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 선 악마
최근 호주의 빅토리아주 법원은 교황청 간부였던 조지 펠 추기경에게 징역 6년형을 선고했다. 아동 성학대 등 5개 혐의가 재판 과정에서 모두 사실로 입증되었다고 한다. 피해자가 추기경에게 구강 성교를 강요당한 사실을 직접 증언하는 등 객관적인 증거가 있었다. 그런데도 한 교황청 간부는 “혐의가 입증되지 않았는데 처벌 받았다”며 강력 항의했다고 한다.
현대 형법에서는 증거가 없으면 처벌할 수 없지만 한때 아무 증거 없이 수많은 사람을 화형에 처했던 집단이 있었다. 그 집단은 ‘100명 중에 1명만 마녀로 의심돼도 100명 모두 화형시킨다.’고 천명했다. 1484년 교황 인노첸시오 8세는 교서를 내려 마녀를 적극적으로 처형할 것을 독려했다. 15세기부터 400년간 5만 명을 불 태워 죽인 마녀사냥의 시대였다.
마녀를 판별하는 가장 유력한 증거는 마녀 스스로 자백하는 것이었다. 현대 형법에서도 자백은 증거로 인정되지만 고문으로 강요된 자백은 증거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마녀사냥에서 고문은 필수였고 심지어 진실을 밝히는 데 효과적인 수단이자 악을 가려내는 도구로 각광받았다.
고문을 통해 수많은 ‘마녀’가 탄생했다. 끔찍한 고통에 시달린 사람들이 자포자기한 채 고문관들이 원하는 대로 대답한 결과였다. 하늘을 날아 악마의 집회에 참석하고 악마와 성교하는 등 입증할 수도 없고 존재할 수도 없는 범죄를 그들은 ‘자백’했다.
현대 형법에서 고문은 그 자체로 범죄 행위다. 그러나 마녀사냥에서는 고문에 들어간 비용까지 피해자에게 받아 냈다. 독일 쾰른의 경우 네 마리 말로 사지를 찢는 비용 5타렐, 한쪽 손을 자르는 비용 3타렐, 불에 달군 인두로 입 안을 태우는 비용 5타렐 등이었다. 고문을 받고 마녀임을 자백한 후에는 산 채로 화형에 처해졌는데 그 비용은 6타렐이었다.
마녀를 화형시키는 이유는 분명했다. 살과 뼈를 태우는 불길이 마녀의 불순한 영혼을 정화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악이 사라져야 선이 강해진다는 논리였다. 이는 기독교를 철학적으로 완성시켰다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이었고 가톨릭과 개신교의 공통 이념이었다. 16세기부터 100년간 갈등과 전쟁으로 치닫던 두 집단은 이것으로 합의에 이르렀다. 마녀라는 악을 제거함으로써 선한 집단임을 자처하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가톨릭과 개신교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잔혹한 마녀사냥에 돌입했다.
현대 형법에서 살인죄는 공모(共謀)한 것만으로도 처벌받는다. 실제 죽이지 않아도 같이 죽이자는 음모만으로 죄가 되는 것이다. 가톨릭과 개신교는 마녀사냥을 공모했고 광적으로 실행에 옮겼다. 혹자는 마녀사냥을 ‘집단 살해’라고 명명했는데, 두 집단이 살해한 사람의 숫자는 최소 5만 명에 이른다.
최근 아동을 성학대한 가톨릭 사제가 법정에 출두했을 때 시민들은 “불에 타 죽어라!”고 소리쳤다 한다. 수많은 사람들을 불에 태워 죽였으니 똑같이 당해 보라는 뜻인 모양이다. 그 집단이 역사를 피로 물들인 죄목과 형량은 현대의 형법으로 규정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다만 최후의 법정에 서게 되는 날, 어떤 천벌이 내려질지 궁금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