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덩이같은 아이 몸에 생명물을 바르자 거짓말같이 열이 내려

장정자 권사(4) / 소사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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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그해 가을에 접어들면서 외할머니께서 편찮으시더니 10월에 숨을 거두시게 되었습니다. 저는 할머니께서 거동이 불편해지셔서 제단에 몇 번 나가지 못하고 돌아가신 것이 너무도 안타까웠습니다. 동방의 의인을 만나게 해 달라고 항상 기도하셨던 할머니. 그 소원대로 동방의 의인을 만나 뵙게 되었으니 조금만 더 오래 사셔서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으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찰 받기를 간절히 원하셨던
할머니는 임종 직전에
영적으로 하나님께서 오셔셔
안수를 해주셨다며 크게 기뻐해

할머니께서 숨을 거두시기 직전에 교인들이 저희 집에 모여서 예배를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할머니는 안찰받기를 간절히 원하셨으나 기회가 되지 않아 안찰을 받지 못하셨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드린 후 할머니께서 손짓으로 저를 부르시더니 벽에 걸린 하나님 존영을 가리키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이미 할머니는 기력이 쇠진해지셔서 말씀을 잘 못하셨는데 손짓으로 하나님께서 오셔서 안수를 해 주셨다는 시늉을 하셨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서 그게 정말이냐고 여쭈었더니 할머니는 본인의 흰색 한복을 가리키시며 이런 흰색 양복을 입고 오셔서 안수를 해 주셨다면서 그렇게 기뻐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할머니는 편안하게 숨을 거두셨습니다.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많은 교인들이 찾아와서 장례 준비를 함께해 주었으며 집 안에는 향취가 계속 진동했습니다. 저는 생명물로 시신을 씻기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입술부터 발그스름하게 혈색이 돌면서 얼굴이 환하게 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생전에 주글주글하던 주름도 다 펴져서 여든넷의 할머니가 주름살 하나 없이 곱게 피었습니다. 그때 예배에 참석했던 조 장로님 부인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분은 장례예배를 마친 후 집에 돌아가서 입었던 스웨터를 방에 걸어 두고 집안일을 했는데, 웬일인지 집 안에서 향취가 계속 맡아졌다고 했습니다. 혹시나 하고 방에 들어가 보니 예배 때 입었던 그 스웨터에서 향취가 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귀한 은혜를 허락해 주셔서 할머니는 아름답고 편안한 모습으로 가시게 되었습니다.

생명물로 시신 씻기는 모습을 지켜보니
입술부터 발그스름하게 혈색이 돌면서
얼굴이 호나하게 피어나더니
생전에 주글주글하던 주름살이 다 펴져

그 후 1958년에는 독감이 크게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남편이 운영하던 약국에 쉴 새 없이 사람들이 몰려와서 약을 달라고 아우성이었습니다. 그때 돌이 지난 둘째 아이도 독감에 걸렸는데, 저는 먼저 생명물을 먹여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생명물을 한 숟갈씩 떠서 아이에게 먹이고 불덩이처럼 뜨거운 이마에 생명물을 발라 주었습니다. 그러자 잠시 후 뜨겁던 열이 거짓말처럼 내리더니 계속 칭얼대던 아이가 곱게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방긋방긋 웃으며 노는 아이를 보니 언제 독감에 걸렸던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한번은 딸아이 이마에 빨갛고 좁쌀만 한 것이 생긴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그 말랑말랑한 것이 톡 튀어나와 점점 커지더니 이마 전체에 번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여자아이 얼굴에 흉이 지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이 되어 축복 캐러멜을 납작하게 만들어서 아이 이마에 붙여 주었더니, 며칠 후 빨간 것이 흔적도 없이 다 사라져서 깨끗이 낫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4남매 아이들을 키우면서 생명물과 축복 물질로 병이 낫는 것을 종종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저희 가족은 소사신앙촌 근처 범박리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범박제단에 다니며 저와 가깝게 지내던 고 집사님이라는 분이 있었는데, 그분은 폐병에 걸린 후로 점점 쇠약해지면서 제단에 나오지 못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점심을 차려 드리려고 그 집에 갔더니 고 집사님이 갑자기 하나님을 원망하는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분이 왜 이러시나?’ 하며 깜짝 놀랐습니다. 그 눈빛이 너무 무서워서 저도 모르게 집사님을 피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그 집에 가는 것도 꺼려졌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고 집사님이 숨을 거두어 입관예배를 드리게 되었을 때 아무리 생명물로 씻기고 예배를 드려도 다리가 뻣뻣하게 굳은 채로 노긋노긋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입관예배에 참석해 시신이 살아 있는 사람처럼 노긋노긋해지는 것을 많이 봤는데, 그분은 결국 뻣뻣하게 굳은 모습으로 입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975년 저희 가족은 소사신앙촌에 입주를 했습니다. 저는 범박제단에 다닐 때부터 신앙촌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하여 소사신앙촌에 입주한 후에도 계속 소비조합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런데 워낙 말수도 없고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꾸준히 활발하게 판매하지 못하는 것이 늘 아쉬웠습니다. 그 후 새롭게 출발하는 마음으로 1994년 서울 오류동에 시온쇼핑을 개업하게 되었습니다. 개업을 준비할 무렵 제단에서 예배를 드릴 때면 강한 향취가 진동하여 저는 ‘하나님께서 용기를 주시는구나.’ 하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가게를 차린 지 14일 만에 셋째 아들이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이미 1년 전에 며느리가 숨을 거두었기 때문에 제가 손자 아이의 양육을 맡게 되었으며, 저는 유치원생인 손자를 위해서도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그때부터 14년 동안 소비조합을 하면서 손자 아이를 기르고 대학 공부까지 시킬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일 속에서 바쁘게 살지 않았더라면 아들을 잃은 슬픔과 괴로움을 어떻게 견디며 그 시간을 지나왔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단골인 고객들은 제가 처음 가게를 시작할 때보다 말수도 늘고 얼굴이 밝아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시는데, 앞으로도 건강한 몸으로 귀한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가다듬고
14년동안 소비조합을 하면서
손자를 대학공부까지 시켜
고객들은 밝아진 제 얼굴을 보고 감탄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니 너무도 부족한 제 자신을 깨닫게 됩니다. 그 귀한 은혜를 받고 구원의 길을 알았으면서도 힘차게 달리지 못한 시간이 너무도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 부끄러울 뿐이지만 지금도 은혜를 허락해 주시는 그 사랑을 생각하면서 다시금 소망과 용기를 가져 봅니다. 진실한 노력으로 나아갈 것을 다짐하며 날마다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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