼 예배를 드리며 찬송을 부르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마구 쏟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을 흘리고 나니 코 끝에 상큼한 향기가 맡아졌습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사과 냄새 같았지만, 그 향기는 전에 맡아본 적 없는 향긋한 냄새였습니다. 하루 종일 그 향기를 잊지 못하고 있는데, 주변에서 하는 말이 오늘 새벽예배 시간에 향취를 맡은 사람이 여럿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제야 제가 맡은 향기가 향취임을 깨달았습니다. 이슬성신을 직접 보고, 향취를 맡으니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신앙촌에는 은혜가 내린다는 사실이 피부에 닿듯 선명하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신앙촌에 들어온 후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오류와 허풍을 하나하나 깨우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수는 구원을 가로막는 존재임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때 저는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처음 전도관에 갔던 날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편안하고 기쁘게 느껴졌던 그 날, 한 가지 불편한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예수상이었습니다.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십자가에 매달려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이 거북해서 애써 시선을 두지 않으려 피했던 기억이 납니다. 예수는 구원의 방법도 알지 못한 자이고, 그자의 썩는 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음을 깨닫고 나니 그때의 피 흘리는 예수상이 꺼림칙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찬송하시며 단상을 탁탁 치시자 손에서 뽀얀 안개 같은 은혜가 나와서 사람들에게 퍼져나가
이슬 같은 은혜가 하나님 손에서 뻗어져 나오는 것을 직접 목격하며
은혜를 주시는 감람나무가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돼

그 후 1981년 첫 번째 이슬성신절날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말씀을 발표하셨습니다.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시는 감람나무가 곧 하나님이시란 말씀이셨습니다. 하나님이심을 발표하신 후 그 다음 축복일 예배시간이었습니다.

그날따라 단상에 서신 하나님 얼굴이 멀리서 보기에도 빛이 나는 듯 환했습니다. 예배가 시작되자 하나님께서 찬송을 인도하시며 단상을 탁탁 치셨는데, 그 손에서 안개가 뻗어져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두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이슬같이 뽀얀 안개가 하나님 손에서 나와 사람들에게 퍼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 ‘아! 감람나무가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이시구나’ 하는 감탄이 터져나왔습니다. 이슬 같은 은혜가 하나님 손에서 나오는 것을 직접 목격하니 진짜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흐른 것도,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향기로운 향취를 맡게 해주신 것도, 눈 안찰을 해주실 때 눈이 빠질 듯 아팠다가 나중에 시원함을 느낀 체험도 하나님께서 직접 은혜를 부어주신 것이라 생각하니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깨달은 이후로 신앙촌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시간이 더욱 귀하게 느껴졌습니다. 또한 신앙촌에서 생명물로 시신이 아름답게 피어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그 중 기억에 남는 분은 저와 친하게 지냈던 신남이 권사님이셨습니다. 권사님은 2014년 11월 28일에 돌아가셨는데, 생명물로 깨끗이 씻긴 후 입관예배를 드렸더니 정말 하얗고 예쁘게 피셨습니다. 제가 연로하신 권사님을 자주 돌봐드렸기 때문에 잘 기억하고 있는데 권사님은 평소 피부색이 하얀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입관 예배 후 옥양목처럼 뽀얘진 얼굴에 입술은 분홍빛을 띠니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감탄했습니다. 천부교를 다니지 않는 그분의 며느리가 곱게 핀 권사님 모습을 보고 ‘우리 어머니 천국에 가셨나보다’하며 기뻐할 정도였습니다.

박개동 권사/기장신앙촌

초창기 집회 때부터 하나님을 깨달은 분들에 비하면 은혜 체험이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제게 보여주신 권능이 너무도 확실하여 지금까지 이 길을 걸어왔습니다. 강원도 도계전도관에서 처음으로 배웠던 찬송가 364장은 지금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찬송입니다.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주께서 아니 버리시기로 약속한 말씀 변치 않네’ 하는 가사처럼 하나님 바라시는 뜻대로 행동하며 끝까지 따라가고 싶습니다. 은혜도 모르고, 구원도 몰랐던 제게 하늘의 권능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 고단하기만 했던 인생에 영원한 구원의 소망을 갖게 해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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