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정복

발행일 발행호수 2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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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멕시코 대통령이 교황 프란치스코에게 500년 전의 침략을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십자가와 칼을 앞세워 원주민의 인권을 유린했다며 공개적으로 사과를 요구했지만 교황은 사과하지 않고 있다. 500년 전 멕시코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에르난도 코르테스는 신대륙 아메리카를 찾아 나선 탐험가였다. 그가 몰고 간 선박에는 십자가와 함께 강철검, 화승총 등 그 시대 첨단 무기가 실려 있었다. 1519년 멕시코 연안에 닿았을 때부터 직접 기록한 정복기를 보면 스스로 이교도인 원주민을 굴복시키고 신성한 가톨릭 신앙을 전파하는 십자군임을 천명하고 있다.

정복 사업에 성스러운 사명을 부여한 것은 교황 알렉산더 6세였다. 교황은 아메리카 신대륙을 정복자들에게 ‘기증’해 주면서 원주민을 가톨릭 신도로 만들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원주민들로서는 대대로 살아온 땅에 낯선 이방인이 들어와 주인 행세를 하고 개종까지 강요하는 끔찍한 재앙이었다.

정복자들은 먼저 원주민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광장에 모아 놓고 무언가를 읽어 준 것이다. 스페인어로 ‘레케리미엔토(Requerimiento)’라는 통고문이었다.

‘가톨릭교회를 세상의 주인으로 모셔라 … 그렇지 않으면 … 전쟁을 일으킬 것이며 …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악을 사용해서 해를 입힐 것이다 … 결과는 죽음과 파괴뿐이다.(justo y reconoscais a la Iglesia por Senora y Superiora del universo mundo … Si no lo hicieres … y os hare guerra … hare todos los males y danos que pudiere como … muertes y danos que de ellos)’ 섬뜩한 통고문을 원주민들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곧바로 이해하게 되었다. 눈앞의 현실이 된 것이다.

정복자들은 가공할 무기와 살인 기술로 한 번의 전투에서 수만 명의 원주민을 살해했다. 또 적은 병력으로 많은 원주민을 죽일 수 있었던 것은 성인 산티아고의 도우심이라고 생각했다. 코르테스는 살육의 현장에 산티아고가 나타나 백마를 타고 진두지휘하는 환상을 봤다고 기록했고, 그래서 학살을 시작할 때 “산티아고!”를 외치는 것은 신의 가호를 받는 거룩한 신호가 되었다.

특히 정복자들은 총칼과 갑옷으로 무장한 채 비무장 상태의 원주민을 공격하고 난도질했다. 1520년 코르테스 휘하의 병사들은 원주민들이 신전의 뜰에서 춤추며 노래할 때 연주자와 가수, 구경꾼까지 모두 살해했다. 북치는 사람의 손과 머리를 자르고 산 사람의 창자를 끄집어내자 원주민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뜰은 순식간에 피비린내 나는 살육장이 되었다. 신전의 방에서 물을 나르거나 바닥을 닦던 사람까지 죽였던 것은 대결도 전투도 아니었다. 악마를 징벌하는 학살이었다.

당시 정복자들은 원주민들이 악마에게 복종한다고 생각했다. 원주민이 열등하고 야만적이며 심지어 영혼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은 가톨릭이 심어 준 세계관이었다. 멕시코를 포함한 아메리카 원주민은 성경에 등장하지 않는 존재였다. 정복자들은 그들의 하느님이 말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원주민은 악마에 의해 타락했으며 원주민의 종교는 악마의 산물이라고 여겼다.

악마의 종교를 없애기 위해 1524년 프란체스코회 수도사들이 멕시코에 파견되었다. 그때부터 세례를 받은 원주민이 50만 명에 이를 정도로 개종 사업은 효율적이었는데 그 핵심은 화형이었다. 전통 신을 숭배한 원주민 사제는 산 채로 불태워지며 처참하게 몸부림쳤고 그 모습을 본 원주민들은 극심한 패닉에 빠졌다. 화형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그때부터 하루에 수천 명씩 원주민들이 세례를 받기 위해 줄을 섰는데 드물게 세례를 거부한 경우도 있었다. 한 원주민은 ‘세례를 받으면 천국에서 가톨릭 신도와 영원히 살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듣자 그것이 두려워 세례를 거부하고 산 채로 불 태워졌다. 그에게는 화형보다 가톨릭이 더 끔찍했던 것이다.

결국 멕시코는 가톨릭의 나라가 되었다. 원주민의 신전은 철저히 파괴당했고 그 자리에 성당과 십자가, 성모상이 들어섰다. 정복자 코르테스는 원주민 학살을 도운 성인 산티아고를 기념하기 위해 멕시코시티에 성당을 세웠는데 그 비문에 이렇게 적혀 있다. 정복자 손에 함락된 것은 멕시코의 슬픈 탄생이었다고.

멕시코 국민의 90%가 가톨릭 신자인 것을 보면 슬픈 역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들의 조상은 수천 년간 믿어 온 종교를 잃었고 가장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 신대륙에 가톨릭을 전파하라는 교황의 명령이 정복자들의 칼부림에 정당한 명분을 부여한 것은 이제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그 칼끝에 떼죽음을 당한 국가의 대통령이 사과를 요구하는데도 묵묵부답인 것은 그들이 믿는 하느님에게 면죄부를 받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2,000년 동안 숱한 학살을 교사(敎唆)했어도 죗값을 치른 적 없는 살인마의 파렴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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