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세개탁(擧世皆濁)
대학교수들이 지난 한 해를 표현하는 사자성어로 ‘거세개탁’(擧世皆濁)을 꼽았다고 한다. 그 뜻은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다 바르지 않다, 즉 모든 계층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흐리고 혼탁하다’는 것이다.
이 사자성어는 원래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 충신 굴원(屈原)이 쓴 어부사(漁父辭)에서 유래한 것인데 당시 굴원은 “擧世皆濁 我獨淸”라고 하여 온 세상이 다 흐려있고 나만 홀로 맑다”라고 토로했다. 굴원 당시의 시대상은 차치하고 요즈음 세태가 혼탁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교수들이 ‘거세개탁’이라고 규정하기에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던 모양이다.
오늘날의 세태는 유불선(儒彿仙)이 말하는 최소한의 가치 기준마저 총체적으로 붕괴된 상태이다. 남녀 관계, 친구 관계는 물론 부모와 자식의 관계, 스승과 제자의 관계 등에서 인간으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도덕률조차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아니라 동물과 동물의 관계로 전락해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사태의 근본 책임은 생명력이 고사(枯死)한 종교계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종교가 세상을 맑게 하는 본연의 사명을 다했다면 이렇게 까지 온 세상이 혼탁해 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특히 다른 종교보다도 신의 아들을 자처하며, 신의 계명을 지킨다는 기독교의 책임이 중하다.
이제 양심의 법을 지키는 새로운 종교가 나타나 혼탁한 세상을 맑히고 구원하는 인류사적 사명을 다하지 않으면 이 도도한 ‘거세개탁’의 탁류를 멈출 수가 없다. 양심의 법이 허울 좋은 구두선(口頭禪)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지켜지는 세상이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온 인류가 학수고대하는 구원의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