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통해 다시 찾은 신앙

추수감사절, 신앙촌에서의 만남 … 소사교회 유현종 씨
발행일 발행호수 2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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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사교회 유현종 씨

추수감사절, 신앙촌에서 만난 유현종 씨는 올해 8월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다시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다. 어머니 고(故) 황임숙 승사는 소사교회 소비조합 총무로 오랜 기간 활동했고, 주일학교 반사와 후원회 회장 등을 맡아 일 해왔다.

“초등학교 때까지 교회에 다니다가 중학교 이후 몸이 안 좋아져서 예배에 참석할 수 없었어요. 시간이 흐른 뒤에는 안 나가다 보니 더 못 가게 되었죠. 그래도 어머니는 깨끗하고 바르게 살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회사를 휴직하고 어머니를 곁에서 돌보며 보낸 마지막 몇 달은 그의 삶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병원에서 입퇴원을 반복하시다 일요일 예배에 가고 싶다 하시면 모시고 다녔어요. 그러다 마지막 두 달은 병원에 계속 계셔서 천부교 홈페이지의 찬송가도 들려드리고 생명물도 드리며 곁을 지켰어요. 나중엔 전혀 눈을 뜨지 못하시던 어머니께서 마지막 순간에 제 얼굴을 보시고 눈을 감으셨습니다.”

소사교회 관장님과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장례를 치룬 뒤, 그는 교회로 마음이 향했다.

“처음엔 제가 구원을 얻겠다는 생각보다 어머니를 위해 교회에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하나님께 어머니를 잘 지켜달라는 것이었죠. 그래서 관장님을 찾아가 교적부를 써달라고 말씀드렸고, 집에서 예배도 드렸어요. 그리고 그 주 일요일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는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복직까지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경전을 읽기 시작했다.

“경전을 두 번 정독했어요. 그리고 어머니가 가져오신 신앙신보를 모두 찾아 여름 내내 도서관에 가서 한 글자도 빠짐없이 읽었습니다. 특히 신앙신보에서 읽은 하나님 말씀을 경전에서 다시 찾아 읽으니, ‘어머니가 얼마나 신앙촌에 가고 싶으셨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신앙촌에 다녀오는 어머니를 마중 나가던 그는 그동안은 먼 길 다녀오시느라 힘드시겠다고만 생각해 왔다. 그러나 그날들이 어머니에게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어머니에게는 힘든 일이 아니라 손꼽아 기다려지는 날이었겠구나, 몸은 힘들어도 마음이 편하시니 기쁘게 다니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몸이 안 좋아 못 가셨을 때는 겉으로 표현은 안 하셨지만, 속으로 얼마나 가고 싶으셨을까 싶었습니다.”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지금도 그에게 큰 위안으로 남아 있다.

“황달 때문에 얼굴색이 누렇게 변하셨는데, 입관 때 생명물을 먹여 드리고 씻겨드리니 뽀얗게 피셨어요. 예전에 큰고모도 핀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슬프기도 했지만 하나님께서 어머니를 기억해 주신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8월 이후 그는 축복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 신앙촌에 빠짐없이 오고 있다. 그중에서도 마음에 깊이 남은 말씀이 있다고 했다.

“예전에 잘 들리지 않던 말씀이 이제는 마음에 와닿습니다.

특히 예수가 ‘주여’ 하고 부르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가르침이 잘못됐다는 말씀을 읽고, 자유율법을 행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진정으로 구원을 받을 자격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어머니도 제가 그런 사람이 되길 바라실거라 생각하고, 저도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마음도 생겼고요.”

교회를 나간 후 달라진 점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하나님의 분신이 내 마음과 생각, 행동 하나하나를 보고 계시는데, 어머니도 저를 지켜보고 계실 거라는 생각에 안 좋은 일이 있어도 흘려보내려고 합니다. 제 얼굴이 투명해지고 밝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매일 생명물을 마시고 교회를 다니면서 달라진 게 아닐까 싶습니다.”

어머니를 위해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한 그는 이제 한 걸음씩 신앙의 발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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