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침반] “토리노 수의는 예수 시체 덮지 않았다” … 예수 부활의 증거라던 중세 위조품, 부활 신화의 허상을 믿게 만든, 인류를 상대로 한 대 사기극 外
* 법의학적 복원 전문가 모라에스, “토리노 수의는 예수 시체 덮지 않았다” 폭탄적 연구 발표. 첨단 3D 과학기술로 수의 재현. 몸통, 사타구니, 목 등에는 얼룩 남지 않는다는 것 확인. 토리노 수의, 신체의 모든 부분에 ‘얼룩 각인’, 사람 아닌 평평한 조각상 덮은 천이어야 가능. 모라에스, “예수 덮은 수의 가능성 희박, 종교적 목적을 위해 의도된 것(Acho que a possibilidade de isso ter acontecido é muito remota. que é de fato uma obra de arte cristã, que conseguiu transmitir sua mensagem pretendida com muito sucesso.)” 예수 부활의 증거라던 중세 위조품, 부활 신화의 허상을 믿게 만든, 인류를 상대로 한 대 사기극.
모라에스가 3D로 재현한 수의의 이미지 : 사람을 덮었을 경우 (사진=뉴욕포스트)
* 교황, 예수에 대한 ‘환상(visioni)’을 ‘영적 수행(pratica spirituale)’으로 연결하는 새로운 회칙 발표. 17세기 프랑스 수녀 마가렛 메리가 예수를 봤다는 ‘환상’ 강조하며 “이 환상은 예수와의 만남에서 성장하고, 예수와의 합일을 이루게 한다” 주장. 환상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마치 보이는 것처럼 느끼는 환각 현상. 수태고지, 부활 등의 허상을 진리로 둔갑시켜 인류를 기만한 사실 드러나니, 2,000년 믿어온 자기들 신을 ‘환상’으로 팔아넘기고, 구렁이 담 넘듯 회피하려는 건가?
* 힌두교 성수(聖水)라며 줄 서서 마시던 물, 에어컨 응축수로 밝혀져, 만류에도 신도들 계속 받아 마셔. 뭄바이, 예수상 발에서 흘러내린 물을 기적의 성수라며 수천 명 받아 마셔. 현장조사한 합리주의협회장 에다마루쿠, 성수가 아니라 하수관 누수된 물임을 밝혀. 명백한 과학적 사실에도 추기경 그라시아스, 에다마루쿠에게 신성모독이라며 사과 요구. 종교단체에서 과학적 근거 없이 맹목적 믿음에 빠진 집단 광신 현상 보여, ‘발 적신 물’이 ‘성수’라는 상식 이하의 촌극, 남들도 그런 물 마시는 줄 알면 안 될 텐데…
* LA 대교구, 성학대 피해자에게 2조원 이상 합의금 발생, 가해자 사제만 500명, 조직적 범죄 드러나. 전 LA 대주교 마호니, 20년간 성학대 사제들 재배치, 희생자 기하급수적 증가. 성학대 사건 최고 고문 커리 주교, 경찰 수사 피하는 방법 제안, 은폐 음모 꾸며. 신도들, 가톨릭 떠나 “더 깨달음을 주는 신”을 찾아 나서. 종교 내부 범죄에서 오는 배신과 환멸, 이제야 진리 향한 갈망 에 눈 뜬 뼈아픈 자각.
* 아일랜드 가톨릭학교 ‘신체적 폭행’ 피해자들, 정부에 극심한 고통 호소. RTÉ 다큐 레더드(Leathered), 가톨릭학교에서 ‘신체적 폭행’ 당한 피해자들의 고통 다뤄. “신부들이 한 손에 성경 들고 기독교의 사랑을 설교하고, 다른 손으로는 채찍으로 때렸다.” 중세 십자군도 “회개하라”며 한 손에 십자가, 다른 손엔 칼 들고 무참히 학살하더니, ‘돌로 동생 쳐 죽인 가인’, ‘칼로 아들 죽이려 한 아브라함’… 그 폭력성은 성경에서 배운 걸까?
* 교황청, 아동 성학대로 두 번 유죄판결 받은 아르헨티나 프린시피 사제 복직 시도 논란. 교황 수석 보좌관 파라 대주교, 프린시피 성학대에 ‘면죄부’ 주고 ‘특별절차’로 복직시키라 명령. 교황 직접 개입 가능성에 비중 실리며 성학대자에 대한 바티칸 처리법 논란. 파렴치한 죄도 무죄로 만들어 버리는 교회법, 그런 법으로 천국 간다고 믿는 아이러니.
* 인구의 80% 이상이 가톨릭 신도인 필리핀, 소아성애 사제들 중대 성범죄 저질러도 솜방망이 처벌. ‘지옥에서나 있을 법한’ 끔찍한 성폭력 자행한 빌라르 신부, 보석금으로 풀려나. 필리핀 언론, 사법당국과 국가 시스템 비난, 신부들에 대한 ‘죄악된 관용’이 만연한 때문이라고. 소아성애는 멈출 수 없고 치료법 없어, 법의 처벌 없으면 더 많은 아동이 위험해진다는 분석 제기돼. 명백한 간음죄에 돌 던지지 말라며 처벌 막은 교리(요한복음8:7)에서 시작된 ‘관용’, 사회 전체를 타락시키는 병폐의 진범.
* 교황, 모든 것을 사고파는 세상에서 돈에 대한 광적인 추구를 포기하라(abandon ‘mad pursuit’ of money in a world where everything is bought and sold.) 역설. 예수의 사랑만이 그 추구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준다(only the love of Christ can set us free from a mad pursuit)고 강조. 중세 때는 천국행 티켓이라며 면죄부 팔고, 축복받는다며 죽은 사람 해골 팔더니, 현대엔 미혼모의 아기 보호한다며 빼앗아 팔고, 심신의 병 치유 한다며 샘물 팔아. 그 단체, 예수 팔아 광적으로 돈 추구하는 자유는 허락받은 모양.
* 韓 기독교 목사 『거저 받은 구원인가, 이루는 구원인가?』출간으로 구원과 믿음, 행함의 문제 다뤄. “행함이 있는 믿음”을 통해 구원의 방향을 제시하고, 실천해야 할 자세를 강조. 2,000년 전 “행함이 아닌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바울의 교리(에베소2:8~9). 행함을 부정하는 눈먼 믿음으로, 실천을 중시하는 도덕관념 무너뜨리고 양심을 마비시켜 왔는데… 썩은 몸통에 얼굴만 갈아 끼우려는 기만전술, 그런다고 그 종교의 부패한 본질이 가려질까.